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세 철부지 소년 시절, 70세 노신사와의 만남이 그의 삶을 송두리째 바꿔놓았다. 가난 때문에 학업을 포기하려던 소년에게 영국 태생의 캐나다인 교수는 장학금을 주며 격려했다. 고등학교 입학 후 3년간 매주 영어로 성경을 가르쳤다. 조금이라도 늦어 변명을 할라치면 또박또박 한국말로 “핑계대지 마시오”라고 꾸짖는 모습은 영락없는 ‘호랑이 선생님’ 같았다. 처음으로 교회에 발을 디딘 것도, 이후 부족함이 많지만 평생 성경의 가르침대로 살기 위해 노력하며 산 것도 그와의 약속 때문이었다. 서울대 경제학과 교수로 출발해 서울대 총장, 대한민국 국무총리를 거쳐 동반성장 전도사로 지내는 정운찬 전 총리와 그의 평생의 스승이자 은인인 프랭크 윌리엄 스코필드 박사의 이야기다.
올해는 스코필드 박사가 내한한 지 100년째 되는 해다. 1916년 세브란스의전 교수로 들어왔다 한국인들의 독립운동을 도왔던 스코필드 박사는 ‘34번째 민족대표’라 불린다. 곳곳에서 그의 삶을 재조명하려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그 중심에 스코필드박사내한100주년기념사업회가 있다. 정 전 총리는 기념사업회의 의장을 맡고 있다. 22일 서울 중구 프레스센터에서 열린 기념사업회 발족 기념 기자간담회 직후 그를 따로 만났다. 50여년이 흘렀지만 그는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과 그와의 일화를 여전히 생생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는 1960년 4월 스코필드 박사를 처음 만났다. 1920년 일제에 의해 강제추방됐던 스코필드 박사가 1958년 서울대 수의과대 교수로 다시 한국에 돌아온 직후였다.
“끼니를 걱정할 정도로 가정 형편이 어려워서 중학교 진학을 고민하고 있던 무렵, 초등학교 친구 아버지였던 서울대 이영소 교수 소개로 스코필드 박사를 만났어요. 등록금과 생활비만 지원해주신 게 아니라 청소년기 제 가치관을 형성해주셨죠.”
한 마디로 그에게 스코필드 박사는 ‘키다리 아저씨’ 같은 존재였다. 이후 스코필드 박사가 세상을 떠나던 1970년 4월까지 10년간 10대 소년과 70대 노교수의 인연은 이어졌다. 스코필드 박사가 ‘찾아오라’는 메모를 사람을 시켜 보내면 달려가서 만나곤 했다.
“사슴처럼 선한 얼굴로 ‘운찬’하고 부르셨는데 한 번도 존칭을 생략한 적이 없을 정도로 예의와 품격을 지키셨어요. 그분을 만나는 동안 일생에서 배워야할 것의 대부분을 배웠어요. 영어로 ‘He made me what I am today' 라고나 할까요.”
그는 세 가지 가르침을 기억했다. 첫째는 정직이요, 둘째는 정의로운 사람이 되는 것, 그리고 마지막으로 국력을 키워야 한다고 것이었다.
“정직이 가장 경제적인 생활 방법이라고 하셨어요. 거짓말을 하면 그걸 덮기 위해 또 거짓말을 해야 하니. 두 번째로 약자들 특히 선한 어려운 이에게는 비둘기의 자애로움으로 대하고 강한 사람들, 무엇보다 정의롭지 못한 강자에게는 호랑이의 날카로움으로 대하라고 하셨습니다. 호랑이의 날카로움이란 건설적인 비판정신이었어요. 무조건 비판이 아니라 건설적으로 비판하라고 하셨지요.”
그가 삶의 고비마다 매번 비판하는 소리를 내왔던 것은 스코필드 박사의 가르침과 결코 무관치 않다. 1986년 군부정권의 서슬이 퍼렇던 시절, 체육관 선거를 끝내고 직선제를 도입하자는 교수서명에 참여한 것도 이후 재벌개혁 등 사회개혁을 주장하는 목소리를 내 온 것 모두 그렇다.
스코필드 박사는 1960년대 당시 한국사회의 ‘부익부 빈익빈’ 현상에 대해서도 무척 안타까워했다. “당시 1960년대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이 1차분 밖에 안 끝났던 시절인데 어느 정도 성장되고 사람들 살림살이가 좋아졌지만 빈부격차가 너무 심해졌다고 걱정하셨어요. 무엇보다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들에 대해서 눈꼽 만치도 배려하지 않는다고 개탄하시던 모습이 생각납니다. 대학에 가서 빈부격차를 완화시키는 방안을 공부하고, 일생을 빈부격차 줄이는데 진력하며 살라고 하셨어요. 그게 동반성장이란 문제를 붙잡게 된 계기가 된 것이죠.”
정 전 총리는 이명박 정부 시절 국무총리를 역임한 뒤 동반성장위원장을 맡았다. 이후 ‘동반성장연구소’를 만들어 활동하고 있다. 그는 동반성장의 정신이 성경의 정의와 맞닿아있다고 이야기한다.
“레위기 19장 9~10절에 보면 그런 내용이 있어요. 포도농원에서 포도 딸 때 다 따지 말고 남겨서 행인들도 따갈 수 있게 하라고. 다른 곡식도 그렇게 하라고 하셨어요. 룻기 2장 15~16절에선 보아스가 룻을 위해 하인들에게 곡식단을 조금씩 떨어뜨리라고 이야기해요. 그런 걸 모두 스코필드 박사님한테 배웠어요. 기독교정신과 정의, 동반성장의 정신이 이렇게 통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정 전 총리 스스로는 ‘날라리 신자’라고 고백하지만 지금도 매주 교회에 나간다. 가난해도 1년에 열 번씩 제사를 지내던 집안에서 교인으로 살게 된 지 56년째다.
“52주 중에 50번은 교회에 꼭 나갈 거에요. 등록금 대주면서 교회에 가라고 했는데 어길 수가 있어야죠. 처음엔 겁나서 교회 다닌다는 친구에게 물어 연동교회에 같이 나갔어요. 미국 가서는 학교 채플을 주로 찾았고, 한인교회에서 한글도 가르쳤죠. 미 컬럼비아대에서 조교수로 있던 시절에는 리버사이드 처치를 다녔어요. 귀국 후에는 서울대 교수아파트 근처에 있는 홍정길 목사님이 계시던 남서울교회에 다녔지요. 이후 남포교회를 독립시킬 때 따라서 같이 옮기게 됐어요. 예배만 드리지 봉사활동은 따로 안 해서 장로 선거에서 두 번이나 떨어졌습니다. 식사 기도도 잘 안 하고, 술도 먹고 하니 기독교인인지 모르는 사람들이 많을 겁니다. 그래도 항상 성경이 가르쳐 주는 대로 살려고 노력은 합니다. (가르침 대로 살려고 한 것이) 성공했는지는 모르지만요.(웃음)”
스코필드 박사는 그에게 3·1운동 당시 이야기도 들려주곤 했다. 스코필드 박사는 영국 태생이었지만 영국의 식민지배를 분명히 반대했다고 한다. 3·1운동 당시 만세운동 현장의 사진을 찍었고 같은 해 4월 제암리 학살 현장을 몰래 찾아가 찍은 증거사진으로 일본의 만행을 해외에 알렸다. 3·1운동 당시 민족대표 33인에 더해 그를 ‘34번째 민족대표’라고 부르는 이유다. 그는 또 한국인들의 치열한 독립운동을 보면서 이를 ‘꺼지지 않는 불꽃’에 빗대 세세하게 기록했다. 정 전 총리는 “지금으로서는 도저히 상상하기 힘든 분이었다”며 “사회에 대한 건설적인 비판 정신이 아주 뚜렷했던 분”이라고 회고했다.
그런 스코필드의 비판 정신이 그립다. 스코필드 박사는 1960년대 한국사회를 보면서 부자가 가난한 이들을 ‘눈꼽만큼도’ 생각하지 않는다고 했는데 요즘 모습을 보면 부자들이 가난한 사람을 ‘먼지만큼도’ 생각하지 않는 세상이 된 것 같다고 느낀다.
“나만 그렇게 느끼는 것인지, 요즘 보면 사회에 대한 비판정신이 너무 사라진 것 같아요. 의를 추구하는 기독교인들이 건설적으로 사회 비판을 해야 하는데. 경제적 불평등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 양극화가 심화된 상황에서 누가 과연 잘못됐다 목소리를 낼 수 있겠어요. 대기업은 대기업이라 안 하고, 중소기업은 대기업 눈치 보느라 못 하고. 보수정권은 이런 데 아예 관심이 없고. 의지할 데는 결국 종교뿐이지요. 불교계도 좋지만 그래도 기독교인들이 나서서 동반성장을 위한 일을 하면 좋지 않을까요.”
그런 면에서 몇 해 전 스코필드기념사업을 계기로 한국고등신학연구원 김재현 원장을 만난 것은 행운이다. 교회가 나서줬으면 하면서도 제대로 손을 내밀지 못하고 있던 그가 김 원장을 만나면서 동반상승효과를 내고 있는 것이다. 두 사람은 지난해부터 스코필드 박사의 삶과 정신을 나누고 더불어 한국 사회의 동반성장이란 화두를 이야기하는 토크콘서트를 진행 중이다. 지난 6개월간 대전 새로남교회, 강릉중앙감리교회, 인천제2교회 등 10여곳 넘는 교회를 찾아다녔다.
“김 원장은 아주 부지런한 분이에요. 그분을 만나서 이리저리 끌려 다니게 된 것 역시 하나님의 뜻이라고 생각해요. 제 강의를 듣고 나선 동반성장을 ‘빨갱이 운동’처럼 생각했는데 그런 게 아니었구나, 좋은 반응을 많이 보여주세요. 이제 동반성장 안하면 한국 경제가 망하고, 파탄날까봐 두렵다는 문제의식에도 많이 공감해 줍니다. 올해 내한 100주년을 맞아 양심적인 목사님들이 스코필드의 가르침을 교회에서 소개하고 알렸으면 좋겠어요. 이번에 이장락 선생이 쓴 책 ‘석호필’이 나왔는데, 교회와 사회에 널리 보급돼서 스코필드 할아버지의 정신을 되새기게 되면 좋겠습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정운찬 전 총리, 평생 스승 스코필드 박사를 이야기하다
입력 2016-02-23 11:33 수정 2016-02-23 17:3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