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부터 저녁까지 이어진 수십여 매체와의 인터뷰에 지친 기색이 역력했다. 붉게 충혈된 눈에는 피로감이 그득했다. “피곤해 보인다”고 걱정을 하자 박보검은 “저요? 아니에요”라며 활짝 웃어보였다. 도리어 기자에게 “시간이 늦었는데 너무 오래 기다리진 않으셨나”라고 되물었다.
“응팔을 통해 많은 사랑을 받았어요. 따뜻한 작품에 출연하게 돼서 큰 영광이었다고 생각해요. 섭섭한 것보다 감사한 마음이 큰 것 같아요. 그래서 제가 이 자리에서 이렇게 인터뷰도 할 수 있는 거고요(웃음).”
영화 ‘블라인드’(2011)로 데뷔한 박보검은 차근차근 얼굴을 알렸다. 스크린과 브라운관을 오가며 다양한 작품을 선보였다. 그러다 인생작 응팔을 만났다. 손이 많이 가는 천재 바둑소년 최택은 덕선(혜리)의 마음만 사로잡은 게 아니었다. 매 회 여성 시청자들은 “우리 택이”를 외쳤다.
특히 애정을 갈구하는 듯한 택이 눈빛에 설레는 이들이 많았다. 눈빛연기가 좋다는 평이 많다는 얘기를 건네자 박보검은 “잘 봐주셔서 너무 감사하다”며 감격한 표정을 지었다. 평소 ‘눈빛이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는 바람을 갖고 있던 모양이다.
“모르는 게 있으면 바로 바로 감독님께 여쭤보면서 연기했어요. 그 순간만큼은 몰입하려고 노력했던 것 같아요. 그게 잘 보였다니 너무 뿌듯하고 영광이네요. 아직까진 눈빛 연기가 쉽지만은 않아요. 근데 언젠가는 진짜 눈빛으로 말하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눈빛으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능력도 갖고 싶고요.”
박보검의 눈은 참으로 선하다. 그래서 택이처럼 순하고 착한 역할이 썩 잘 어울린다. 이전 작품을 살펴봐도 이런 캐릭터가 많았다. 혹여나 이미지가 고정될까 걱정이 되진 않을까.
박보검은 “그런 생각은 해본 적이 없는 것 같다”며 “매 작품마다 열심히 할 뿐 그런 것에 연연하진 않는다”고 답했다. 악역도 물론 가능하다며 자신감을 내비쳤다.
“혹시 KBS 2TV ‘너를 기억해’ 보셨어요? 사이코패스 역이었는데, 어땠나요? 괜찮았나요?(웃음) 기회가 된다면 그런 작품도 또 한 번 해보고 싶어요. 되게 신선하고 재미있었어요.”
“시청률이 잘 나오든 안 나오든, 매 작품마다 배울 점이 많다”는 박보검은 응팔에서는 꾸밈없이 연기하는 법을 배웠다고 했다. 그는 “메이크업이나 헤어도 내추럴하게 하고 편안하게 있는 그대로의 모습을 보여드린 것 같다”며 “꾸미려하지 않고 나다운 연기를 하려고 많이 노력했다”고 설명했다.
앞으로 도전해보고 싶은 역할이 있느냐고 물으니 “되게 많다”며 의욕을 보였다. “교복 입고 청춘로맨스도 찍어보고 싶고, 뭔가 풋풋한 로맨스도 만들어보고 싶어요. 액션이나 코미디도 해보고 싶고요. 무엇보다 많은 사람들한테 감동과 교훈을 주는 메시지가 있는 작품을 맡고 싶어요.”
박보검은 “지금은 제가 잘 표현하고 소화해낼 수 있는 역할이 뭔지 찾고 있는 중인 것 같다”고 말했다. 이어 “모델들은 어떤 옷을 입든 잘 어울리지 않나”라며 “그런 것처럼 저도 어떤 역할을 맡아도 저만의 스타일로 잘 표현하는 능력을 가진 배우가 되고 싶다”고 덧붙였다.
“데뷔 초와 비교하면 많이 달라졌죠. 외적으로는 키가 컸고, 조금 더 남자다워졌고, 성숙해졌고…. 연기적으로도 한 발짝 나아가지 않았나 싶어요. 솔직히 제가 했던 전작들 보면 다 부끄럽고 쑥스러울 것 같아요(웃음).”
연기는 여전히 재미있지만, 한편으로는 더 어려워졌단다. 그는 “많은 사람들에게 공감을 사는 연기를 한다는 게 쉽지 않더라”며 “보시는 분들에게 공감을 일으킬 수 있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했다.
갑작스러운 인기에 흔들릴 법도 하다. 하지만 박보검은 단단했다. 그는 “부담감보다는 더 잘해야겠다는 책임감이 커진다”며 “실망시켜 드리지 않고 더 좋은 모습 보여드려야겠다는 생각이 든다”고 얘기했다. “선한 영향력을 끼치는 사람으로 기억되고 싶다”는 마음가짐도 변함이 없었다.
차기작은 아직 정해지지 않았으나 tvN ‘꽃보다 청춘-아프리카’(꽃청춘)로 팬들의 아쉬움을 달랠 수 있게 됐다. 그는 “꽃청춘에 나가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며 “그 꿈이 빨리 실현돼서 너무 놀랍고 신기했다”고 고백했다.
하얗던 피부를 까무잡잡하게 태워온 박보검은 “지금은 조명이 어둡고 메이크업도 잘 돼서 잘 안 보이는데 엄청 까매졌다”며 웃었다. “손이 테이블 색깔이랑 똑같다”며 두 손을 내보이기도 했다. 그래도 “여행이 너무 즐거웠다”는 그는 “또 하나의 잊지 못한 추억을 만들었다”며 행복해했다.
이 긍정킹의 다음 행보가 무척이나 궁금해진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