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원 설모(46)씨는 지난해 7월 22일 오후 4시쯤 싼타페 승용차를 몰고 경남 사천나들목(IC) 입구에서 남해고속도로로 진입할 생각이었다. 그는 마티즈 승용차 앞으로 끼어들려고 했는데 그 차가 양보하지 않고 경적을 ‘빵’ 울렸다. 설씨의 무모한 보복운전 사건은 이 한 번의 ‘빵’ 소리 때문에 시작된다.
사천부터 진주까지 18㎞ 추격
잠시 후 고속도로로 들어선 설씨는 곧바로 마티즈를 뒤쫓았다. 가속 페달을 밟으며 기어이 바로 옆까지 따라가서는 나란히 달리며 창문을 열고 욕설을 했다. 그는 마티즈 운전자에게 차를 세우라고 요구했다. 상대 운전자는 자기보다 10살쯤 어려보이는 남자였다.
조씨가 아랑곳하지 않고 제 갈 길을 가버리자 설씨는 뒤에서 상향등을 수차례 깜박이며 추격했다. 그러다 방향지시등을 켜지 않은 채 마티즈 앞으로 차선을 물고 들어와서는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피차 위험천만한 일이었다.
마티즈가 이를 피해 옆 차로로 옮기자 설씨는 약이 올랐는지 다시 추월해서는 그 앞에서 또 급브레이크를 밟았다. 설씨는 이러기를 반복하며 사천나들목부터 진주나들목까지 약 18㎞를 쫓아갔다.
서울경찰이 진주까지 가서 체포
마티즈 운전자 조모(37)씨는 차마 신고할 수 없었다. 남해고속도로로 출·퇴근을 하기 때문에 그 싼타페 운전자를 같은 곳에서 다시 만나지 말라는 법이 없었다. 그 정도 성질이면 경찰에 신고했다고 무슨 짓을 할지 몰랐다. 그러다 최근 인터넷에서 경찰이 올린 게시물을 읽고는 마음이 바뀌었다. 경찰은 보복운전과 난폭운전에 대한 집중단속을 벌이고 있었다.
조씨는 경찰에 전화해 상담 받은 뒤 이메일로 당시 상황이 찍힌 블랙박스 동영상을 보냈다. 영상만 있으면 용의자는 잡은 거나 다름없다. 사건을 접수한 서울남대문경찰서 교통수사팀은 영상을 분석해 싼타페 차번호를 확인하고 진주까지 내려가서 설씨를 체포했다. 경남 진주경찰서 앞에서 붙잡힌 설씨는 특수협박 혐의로 불구속 입건됐다.
성난 자동차는 ‘위험한 물건’
설씨에게 적용된 특수협박죄는 여러 명이 떼 지어 위협하거나 위험한 물건을 가지고 협박할 때 적용되는 죄다. 설씨는 자동차라는 위험한 물건으로 조씨를 위협한 경우에 해당한다고 경찰은 판단했다. 특수협박죄는 협박죄보다 형량이 무겁다. 법원에서 유죄로 인정되면 7년 이하 징역이나 10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남대문서 관계자는 “특히 고속도로에서의 고의 급정차나 시비 같은 보복운전은 대형 교통사고 유발 가능성이 크고, 사고 발생 시 피해자와 가해자는 물론 엉뚱한 사람까지 사망할 가능성이 큰 만큼 매우 위험하고 중대한 범죄”라고 말했다.
집중단속은 계속된다
이달 15일 시작된 보복·난폭운전 집중단속은 다음 달 31일까지 계속된다. 특정 운전자를 위협하거나 다치게 하는 보복운전뿐만 아니라 신호위반과 과속 등으로 불특정 운전자를 위험하게 만드는 난폭운전도 단속 대상이라는 점을 유의해야 한다.
난폭운전을 했다가 입건되면 벌점 40점이 부과되고 운전면허는 40일간 정지된다. 구속되면 면허가 취소된다. 유죄 판결을 받으면 1년 이하 징역이나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