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캘리아가 1986년 공화당 로널드 레이건 대통령의 지명으로 먼저 대법관이 됐고, 긴즈버그는 93년 민주당 빌 클린턴 대통령의 지명을 받았다.
스캘리아 대법관이 보수적인 남성이라면 긴즈버그 대법관은 진보를 대변하는 여성 법조인이다.
지난해 동성결혼 합법화 판결을 두고 긴즈버그 대법관은 이 사안을 대법원이 심리하는 것을 환영하고 동성결혼을 적극 지지한 데 반해 스캘리아 대법관은 법원이 아닌 사람들이 판단할 문제라며 반대 의사를 나타냈다.
이처럼 이념 문제에서 대척점에 서있었지만, 두 사람은 누구보다 절친한 친구였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14일 스캘리아 대법관의 사망을 슬퍼하는 애도사를 발표했다.
세인들이 스캘리아 대법관에 대해 지칠 줄 모르는 열정과 번뜩이는 재치의 소유자, 신랄한 판결문을 작성하는 능력자, 그리고 상냥한 사람으로 평가하는 것을 두고 다 맞는 설명이라며 훌륭한 법관이었다고 추모했다.
그러면서 “우린 때때로 동의하지 않았으나 최고의 친구였다”면서 “스캘리아의 반대 의견을 수렴해 최종적으로 발표한 내 판결문은 초안보다도 훨씬 나았다”며 치밀한 법 해석으로 유명한 스캘리아를 높게 평가했다.
그는 또 두 사람의 우정을 다룬 데릭 왕의 코믹 오페라 ‘스캘리아/긴즈버그’를 언급하며 “가수가 끝부분에 듀엣으로 ‘우린 다르지만 하나’라는 노래를 부른다”면서 “법을 해석하는 방식은 서로 달랐지만, 미국 헌법과 연방대법원을 숭상하는 건 같았다”고 말했다.
3살 연상인 긴즈버그는 스캘리아와 워싱턴DC 항소법원에 함께 재직하면서 우정을 쌓았다.
CNN은 두 판사가 상대편 가족과도 친해 함께 여행을 다니고 부부 동반으로 새해를 맞이한 적도 있다고 소개했다.
긴즈버그 대법관은 로이터통신과의 인터뷰에서 “스캘리아를 좋아하지만, 때론 목 졸라 죽이고 싶다”며 철저한 논리로 무장한 스캘리아에게 애증의 감정을 드러내기도 했다.
김의구 기자 eg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