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으로부터 117년 전 오늘, 함경북도 회령과 종성에 살던 네 가문 142명이 두만강을 건넜다. 한학자 규암 김약연과 문익환 목사의 고조부인 문병규 등이 주축이었다. 이들은 북간도 화룡현 지신향에 터를 잡고 마을을 세웠다. 이름하여 ‘명동촌’. 동쪽에 있는 고국 조선을 비추는 마을이란 뜻이다.
허허벌판을 개간하는 이주민의 삶이었지만 이들은 집을 대충 짓지 않았다. 중국식 가옥이나 간이 움막 대신 기와를 얹은 한옥을 지었다. 전형적인 함경도 8칸 한옥 형식이었다. 그리고 막새(한옥 지붕 추녀 끝에 사용하는 기와)에는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는 무늬를 넣었다. 태극 문양과 무궁화, 그리고 십자가였다.
김약연의 증손자 김재홍 ㈔규암김약연기념사업회 사무총장은 어렵게 얻은 이 막새를 지난해 7월 한신대 신학대학원에 기증했다. 김약연이 명동촌에 세운 ‘명동학교’와 ‘명동교회’ 출신들이 이곳의 뿌리가 됐기 때문이다. 당시 정재면 목사는 명동학교에서 성경을 가르칠 것을 조건으로 내걸었다. 이를 계기로 전통적인 유학을 사상적 배경으로 하던 명동촌은 기독교 신앙정신의 중심지로 거듭나게 된다. 명동촌 출신인 문익환 목사와 동생 문동환 목사를 비롯해 인근 용정 지역의 강원룡 목사 등은 한신대의 주축이 됐다. 정재면 목사의 아들 정대위 목사는 1980년대 한신대 학장을 지내기도 했다.
한신대 신대원은 18일 서울 강북구 인수봉로 서울캠퍼스 장공기념관 지하1층 ‘명동촌 막새전시장’을 개막했다. 김 사무총장이 기증한 막새 세 점과 함께 당시 생활상을 보여주는 사진들을 전시했다.
김 사무총장은 “당시 집집마다 태극기와 십자가를 넣은 기와 밑에서 살면서 독립에 대한 열망과 기독교 신앙을 키웠던 것”이라며 “그 정신이 한신대의 시작이 됐다”고 말했다.
처음 막새가 발견됐을 당시 학계에서는 다각형 5엽 꽃문양이 대한제국 이황실을 상징하는 이화라고 봤다. 하지만 2007년부터 막새를 집중적으로 연구한 김시덕 대한민국역사박물관 학예연구원은 “역사적 심성학으로 봤을 때 무궁화가 확실하다”고 말했다. 김 연구원은 “당시 집집마다 있던 막새는 당시 민족의식을 고양하는 기반이 됐다”며 “이 같은 문화적 토대에 힘입어 항일독립투쟁이 가능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신대는 명동촌 막새전시장이 21세기 민족정신을 되새기는 역사적 공간으로 자리잡도록 할 계획이다. 연규홍 한신대 신대원장은 “막새에는 허허벌판 개척지에서 자기 정체성을 잃지 않고 한국식 문화와 전통을 지키며 생활했던 분들의 개척자 혼이 담겨 있다”며 “이 막새가 전시관을 찾는 이들에게 민족정신을 되새기고 꿈을 잃지 않도록 하는 존재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날 행사에는 김 사무총장과 김 연구원 등 기념사업회 관계자들과 연 신대원장과 한신학원 이형호 이사장 등이 참석했다. 또 1930년대 장공 김재준 선생이 교목으로 있었던 중국 룽징의 은진학교를 다녔던 강영태(85)씨 등 수학자 3명이 참석해 자리를 빛냈다.
김나래 기자 narae@kmib.co.kr
민족의식과 기독교 신앙 보여주는 명동촌 막새전시장 개막
입력 2016-02-18 15:4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