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들을 데리고 사라진 여자들

입력 2016-02-16 07:05 수정 2016-02-16 07:18
아직 2명이 남아 있다. 정부의 장기결석 초등생 전수조사와 경찰 수사로도 지금까지 소재가 파악되지 않은, 그래서 살아있으리라는 희망이 있는 마지막 아이들이다. 경기 안양과 경남 창원에서 각각 실종된 이들은 허공으로 증발이라도 한 것처럼 현재 행방이 묘연하다.

7년 전 안양에서 사라진 남자아이는 이제 22살로 일찍 입대했다면 전역하고도 남을 나이지만 생존의 흔적은 없다. 주민등록은 오래전 말소돼 서류상으로는 이미 세상에 없는 사람이 돼버렸다.

경찰과 교육당국은 오래 전 끊어진 실마리의 끄트머리만 만지작거리고 있다. 그들이 살아있기만이라도 바라는 것은 지나친 바람일까.



주일에 버려졌다 주일에 사라진 아이

안양 동안구의 한 기독교 장애인 복지지설에서 A군이 사라진 날은 일요일인 2009년 3월 22일이었다. 낮 12시쯤 예배를 마치고 교인들이 위층 식당으로 함께 점심식사를 하러 가려는데 아이가 보이지 않았다. A군은 시설에서 3년 넘게 돌보던 중증 정신지체아였다. 사람들은 흩어져 도로변에 있는 이 3층짜리 건물 안팎을 뒤졌지만 아이는 온 데 간 데 없었다. 반지하 예배당 뒤편 헌금함 위에 쪽지 한 장만 접힌 채 놓여 있었다. 아닌 게 아니라 아이와 바꿔치기 된 종잇조각이었다.

A4용지 비슷한 크기에 줄이 쳐진 종이에는 검정 볼펜으로 네 줄 정도 쓰여 있었다. 형편이 어려워 아이를 맡겼는데 부모로서 못할 짓이고 아이에게도 미안해 다시 데려간다, 그런 내용이었다. 공들여 썼다고 볼 순 없지만 또박또박 쓴 글씨였다. 그는 스스로 친모라고 주장했지만 증거를 놓고 간 건 아니었다.

A군이 시설에 버려진 3년 전 그날도 일요일인 2006년 2월 12일이었고, 시간은 마찬가지로 예배가 끝날 무렵인 낮 12시쯤이었다. 그때도 누가 아이를 놓고 갔는지 본 사람이 없다. 사람들이 고개를 돌렸을 땐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A군만 덩그러니 예배당에 있었다. 그때는 쪽지도 없었다. 그러니 아이를 놓고 갔던 사람과 데려간 사람이 같은 인물인지를 필적으로는 감정할 수 없다.

시설에선 매주 일요일 40~50명이 예배를 본다. 이런 시간에 다 큰 아이를 두고 가기도 하고, 데려가기도 하면서 어떻게 누구의 눈에도 띄지 않았을까. 이곳 예배는 정신지체아동들과 함께하다 보니 아주 소란스러운데 그 틈을 타 아이를 놓고 갔다가 또 데려 간 것으로 보인다고 경찰은 설명했다. 모두가 눈을 감고 기도하는 시간에 다녀갔을 수도 있다. 어느 쪽이든 시설 사정을 잘 아는 사람의 소행일 가능성이 높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과감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사라지고 보니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아이는 시설 운영자인 목사의 호적에 1994년생으로 올려져 실종 당시 나이를 15세라고 해야 하지만 실제 언제 태어났는지는 모른다. 그 나이는 인근 정신지체 특수학교에 자리가 비어있던 초등 4학년에 맞춘 것이었다. 이름도 알 수 없었던 A군은 목사 성을 따랐고 기독교식으로 이름이 붙여졌다. 이 목사가 경기도 다른 지역에서 운영하는 복지시설에도 이런 아이가 여럿 있다. 이렇게 부여된 이름과 나이는 아이가 실종되고 나면 사막 한복판의 신기루처럼 아무것도 아니다. 그 정보로는 아이를 찾을 수 없다.

A군이 사라진 다음날 시설은 인근 파출소에 실종 신고를 했지만 찾겠다는 의지는 희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들은 정말 부모가 데려갔을 것이라고만 생각했다고 한다. 시설 관계자는 15일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중증 지적장애를 앓고 있던 애였다는 걸 알아야 한다. 지체장애인은 새우잡이를 시키거나 섬에라도 팔아먹는 나쁜 놈이 있는데 지적장애인은 크더라도 아무 쓸모가 없기 때문에 (다른 사람이) 공연히 데려갈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시설 측은 ‘친부모로 보이는 사람’이 ‘몰래’ 데려갔다는 점을 여러 차례 강조했다. 자신들도 어쩔 수 없었고, 그럼에도 안심할 상황이었다는 말이지만 그럴수록 장애아동 관리 부실에 대한 책임을 피하려는 인상만 풍겼다. 시설 관계자는 “경찰서에 신고하고 시에 보고하는 걸로 임무를 다했다고 본다”고 말했다. 추가 질의를 위해 다시 전화했을 때는 몹시 불쾌하다는 반응을 보이며 통화를 거절했다.

경찰도 A군을 적극적으로 찾지 않고 사건을 종결했다. 안양만안경찰서 관계자는 “시설에서 부모로 추정되는 사람이 데려갔다고 하니까 경찰도 적극적으로 수사할 사항은 아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를 데려간 사람이 친부모인지와 아이가 안전한지는 별개의 문제인데도 시설과 경찰 모두 A군을 더 이상 걱정하지 않았다.

A군은 실종 직전인 2009년 2월 한 지상파 방송의 의학 다큐멘터리를 촬영했다. 같은 시설에서 생활하는 지적장애 청소년의 사례에 잠시 등장하는데 이때까지만 해도 A군이 사라질 거라고는 시설의 누구도 생각하지 못했다. 방송은 A군이 사라지고 없는 4월 6일 방영됐다.



7년 만에 손바닥 뒤집듯 바뀐 판단

A군 실종 사실은 정부가 초등학교 장기결석자 전수조사를 벌이면서 다시 부각됐다. 사라진 지 7년 만이다. A군이 다니던 특수학교로부터 보고를 받은 교육청이 뒤늦게 소재 파악에 나섰지만 주민등록이 오래 전 말소됐고 생사도 확인되지 않았다. 그러면서 A군 사례는 아동학대 사태의 중심에 놓이게 됐다.

안양만안경찰서는 지난달 27일쯤 내사에 착수하고 형사 4명으로 구성된 전담팀까지 꾸렸다. 상급기관인 경기지방경찰청 지시로 소관이 여성청소년과에서 형사과로 넘어갔다. 사안이 중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인데 이 판단을 왜 7년 전에는 못했느냐는 지적은 피할 수 없다. 당시 경찰은 사안을 오히려 가볍게 봤다.

A군 행방을 추적할 만한 단서가 이제 와 갑자기 나올 리 없다. 경찰은 A군이 실종된 7년 전 그날의 출발선보다도 뒤에 서 있는 셈이다. A군을 데려간 사람이 누군지는 물론 A군이 언제 어디서 태어났는지도 알지 못하니 사건을 어디서부터 풀어가야 할지 막막할 수밖에 없다. 제보에 기대는 방법이 있지만 그러려면 아이의 신상을 공개해야 한다는 부담이 있다.

경찰은 2008년 시설 아동 일제조사 과정에서 확보해둔 A군 DNA를 변사·전과자와 대조했지만 일치하는 사람은 없었다. 해외로 갔는지는 확인하기 어렵다. 애초 제대로 된 호적에 올려졌던 게 아니었기 때문에 경찰이 A군 신원으로는 출입국 여부를 조회해봐야 아무것도 나오지 않는다.

사진으로 대조하며 찾기에도 시간이 많이 흘렀다. 경찰이 가진 건 2006년 사진과 2009년 방송 영상이다. 경찰 관계자는 “3년 차이인 그 두 모습마저 서로 너무 다르다. 지적장애인은 그렇게 모습이 계속 바뀐다고 하더라. 지금은 7년이 지났으니 사진만으로 찾기 더 어려워졌을 것”이라고 말했다. 경찰은 A군에 대한 정보를 최대한 수집하기 위해 경기도와 교육부, 보건복지부에 공문을 보내 관련 자료를 받을 예정이다.



아들을 데리고 사라진 여자

경남 창원에서 진행 중인 장기결석 아동 B군(10)에 대한 수사도 답보 상태다. 창원 중부경찰서는 창원 의창구에서 사라진 B군과 그의 어머니 이모(38)씨를 추적하고 있지만 실종 이후 행적에 대해 아무 단서도 찾지 못하고 있다.

이씨는 월요일이자 겨울방학 이후 개학 첫날인 지난해 1월 26일 학교로 찾아와 B군을 데려갔다. B군은 초등학교 3학년에서 곧 4학년이 될 참이었다. 교실 문밖에서 기다렸던 것으로 보이는 이씨는 1교시가 끝나기가 무섭게 아들을 불러냈다. 무슨 일이이냐는 담임교사에게 “아이를 데리고 병원에 좀 다녀와야겠다”고 했지만 거짓말이었다.

B군은 다음날 출석하지 않았다. 담임교사는 이씨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받지 않았다. 그날 오후 학교에는 경찰관 2명이 찾아왔다. 손자가 사라졌다며 B군 외할아버지가 실종 신고를 한 것이었다.

B군은 이씨와 함께 외가에서 살고 있었다. 미혼모로 알려진 이씨는 혼자 아들을 키우다 아이가 초등학교에 입학할 때쯤 친정으로 들어갔다고 한다. 그렇게 몇 년을 살다가 돌연 아이를 데리고 사라졌다. 방과 후를 기다리지 않고 수업 중인 학교에 찾아왔다는 건 다급했다는 뜻이다. 어떤 사정이든 ‘당장 떠나지 않으면’ 안 됐던 것이다.

집에서도 찾을 정도라면 담임교사 전화라고 받을 리가 없었다. 담임교사는 경찰과 함께 학교 CCTV를 확인했다. 녹화 영상에는 전날 이씨가 B군을 차에 태워 학교를 빠져 나가는 모습이 잡혀 있었다. 차는 렌트카였다. 경찰은 차번호를 조회해 그 차가 등록된 업체를 찾아갔다. 이씨가 차를 반납하고 B군과 걸어 나가는 장면이 그곳 CCTV에 찍혀 있었지만 거기서 끝이었다. 동선이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엄마에겐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이씨 모자에 대한 가출 신고는 바로 해제됐다. 이씨는 지명수배자였다. 여기저기서 1억원 넘게 빌려놓고 갚지 못해 사기 혐의로 고소당한 상태였다. 굳이 가출자 신분으로 찾을 필요가 없었다. B군은 보호자인 이씨와 나간 탓에 가출 신고 대상이 아니었다.

이씨는 2013년 말부터 여러 방법으로 가족과 지인들에게 돈을 받아왔다. 주로 자신이 운영하는 보험에 돈을 넣으면 이자를 더 많이 받을 수 있다고 속였다. 가장 큰돈을 맡긴 사람은 남동생과 그의 약혼녀였다. 각각 8000만원, 2000만원을 건넸다. 이들은 이씨를 가족이라 믿었겠지만 이씨는 가족마저 배반했다. 지인들에게는 100만~200만원씩 받아 사라졌다.

이씨가 왜 이렇게까지 돈을 모았는지는 확인되지 않았다. 가족도 그에 대해 아는 게 전무했다고 한다. 그러면서도 돈 문제로 갈등의 골은 깊은 관계였다. 이씨는 아들을 데리고 사라지기 전날 저녁 집에서 언니와 크게 싸운 것으로 알려졌다.

B군이 사라진 뒤 담임교사와 부장교사가 2차례 집을 방문했지만 B군의 흔적은 없었다. 외할아버지 내외도 손자를 애타게 찾았다. B군 없이 학년이 바뀐 뒤에는 새 담임교사가 3차례 정도 방문을 했다. 수시로 전화를 걸고 우편으로 2차례 학교 출석을 독촉했다. 동사무소에도 협조 공문을 보냈다. 그러면 동사무소 직원이 아이 집을 찾아가 보호자와 상담하고 그 내용을 학교에 알려온다.

소용은 없었다. 학교는 처음에는 B군을 결석으로 처리하다 90일 이후부터 ‘정원 외’로 관리했다. 창원교육지원청은 관내 장기결석 초등생 전수조사를 마친 뒤인 지난달 중순 소재 파악이 안 되는 10명을 경찰에 신고했다. 그 중 B군만 남은 상황이다. 나머지는 모두 무사한 것으로 확인됐다.



할아버지가 사랑한 손자

B군은 실종 전까지 아무 문제가 없는 아이였다. 교육청 관계자는 “학대나 방임을 당했다면 아마 학교에서 조치를 했을 텐데 그렇지 않았다. 교우관계도 무난했던 아이였다”고 전했다. B군 학교의 교감은 “조용한 편이었지만 옷차림이나 친구관계 같은 게 문제없었다”며 “할아버지 할머니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것으로 기억한다”고 했다.

외할아버지는 생전에 손자를 찾으려고 했다. 아내에게 “죽기 전에 손자를 보고 싶다”고 했지만 바람은 이뤄지지 않았다. 그는 74세였던 지난해 10월 지병으로 숨을 거뒀다. 2008년부터 암 수술을 받았는데 계속 재발한 탓이 컸다. 이씨는 아버지의 사망 소식을 못 들었는지 그때도 나타나지 않았다. 그는 집을 나간 뒤 가족과 연락한 내역이 전혀 없다.

B군 외할머니는 남편과 사별한 뒤 이웃동네로 이사했다. 딸과 외손자를 찾느라 숱하게 전화를 받고 경찰서도 자주 들락거렸다. 그러다 병원 신세까지 졌다. 주변에서 손자 행방을 물으면 창피해서 “엄마가 데리고 경주에 놀러갔다”고 대답한다.

경찰은 이씨와 가족의 금융거래와 휴대전화 통화 내역, 건강보험공단 기록에서부터 인터넷쇼핑몰 거래 내역까지 분석했지만 아무것도 나오지 않았다. 자기 명의로는 휴대전화도 안 쓰고, 은행이나 병원도 안 간다는 얘기다. 이렇게 살기는 불가능에 가깝다. 그는 대포통장이나 남의 명의로 생활하고 있을 수 있다. 조력자가 있을 거라는 얘기도 된다.

경찰은 이씨 가출 전 1년치 통화내역을 추적해 이씨와 통화한 150명가량을 모두 확인했다. 통화를 많이 한 사람은 직접 찾아가 대면했는데 다들 이씨와 일상적 대화만 했다고 진술했다. 아이나 생활고에 대한 이야기는 없었다고 한다. 교육청 관계자는 “경찰에서 그렇게 찾는데 안 나타나는 걸 보면 상식적으로 납득이 안 간다”며 “아이가 잘 있길 바라는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강창욱 김판 박세환 기자, 세종=이도경 기자 kcw@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