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강남구에 위치한 토지매입회사 T개발은 2010년 5월 경기 고양시 덕양구 행신동 토지272㎡에 대한 소유권이전등기를 완료했다. 임경묵(71·구속) 전 국가안보전략연구소 이사장의 사촌동생 임모(65·구속)씨로부터 넘겨받은 토지였다. 등기부에 명시된 거래가액은 4억7560만원이었다.
하지만 T개발은 사실 임씨에게 2억원의 웃돈을 주고 이 토지를 사들인 것으로 드러났다. 시세에 비해 헐값에 땅을 넘겼다고 생각한 임씨 형제가 T개발에 대해 세무조사 압력을 행사하며 추가금 2억원을 받아낸 일이 검찰 조사 결과 드러난 것이다. 이 과정에는 ‘정윤회 문건’의 진원지로 지목되며 곤욕을 치른 박동열(63) 전 대전지방국세청장이 동원된 것으로 조사됐다.
검찰에 따르면 임씨는 T개발에 넘기기로 약속한 토지 가격이 너무 싸다고 생각해 T개발 대표 지모(43)씨를 압박, 결국 추가 금액을 포함해 매매잔금을 받아낸 혐의다. 임씨 형제가 택한 수단은 박 전 청장을 통한 세무조사 압박이었다. 박 전 청장은 2008년 이들의 청탁을 받고 서울 강남구 삼성세무서장 2명을 끌어들이기도 했다.
임씨는 박 전 청장이 접촉한 삼성세무서장들의 도움으로 지씨를 만날 수 있었다. 첫 만남에서 지씨는 임씨에게 “다른 토지주들과의 형평상 추가금 요구를 들어줄 수 없다”며 거절했다. 이 같은 입장을 임 전 이사장에게 알린 임씨는 2009년 지씨를 다시 만났을 때에는 사촌형의 지위를 들먹이며 겁을 줬다. “우리 형이 임경묵인데 과거 안기부 고위직 출신이고 이명박 대통령이 당선되도록 만든 1등 공신이다. 차기 국정원장으로까지 거론되고 있다.”
임씨는 지씨에게 “형이 국세청 관계자를 많이 알고 있는데 내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운영 건설사를 세무조사받게 하겠다”는 말도 건넸다. 이 같은 엄포를 포함한 만남은 2009년 9월까지 3~4회 계속됐다. 이듬해인 2010년 3월 박 전 청장이 국장으로 있던 서울지방국세청 조사3국은 실제로 T개발을 포함한 지씨의 운영 회사 2곳에 대해 세무조사에 착수했다.
실제 세무조사가 이뤄지자 지씨는 그간 있었던 임씨의 말들이 허풍이 아니라는 사실에 겁을 먹게 됐다. 박 전 청장도 “임씨의 요구대로 매매대금 등을 빨리 지급해 주라”는 요구를 하기 시작한 상황이었다. 겁을 먹은 지씨를 찾아간 임씨는 “형에게 부탁해 세무조사가 잘 마무리될 수 있도록 도와줄 테니 매매잔금 4억2800만원과 추가금 2억원을 지급해 달라”고 말했다.
임씨는 이때 “형은 대통령과도 친하고 국정원 관련기관의 소장으로 있는 대단한 사람” “박 전 청장은 형의 심복”이라고도 말했다. 요구를 들어주지 않으면 세무조사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칠 것 같은 태도였다. 지씨는 결국 2억원의 웃돈을 얹어 매매잔금을 치렀다.
서울중앙지검 특수3부(부장검사 최성환)는 특가법상 알선수재, 공갈 혐의로 임씨를 구속 기소했다고 18일 밝혔다. 검찰은 이와 함께 이미 구속한 임 전 이사장을 구속만기일인 19일 기소할 방침이다. 임 전 이사장은 ‘노무현 전 대통령 차명계좌’ 발언을 한 조현오(61) 전 경찰청장이 정보의 출처로 지목했던 인물이기도 하다. 검찰은 조만간 박 전 청장도 소환 조사하기로 했다.
이경원 기자 neosarim@kmib.co.kr
“우리 형이 MB 당선 1등공신, 세무조사 받게 하겠다” 해결사 형제가 사는 법
입력 2016-02-18 11:31 수정 2016-02-18 12: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