금녀의 벽? 자전거 타기 시도한 4명의 여성, 가자지구를 뒤흔들다

입력 2016-02-23 16:59 수정 2016-02-23 17:26
가자지구의 '여성 자전거 4인방'이 수풀지대를 지나기 위해 자전거를 끌고 이동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 홈페이지
가자지구의 '여성 자전거 4인방'을 이끌고 있는 리더 암나 술레이만(왼쪽)과 멤버 아살라가 가자지구 시내를 벗어나 북부지역까지 달린 뒤 물을 마시며 잠시 휴식을 취하고 있다. 미 뉴욕타임스
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번화가 살라후딘대로의 어느 아침. 4대의 자전거가 나란히 바람을 가르며 달리고 있다. 안장 위에서 페달을 밟고 있는 건 4명의 여성. 여느 도시라면 딱히 이상할 것도 없는 광경이지만 이 곳 사람들은 마치 외계인이라도 본 양 웅성거리기 시작한다.

세발 택시 ‘툭툭’도, 지나가던 마차도 그녀들을 보느라 속도를 늦췄다 높였다 난리법석이다. 하마스 무장대원들이 가득 탄 지프차는 “빵빵”하는 경적 소리와 함께 환호성을 울린다. 가방을 매고 오토바이를 탄 한 남성은 야유를 퍼부으며 대열을 추월해 간다. 길가에서 양을 치던 어린 소녀는 외국인이려니 지레짐작했는지 “헬로. 원 투 쓰리” 등 아는 영어를 되는대로 말해본다.

4명의 ‘자전거 라이더’들은 왁자지껄한 소동 따윈 신경쓰지 않겠다는 듯 가자지구 북쪽 이스라엘 접경지까지 쉬지 않고 패달을 밟아 댄다. 이윽고 길가의 올리브 과수원에 자전거를 세운 그들은 준비한 치즈 샌드위치를 꺼내 나들이 기분을 만끽한다.

“들어봐 얘들아. 난 노처녀로 살아가고 있지만 젊은 너희는 결혼한 뒤에도 자전거를 탈 수 있었으면 좋겠어.” 이 작은 자전거 클럽의 리더인 암나 술레이만(33)이 말한다. “(미래의 신랑이 있다면) 그는 아마 나를 매우 때리겠지.” 아살라(21)가 과장되게 외치자 젊은 여성들은 꺄르르 웃음을 터뜨린다. 자전거를 탄다는 사실이 공공연히 알려지길 원치 않는 아살라는 끝내 자신의 성을 밝히지 못했다.

지난해 12월부터 시작된 네 여성들의 자전거 도전은 지난 십수년간 가자지구에서 전례가 없던 하나의 ‘사건’이라고 22일(현지시간) 미국 뉴욕타임스(NYT)는 전했다. 팔레스타인 무장정파 하마스가 통치하는 가자지구에서 여성들의 공공장소 스포츠 활동 제한은 오랜 시간 지켜온 불문율이었기 때문이다.

여자 운동선수들은 폐쇄된 경기장을 이용해 훈련해야 했고, 체육관조차 남녀 구분이 있거나 이용시간이 엄격히 구분돼 왔다. 심지어는 오토바이를 탄 남성 뒤에 여성이 탑승하는 것조차 금지됐을 정도다. 이 같은 불문율에 항의하기 위해 2010년 세 명의 외국인 친구들과 함께 자전거 타기에 나섰던 가자지구의 여성 언론인 아스마 알굴은 침을 뱉고 모욕하는 행인들의 위협에 시달려야만 했다고 NYT는 전했다.

국제학교 영어교사인 술레이만은 가자지구로 오기 전 시리아 다마스커스에서 10대 시절을 보냈다. 한동안 타지 않던 자전거를 다시 꺼내 든 건 친구들과 ‘다이어트 내기’를 한 뒤 체중 감량을 위해서였다. 더불어 “아무런 거리낌 없이 자전거를 타던 어린 시절의 모습을 되살리고 싶었다”고 그는 덧붙였다. 술레이만도 처음에는 주위의 시선을 의식해 이른 새벽을 틈타 동네 인근에서만 조심스레 자전거 타기에 나섰다. 이윽고 그녀의 친구인 사라 사리비(24)와 사라의 동생 누르(21), 누르의 친구 아살라가 멤버로 합류하면서 이들의 자전거 타기는 매주 금요일, 시내 곳곳을 누비는 모임으로 발전했다.

“자전거를 타면 당신은 마치 하늘을 나는 것처럼 느껴질 거에요.” “난 패달을 밟으며 자유를 느껴요.” 술래이만과 친구들은 이구동성으로 자전거 예찬론을 펼쳤다. 이들은 “초창기 사람들의 모욕과 핀잔, 만류에 무척이나 힘들었지만 포기하지 않았다”면서 자전거 타기가 여성들의 반항이 아니라 단지 개인의 자유임을 존중받을 때까지 계속해 나갈 것을 다짐했다.

가자지구 청소년·스포츠부 차관보인 아마드 무헤이신은 NYT와 인터뷰에서 “공공장소에서 여성이 자전거를 타는 것은 가자지구 가치 기준으로 볼 때 ‘위반’에 해당한다”면서도 “이슬람 율법에 위배된다는 종교계의 문제제기가 있지 않는 이상 그들을 막을 생각은 없다”고 밝혔다. “198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가자지구에서 여성들이 자유롭게 자전거를 탔기도 했다”는 주민들의 증언을 인용해 NYT는 이 같은 불문율이 변화가 불가능할 정도로 유서 깊은 전통은 아니라고 지적했다.

“여자들이 자전거를 타는 게 뭐 어때서? 인류는 이미 달에 도착했다구요.” 이-팔 갈등과 함께 위축된 일상, 보수적인 가자지구의 공기, 여성을 옭아매는 속박으로부터의 해방을 꿈꾸며, 술래이만들의 자전거 바퀴는 금요일마다 힘차게 굴러가고 있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