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58) 외모의 덫

입력 2016-02-22 10:59
영화 '레버넌트'의 포스터

동료에게 버림받아 대자연에 던져진 인간의 생존본능과 삶을 향한 의지, 그리고 복수를 그려 여러 부문에서 올 아카데미상 수상작으로 기대를 모으고 있는 ‘레버넌트, 죽음에서 돌아온 자’를 봤다. 태고의 원시적 자연을 고스란히 간직한 듯한 캐나다 삼림 로케이션 촬영을 통한 야생의 모험에 압도당할 정도였지만 그보다 더 내 마음을 잡고 놔주지 않은 것은 주연배우 리어나도 디캐프리오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얼굴을 수염과 피, 오물로 범벅해 놓고 관객들에게 보여주지 않으려는 ‘강박증’ 같은 것이 넘쳐흘렀다. 마치 “나라는 배우를, 나의 연기를 봐주시오. 내 얼굴은 보지 말고”라고 호소하는 듯했다,

누구나 알다시피 디캐프리오는 참으로 잘 생긴 배우다. 일찍이 조연급 루키 시절인 1993년 ‘길버트 그레이프(What's eating Gilbert Grape)’에서 조니 뎁의 동생으로 나와 정신적으로 장애가 있지만 아름답고 해맑은 미소를 보여준 데 이어 주연급으로 성장한 뒤 ‘로미오+줄리엣(1996)’ ‘타이타닉(1997)’에 출연한 그의 얼굴은 눈부셨다.

그대로 나갔더라면 미남배우가 가는 전형적인 길, 로맨스나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안착했겠지만 그는 그 틀에서 벗어나려 안간힘을 썼다. 그 잘생긴 얼굴을 갖고서도 ‘얼굴로 먹고 사는’ 걸 스스로 거부한 것. 그 결과 그의 출연작들은 외모와 전혀 관계없는 것들로 이어졌다.

‘갱 오브 뉴욕(Gngs of New York, 2002) ‘에비에이터(2004)’ ‘블러드 다이아몬드’ ‘디파티드(이상 2006)’부터 ‘에드거 후버(2011)’ ‘장고, 분노의 추격자(2012)’ 그리고 ‘월스트리트의 늑대(2013)’에서 ‘레버넌트’까지.

할리우드에는 잘 생긴 얼굴을 주무기로 돈과 명예, 인기를 거머쥔 남자배우들이 많다. 그런 반면 이처럼 ‘외모의 덫’으로부터 빠져나와 특이한 캐릭터나 연기력 등 다른 길을 통해 배우로서의 자아를 모색한 이들도 적지 않다.

우선 디캐프리오와 동시대의 배우로 조니 뎁도 그렇다. 애송이 시절 잘생긴 얼굴로 ‘틴 아이돌’이었던 그는 그러나 배우 경력을 쌓아나가면서 외모가 아닌 캐릭터를 추구하는 새로운 길을 모색했다. 그리고 첫 번째 캐릭터로 택한 것이 잘생긴 얼굴과 어울리지 않는 ‘기괴함’ ‘기묘함’이었다.

‘가위손(Edward Scissorhands, 1990)'을 필두로 역시 기이함에 몰입하는 것으로 정평 있는 팀 버튼 감독의 페르소나라도 된 양 그의 영화에 줄줄이 출연하면서 잘생긴 얼굴과는 전혀 상관없는 기괴한 역할들만 맡았다. ‘슬리피 할로우(1999)’ ‘찰리와 초콜릿공장(2005)’ ‘이상한 나라의 앨리스(2010)’ 등.

그러는 한편으로 그는 또 다른 길도 모색했다. 캐릭터가 ‘기괴함’으로 굳어지는 게 싫었던 것. 그래서 택한 두 번째 캐릭터가 코믹 쪽이었다. 대표적 인물이 ‘카리브해의 해적’ 잭 스패로우 선장. 그는 이 시리즈에서 희한한 분장과 함께 남성적이면서도 동시에 여성스러운 우스운 인물을 연기해 큰 인기를 끌었다.

이와 함께 그는 다양한 배역을 통해 성격배우로서 폭도 넓혀가려 시도하고 있다. 세 번째 선택이다. 실존 괴짜 영화감독(‘Ed Wood, 1994’), FBI 비밀요원(‘도니 브래스코, 1997’), 마약에 찌든 기자(‘Fear and Loathing in Las Vegas, 1998’), 피터팬의 작가(‘Finding Neverland, 2004’), 1930년대의 악명 높은 갱 존 딜린저(‘Public Enemy, 2009’) 등.

이보다 앞선 세대로는 폴 뉴먼을 들 수 있다. 뉴먼은 ‘역사상 가장 아름다운 푸른 눈’을 지닌 잘생긴 남자배우의 대명사였으나 역시 미남으로 이름을 날린 동시대의 동료 록 허드슨 등과는 달리 로맨스나 멜로물의 주인공으로 안착하기를 거부하고 자신만의 캐릭터 구축에 나섰다. 그래서 찾아낸 게 주위와 잘 어울리기 힘든, 걸핏하면 배척받는 아웃사이더, 혹은 아웃로(무법자) 역할이었다.

그러나 폴 뉴먼이 연기하는 아웃사이더는 ‘미워할 수 없는’, 나아가 ‘감싸주고 싶은’ 아웃사이더였다는 점이 특징이자 매력이었다. 이 역할로 가장 크게 주목받은 게 ‘탈옥(Cool Hand Luke, 1967)'의 반항적 죄수 루크였고, 그 정점을 찍은 게 ‘내일을 향해 쏴라(Butch Cassidy and the Sundance Kid, 1969)'의 사랑스런 무법자 부치 캐시디였다.

잘생긴 얼굴을 팽개치고 자신만의 영역을 구축한 스타로 할리우드 배우는 아니지만 결코 빼놓을 수 없는 게 프랑스의 알랭 들롱이다. 남자한테 쓸 말은 아니나 들롱의 ‘미모’는 가히 전설적이다.

잘생긴 남자배우가 워낙 많아 남자배우의 생김생김에 그다지 연연하지 않는 할리우드의 평론가들도 들롱에 대해서는 ‘숨막히는(breathtaking) 외모'라고 극찬하는가 하면 어떤 평자는 “상대 여배우가 누가 됐건 그보다 아름답다”고까지 말했다. 영화배우 사상 이런 찬사를 들은 배우는 따로 없다.

그러나 들롱은 이런 아름다운 얼굴도 한계를 지니고 있음을 일찍부터 알았다. 우선 그 얼굴로 할 수 있는 역할은 뻔할 뿐만 아니라 나이를 먹어 아름다움이 사라지기 시작하면 그것으로 모든 게 끝난다는 것을. 이에 따라 그는 자신의 이미지를 얼음처럼 차가운 냉혹한 범죄자, 암살자, 살인자 등 느와르의 악역으로 설정했다.

친구를 아무렇지도 않게 살해하고 그 행세를 하는 범죄자 리플리(‘태양은 가득히, 1960’)를 모델로 따오기라도 한 듯. 그렇게 해서 들롱이 연기한 느와르의 인물들은 무수히 많지만 그중에서도 최고봉은 살인청부업자로 나온 장 피에르 멜빌 감독의 ‘고독(Le Samourai, 1967)'이다. 그 자체로도 걸작인 이 영화를 보면서 들롱이 얼굴만 잘생긴 배우가 아니라는 걸 느꼈다는 사람이 많았다.

그런가 하면 잘생긴 얼굴의 덫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예정된 수순대로 나아간 배우들도 적지 않다. 클래식한 케이스로 로버트 테일러가 있다. 1911년생인 테일러는 공교롭게도 같은 성을 지닌 엘리자베스 테일러(아무런 친척관계도 아니다)가 사상 최고의 미녀라는 평을 받았듯 젊었을 때 ‘사상 최고의 미남'이란 평을 받았다.

아닌 게 아니라 그레타 가르보와 공연한 ‘춘희(1936)’나 비비안 리와 공연한 ‘애수(Waterloo Bridge, 1940)’에서 보여준 그의 빛나는 ‘아름다움'은 그 이전에도, 이후에도 어떤 배우도 따라가지 못할 만큼 대단했다.

그러나 로버트 테일러는 외모를 떠난 새로운 이미지를 구축하는 데 실패했다. 잠깐 느와르 영화에 출연한 적도 있었지만 빛을 발하지 못한 채 그저 그런 사극과 서부극의 주인공으로 전전하다 1969년 폐암으로 사망하면서 배우인생도 끝났다.

유럽에서는 오스트리아 출신이지만 이탈리아에서 주로 활동한 1944년생 배우 헬무트 버거가 유사한 궤적을 보였다. 그는 젊었을 때 기막히게 잘생긴 얼굴로 미남이 아니면 절대 맡을 수 없는 ‘도리언 그레이(1970)’의 타이틀 롤을 맡는가하면 루키노 비스콘티가 감독한 ‘저주받은 자들(The Damned, 1969)'에서는 남자이면서도 30년대를 주름잡은 여배우 말렌 디트리히를 흉내 내기까지 했다.

또 70년대까지도 활짝 핀 얼굴로 국제적 패션잡지 보그의 첫 남성 표지모델로 뽑혔다. 하지만 그는 들롱이 그랬던 것처럼 잘생긴 얼굴과 무관한 다른 이미지나 캐릭터를 만들어내지 못하고 서서히 사라져갔다.

그러나 여배우는 사정이 다르다. 여배우가 섣불리 남자배우처럼 외모의 덫에서 벗어나려다가는 경력만 망치기 십상이다. 캔디스 버겐이 이를 극명하게 보여준다

모델생활을 거쳐 1966년 영화계에 데뷔한 그는 일찍부터 그 차가운 아름다움으로 인해 ‘제2의 그레이스 켈리’라는 찬사와 함께 기대를 한 몸에 모았다. 그러나 그는 60년대 말부터 70년대를 휩쓴 진보주의와 히피운동에 휘말려 스스로 아름다움을 해치는 역할만 골라 했다. ‘아름다움’으로 여성성을 규정할 수 없다는 진보적 발상에서였다.

‘솔저 블루(1970)’ ‘헌팅파티(1971)’ ‘바람과 사자’ ‘바이트 더 불리트(이상 1975)’ 등이 그런 영화들이었다. 그리고 이런 구지레한 영화들과 함께 할리우드에 두 번째 그레이스 켈리가 강림할 것이라는 기대는 사그러들었다.

배우에게 잘생긴 얼굴은 결코 무시할 수 없는 자산이지만 덫이기도 함을 새삼 느낀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