건강한 사람들도 봉사활동을 하는 것은 그리 쉽지 않다. ‘바쁘다' ’피곤하다' ‘시간이 없다' 등 이유도 많다. 하지만 듣지 못하고 말하지 못하면서도 헌신적으로 남을 돕는 이들이 있다. 한국기독교수어연구소(한기수연·소장 이영빈 목사) 청각장애 회원들이 바로 그들이다.
회원들은 매주 목요일마다 ‘수어(手語, 수화언어) 성경’을 제작하는 데 힘쓰고 있다. 지난 11일 서울 구로구 대림동에 위치한 33㎡(10평) 연구소에서 회원들을 만났다. 수어성경 제작 봉사에 나선 이들은 행복한 표정이었다.
인천주안농아인교회 김용환(46·청각장애 1급) 목사는 “봉사하면서 큰 보람을 느낀다. 내가 만든 수어성경을 보고 한 영혼이 구원 받을 생각을 하면 가슴이 벅차 오른다”고 말했다.
전북 장수에서 매주 올라온다는 이강진(55·청각장애 1급) 목사도 “21살 때 사고로 청각장애인이 됐다”며 “외국어를 잘 하는 편이라 수어성경을 만들 때 헬라어를 참고한다. 봉사하는 기쁨이 이렇게 큰 것인지 미처 몰랐다”고 말했다.
이들은 또 모임을 통해 어려움을 서로 나누고 세상 살아가는 법을 주고받고 있다. 휴전선 목함 지뢰 사건처럼 어려운 시국 사건이 일어났을 때는 나라와 민족을 위해 금식기도를 드린다.
이 목사는 “교회는 문자로 된 성경을 사용하고 있지만 문자로 된 성경은 농인들이 이해하기에는 너무 어렵다”며 “농인들에게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는 수어로 된 성경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 목사는 “이제 교회가 이 문제를 좀 더 진지하게 생각하고 서둘러 수어로 된 성경을 보급해 국내 35만 농인들이 복음의 진리를 맛볼 수 있도록 해야 한다. 농인들이 복음을 받아드려 성경 말씀을 듣지 못하는 것이 더 이상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깨닫고 긍정적인 자아관을 가질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수어성경 제작을 위한 연구사업은 2005년 기독교 수화통일을 위한 공청회로부터 시작됐다. 연구사업은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청각장애인이 중심이 돼 진행되고 있다.
한국기독교농아총연합회(한기농총·회장 김재호 목사)에서는 산하에 기독교통일수화위원회를 조직해 국내 최초로 주기도문, 사도신경, 십계명 등에서 기독교 수화용어를 일부 통일하는 작업을 했다. 그동안 기독교 수화용어는 통일되지 못한 채 지역과 교단 및 교회별로 각각 조금씩 다르게 표현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러던 중 2011년 11월 한국에서 아시아태평양수어개발협회(APDSA)가 12개국 대표자들이 참석한 가운데 창립됐다. 성남농인교회 이영빈(61·청각장애 1급) 목사는 한국 대표로 선임됐고, 2013년 10월 한국기독교수어연구소를 개소했다. 특히 지난해 6월 성경번역선교회(GBT선교회)가 동영상을 찍을 수 있는 카메라를 기증하면서 수어성경 제작이 본격 시작했다. 또 수어성경 제작의 원리와 실제를 토론하는 워크숍을 2011년부터 매년 열고 있다. 청각장애인으로 살아오며 느꼈던 설움을 떨치고 자신들에게 알기 쉬운 수어로 복음을 전하자며 의기투합한 것이다. 회원 각자 집에서 연구소 홈페이지(deafkbible.com) 등에 올린 동영상을 검토하고 수정해 촬영·편집하는 작업을 계속하고 있다.
연구소장 이영빈 목사는 “수어는 하나님의 선물”이라며 “한글로 쓰여진 성경을 농인 입장에서 이해하기는 매우 어려운 일”이라고 설명했다. 또 “농인의 언어인 수화언어로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수어성경을 개발해 농인들이 성경에 접근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런 믿음 때문이었을까. 연구소는 1년여 동안 40여개의 수어성경말씀을 담은 동영상을 제작했다. 몇 개의 성경구절이 담긴 동영상이지만 청각장애인들에게 반응이 폭발적이다.
2035년까지 성경 66권을 모두 수어로 제작하는 게 목표다. 미국, 일본 등 수어 선진국에서 수어성경 제작 노하우를 전수받고 있는 상황이다. 미국은 수어성경 제작이 거의 끝나가고, 일본은 20여 년 전 수어성경 제작을 시작해 현재 성경 66권 중 17권을 완성했다.
이날 수화통역을 함께 한 오세황(전 서울시농아교회연합회장) 호주선교사는 “수어성경을 만들려는 청각장애인들의 수고와 노력이 감동적”이라며 “농인 선교를 위한 수어성경 제작 봉사를 하면서 더 큰 은혜와 감동, 그리고 풍성한 열매가 있기를 기대한다”고 말했다.
글.사진=유영대 기자 ydyoo@kmib.co.kr
청각장애인 위한 '수어성경' 동영상 제작 중
입력 2016-02-17 17: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