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보들에게 웃으며 화내라던 움베르토 에코, 그가 남긴 문장들

입력 2016-02-21 12:54
움베르토 에코. 사진=국민일보DB
움베르토 에코. 사진=국민일보DB
위대한 이탈리아 저술가 움베르토 에코가 19일(현지시간) 세상을 떠났습니다. 걸어 다니는 백과사전, 우리 시대 가장 영향력 있는 사상가라는 수식어로 불리운 인문주의자입니다. 대표작 <장미의 이름>은 40여 개 국가에서 다양한 언어로 2000만부 이상 판매됐습니다.

한국에서 에코 전집을 펴낸 바 있는 출판사 열린책들은 “마치 하나의 도서관이 사라져 버린 것만 같다”라고 했습니다. 열린책들은 “지식 이전, 그의 자부심이 깃들어 고귀하게 느껴졌던 모든 문장을 기억하겠다”라고 헌사했습니다.

그러면서 <장미의 이름>의 문구를 인용했습니다
“우리는 난쟁이지만, 거인의 어깨 위에 올라선 난쟁이다. 우리는 작지만, 때론 거인보다 먼 곳을 내다보기도 한다.”

에코는 특히 비극에 맞선 희극, 웃음과 농담의 중요성을 강조해온 작가입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는 이런 문답이 나옵니다. 일부만 발췌했습니다.

“어떻게 지내십니까?”라는 질문에 답하는 방법
이카루스 : 한바탕 곤두박질을 친 기분입니다.
오디세우스 : 곧 돌아오겠소.
호메로스 : 내 눈에는 인생이 검은 빛으로 보이오.
단테 : 천국에 온 기분입니다.
노아 : 재해보험 좋은 게 하나 있는데 알고 계세요?


에코는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를 내야 하는 이유에 대해, 당신과 나 모두가 가진 어리석음 때문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웃으면서 화를 낼 수 있을까? 악의나 잔혹함에 분개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없지만, 어리석음에 분노하는 것이라면 그럴 수 있다. 데카르트가 말했던 것과는 반대로 세상 사람들이 가장 공평하게 나눠가진 것은 양식이 아니라 어리석음이다. 사람들은 누구나 자기 안에 있는 어리석음을 보지 못한다. 그래서 다른 것에도 쉽게 만족하지 않는 아주 까다로운 사람들조차도 자기 안의 어리석음을 없애는 일에는 관심을 두지 않는다.

에코의 육성이 담긴 파리 리뷰의 한글번역 인터뷰집 <작가란 무엇인가>에는 이야기의 힘에 대한 그의 헌사가 담겨 있습니다. 에코는 세 권짜리 이 책에서 밤하늘 별 같은 다수의 작가들을 제치고 제일 먼저 인터뷰가 소개됐습니다.

사실 저는 기호학에 대해서 수없이 많은 에세이를 썼지만 이들 에세이보다 <푸코의 진자>가 훨씬 기호학의 개념을 잘 표현했다고 생각합니다. 아리스토텔레스가 언제나 우리보다 먼저 어떤 생각을 해냈기 때문에 우리의 생각 자체는 독창적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독창적이지 않은 생각에서 소설을 만들어냄으로써 그 생각을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가 있습니다.
남자는 여자를 사랑한다, 이건 전혀 독창적인 사고가 아니지요. 하지만 문학적인 솜씨를 발휘해서 남녀의 사랑에 대해서 멋진 소설을 쓴다면, 그것을 절대적으로 독창적인 것으로 만들 수 있습니다. 모든 것을 고려해볼 때 이야기가 언제나 훨씬 풍부하다고 생각합니다. 이야기는 사건으로 만들어지고, 등장인물에 의해서 풍요로워지고, 잘 다듬어진 언어에 의해서 반짝이게 됩니다. 그래서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생각이 살아 있는 유기체로 변할 때 그것은 완전히 다르고 훨씬 더 표현력이 풍부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팔순을 넘긴 에코는 상투적 표현이지만, 마지막까지 펜을 놓지 않았습니다. 지난해 이탈리아에서 <누메로 제로(Numero Zero)>라는 소설을 냈습니다. 넘버 제로라는 뜻인데 미디어 산업을 돌아보며 정치와 언론을 통해 확대 재생산되는 거짓의 서사를 풀어놓는 장편입니다. 에코 전집의 출판사 열린책들은 “한국어 가제는 <창간준비호>이며, 오는 6월 출간 예정”이라고 밝혔습니다.

우성규 기자 mainport@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