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한 바오로 2세 교황, 유부녀와 "긴밀한 우정"

입력 2016-02-15 20:15
교황 요한 바오로 2세(1920∼2005년)가 생전에 미국인 유부녀 학자와 30년 넘게 서신을 주고받고 집을 방문하는 등 각별한 관계를 유지해왔다는 주장이 제기됐다.

영국 BBC 방송은 15일 요한 바오로 2세와 우정을 나눈 주인공은 폴란드 태생의 미국인 여성 철학자인 안나-테레사 티미에니에츠카(1923∼2014년)라고 소개했다. BBC는 이 기사를 내보내면서 “John Paul letters reveal ‘intense' friendship with woman”이라고 제목을 달아 둘 사이가 기본적으로 우정임을 전제하면서도 ‘긴밀한 관계’였다는 점도 강조했다.

BBC는 둘의 인연이 교황이 폴란드 크라쿠프의 카롤 보이티와 추기경이던 시절인 1973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전했다. 동료 학자와 결혼해 세 아이를 둔 티미에니에츠카는 교황의 저서 ‘행동하는 사람’(Acting person)을 영어로 번역 출간하는 작업을 위해 폴란드로 건너갔다. 이후 4년 동안 두 사람은 서신 교환과 방문을 통해 공동 출간작업을 하며 개인적으로도 친밀한 사이가 됐다.

요한 바오로 2세는 추기경 시절 티미에니에츠카를 캠핑 여행에 종종 초대했고, 1976년 회의 참석차 미국을 방문했을 때는 뉴잉글랜드의 티미에니에츠카의 집에 초대받아 다른 가족들과 함께 머무르기도 했다. BBC는 캠핑 당시의 사진도 공개했다. 캠핑에서 교황은 런닝셔츠와 반바지 등 간편한 옷을 입고 서스럼없이 그녀를 대하는 모습이었다.

BBC는 또 1973년 시작된 두 사람 사이의 서신 교환이 처음에는 공식적인 내용 위주였지만, 우정이 깊어갈수록 친밀한 내용으로 변해갔다고 전했다. 교황은 또 자신이 어린 시절 첫 영성체 때 아버지로부터 선물 받은 스캐풀라(성스러운 글귀나 그림이 그려진 작은 천 조각에 긴 끈을 연결해 몸에 지니도록 한 성물)를 티미에니에츠카에게 선물하기도 했다. 이 스캐풀라 역시 BBC가 공개했다.

교황은 1979년 10월 편지에서 이에 대해 설명하면서 “나는 이미 지난해에 ‘나는 당신에게 속해 있다'는 말에 대한 답과 그 방법(스캐풀라)을 찾았습니다. 이것은 당신이 가까울 때나 멀리 있을 때, 모든 상황에서 내가 당신을 받아들이고 느낄 수 있도록 할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요한 바오로 2세의 이러한 편지는 티미에니에츠카 사망 후 폴란드 국립도서관에 보관돼 있다 이번 BBC 다큐멘터리를 통해 알려지게 됐다. 둘 사이의 우정은 요한 바오로 2세가 1978년 교황이 되고 나서도 2005년 선종할 때까지 30년 넘게 이어졌다.

티미에니에츠카는 요한 바오로 2세가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19990년대에도 꾸준히 그를 문병하고 선물을 보냈으며 그의 선종 전날에도 방문했다고 BBC는 전했다. BBC는 교황청 내부에서 교황이 그녀의 뺨을 쓰다듬는 사진도 내보냈다. 가톨릭에서는 통상 신부가 신자의 머리나 얼굴 부분을 만지며 강복(降福, blessing)을 내리는데, 이 사진 역시 그런 장면으로 보인다.

티미에니에츠카는 생전 인터뷰에서 요한 바오로 2세와의 친분에 대해 “서로 아끼는(mutually affectionate) 관계였다”고 말하면서도 “중년의 성직자와 어떻게 사랑에 빠질 수 있겠느냐”며 우정의 선을 넘지 않았다고 답했다.

티미에니에츠카의 절친한 지인들은 그러나 그녀가 요한 바오로 2세에 대해 이성적으로 끌렸던 것은 확실하며, 다만 교황 쪽에서 그런 감정의 깊이를 알지는 못했을 것이라고 증언했다고 텔레그래프는 보도했다.

바티칸은 BBC의 다큐멘터리 내용에 대해 “두 사람의 관계는 비밀연애 같은 것이 아니었다”고 연애 관계는 아니라고 설명했다고 텔레그래프는 덧붙였다.

손병호 기자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