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이 일했던 가게에서 1400만원어치 제품을 훔쳐 팔고 그 돈을 유흥비로 탕진한 20대 남성이 경찰에 체포됐다. 서울 용산경찰서는 야간 건조물 침입 절도 혐의로 김모(29)씨를 구속하고 여죄를 캐는 중이다.
김씨와 거래한 사람들은 물건을 모두 내놔야 한다. 장물임을 알았거나 충분히 짐작할 수 있었는데도 샀다면 장물취득죄로 처벌받을 수도 있다.
아는 놈이 더 무섭다고
김씨는 지난해 11월 10일 오후 10시쯤 김모(31)씨가 운영하는 서울 용산구 용산전자상가 내 카메라렌즈 전문매장에서 카메라렌즈 6개 350만원 상당을 훔친 혐의를 받고 있다. 매장에 몰래 들어가 진열대에 전시된 제품을 준비해간 가방에 골라 담았다.
그는 같은 달 25일까지 이 매장에서 5차례에 걸쳐 고가 카메라 렌즈 30여점 1400만원어치를 훔친 것으로 조사됐다. 매장 주인 김씨가 사라졌다고 신고한 제품은 약 50점이다. 경찰은 구속된 김씨를 상대로 훔친 물건이 더 있는지 조사 중이다.
김씨는 지난해 2월부터 범행 직전인 10월 말까지 해당 매장 종업원으로 일하다 그만둔 사람이다. 그는 이후에도 매장 출입카드를 반납하지 않고 그대로 갖고 있다가 범행에 사용했다. 절도 전과 2범인 그는 이미 재물손괴 혐의로 수배된 처지였다.
경찰은 출입문에 훼손 흔적이 없다는 점을 근거로 내부자 소행이라고 판단했다. 출입카드를 가진 사람이 범인일 가능성이 높았다. 분실된 출입카드를 주웠다고 해도 해당 매장이 어딘지 모르면 범행을 할 수 없다. 경찰은 퇴사 직원 중에 범인이 있을 것으로 보고 종업원 명부와 매장 내 CCTV를 분석해 김씨를 범인으로 특정했다.
대담한 건지 무모한 건지
김씨는 상가와 매장 곳곳에 CCTV가 있다는 사실을 알면서도 얼굴을 가릴 수 있는 모자나 마스크 등을 거의 착용하지 않은 채 범행했다. 전자상가 경비원에게 의심을 살 우려가 있기 때문이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첫 날에는 매장 안에서 얼굴을 완전히 드러낸 채 물건을 훔쳤다. 이후 범행 때는 점퍼에 달린 모자를 썼지만 복장과 가방이 첫 날과 동일해 같은 인물이라고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
김씨는 놓고 온 물건이라도 찾으러온 것처럼 매장 문을 열고 들어갔다. 내부 구조나 제품 배치 상황을 잘 아는 만큼 구석구석에서 능숙하게 물건을 찾아 가방에 담았다. 카메라 본체나 다른 부품은 건드리지 않고 돈이 되는 카메라 렌즈만 골라 훔쳤다고 경찰은 전했다.
그는 한꺼번에 여러 개가 없어지면 범행이 발각될 거라고 생각해 수차례 나눠 가져갔다고 한다. 훔친 제품은 대부분 ‘중고나라’ 등 인터넷 중고품 직거래 카페에서 현금 거래로 처분했다. 한 번은 신도림 테크노마트에 택배로 팔고 어머니 계좌로 돈을 송금 받았다. 비싸게는 수백만원에 달하는 카메라 렌즈를 개당 40만~100만원 정도에 판 것으로 조사됐다.
범행 이후에는 찜질방 등을 전전했다. 이 때문에 경찰이 그를 잡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김씨는 서울 동대문구 장안동에서 검거됐다. 휴대전화 매장에서 일하고 있었다고 한다. 카메라를 팔아 챙긴 돈은 생활비와 유흥비로 모두 써버렸다고 진술했다.
물건 산 사람들은 어떡해
경찰은 김씨에게 물건을 산 사람들을 찾아 장물 여부를 알고도 샀는지 등을 조사할 계획이다. 장물 취득죄는 7년 이하 징역 또는 1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물건값이 지나치게 싼 점 등에 주의했다면 장물임을 의심할 수 있었는데도 그러지 않고 거래한 경우 업자는 업무상 과실, 일반인은 중과실로 장물죄가 적용된다. 1년 이하 금고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이 부과된다.
장물임을 전혀 의심할 수 없었다고 해도 물건은 돌려줘야 하는 만큼 선의의 피해자가 나올 수 있다. 피의자 김씨가 돈이 없다고 버티면 물건을 샀던 사람들은 현금 손해를 고스란히 떠안아야 한다.
경찰 관계자는 “피의자가 피해 회복을 위해 얼마나 노력했는지가 형량에 영향을 주기 때문에 김씨가 최대한 보상하려 할 수는 있다”며 “그러지 않는다면 장물 피해자들은 손해를 감수하거나 민사소송을 걸어야 한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인터넷 직거래 사이트 등에서 시가보다 너무 싸게 나온 물건은 장물 가능성을 의심해봐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