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눈길을 끄는 사진이 뉴스에 실려 나왔다. 이젠 늙어서 주름살투성이에 호호백발이 된 70대의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
두 사람이 46년 전 주연해 영화사에 남을 만큼 히트했던 영화 ‘러브 스토리’의 한 장면을 재연하듯 영화에 등장했던 것과 비슷한 컨버터블 자동차에 타고 영화의 배경이었던 하버드대학을 둘러보는 장면이었다. 당시 싱그러운 청춘의 대학생 남녀를 연기했던 두 사람을 기억하는 팬들이라면 어느새 세월이 이토록 흘렀는가 하는 회한과 함께 감회가 새로웠을 법하다.
이 사진을 계기로 영화 속 유명했던 커플들이 영화필름처럼 머릿속에 주르륵 펼쳐졌다. 마치 ‘시네마 천국’의 한 장면처럼. 맨 먼저 생각난 커플은 ‘당연하게도’ 클라크 게이블과 비비안 리다. 이들이 공연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1939)’는 설명이 필요 없는 고전 걸작이다.
요즘 한국영화에만 길들여진 일부 관객들은 몰지각한 영화업자들의 제목 도용으로 인해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라면 ‘차태현 주연의 웃기는 사극’을 떠올릴지 몰라도 그같은 걸작의 제목 도용이야말로 악질 코미디다. 아니 범죄다. 어쨌든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에서 보여준 게이블과 리 커플의 ‘케미스트리’는 77년이 지난 지금 봐도 멋지기 이를 데 없다.
그 다음으로는 프레드 아스테어와 진저 로저스가 있다. 1930~40년대 할리우드를 지배한 댄싱커플이다. 두 사람은 ‘톱 해트(1935)’ ‘스윙타임(1936)’ 등 모두 10편의 뮤지컬 영화에서 공연했다. 이들에 관해서는 나중에 이탈리아의 명장 페데리코 펠리니가 마르첼로 마스트로얀니와 줄리에타 마시나를 써서 '진저와 프레드(1986)‘라는 일종의 오마주 영화를 만들기도 했다.
진저와 프레드 못지않게 커플로 자주 출연함으로써 마치 최불암-김혜자 처럼 부부가 아니면서 부부 같은 이미지를 주었던 커플도 있다. 스펜서 트레이시와 캐서린 헵번. 두 사람은 ‘초대받지 않은 손님(Guess Who's Coming to Dinner, 1967)'까지 9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그러나 그들은 단순한 동료를 넘어 실제 서로 사랑하는 사이였다. 비록 트레이시가 결혼생활을 청산하지 못해 함께 살지는 않았지만 헵번은 끝까지 독신을 유지하면서 트레이시의 임종을 곁에서 지켜보는 등 평생을 함께 했다. 이들의 이러한 기묘한 사랑은 할리우드의 전설로 남아있다.
그런가 하면 단 한편에서 공연했음에도 여러 편에 함께 출연한 것 이상으로 깊은 인상을 남긴, 영화 팬이라면 결코 잊어버릴 수 없는 커플들도 물론 있다. 우선 버트 랭카스터와 데보라 커. 프레드 진네만의 명작 ‘지상에서 영원으로(1953)’에서 두 사람이 파도치는 해변에서 수영복 차림으로 보여준 격렬한 러브신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으로 기록된다.
남성미가 넘쳐흐르는 사나이 중의 사나이 랭카스터와 정숙하고 단아한 귀부인형이면서도 타오르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는 미녀 커는 영화 속에서 비록 불륜이기는 하지만 참으로 잘 어울리는 한쌍이었다. 커는 역시 고전 명작 ‘잊지못할 사랑(An Affair to Remember, 1957)'에서 로맨스영화의 왕자 케리 그랜트와도 멋진 커플을 이루었다.
그런가하면 그랜트는 그랜트대로 오드리 헵번과 ‘샤레이드(1963)’에서 기억에 남을 만한 커플연기를 보여주었는데 헵번은 또 그레고리 펙과 ‘로마의 휴일(1950)’에서, ‘티파니에서 아침을(1961)’에서는 조지 페퍼드와 기막힌 한쌍을 연기했다.
좀 더 현재쪽으로 오면 더 많은 커플들이 떠오른다, 뮤지컬의 고전 ‘사운드 오브 뮤직(1965)’의 줄리 앤드류스와 크리스토퍼 플러머. 워낙 아이들 위주로, 가족영화로 스토리가 흘러가서 그렇지 두 사람의 사랑 이야기가 영화의 중요한 축을 이루고 있음을 잊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봤을 때 앤드류스-플러머 커플은 어떤 커플들 못지않게 사랑스럽다.
또 아메리칸 뉴 시네마의 기폭제가 된 ‘우리에게 내일은 없다(Bonnie and Clyde, 1967)'의 워렌 비티와 페이 더나웨이는 어떤가?, 무식쟁이 복싱선수 실베스터 스탤론과 수줍음 많은 노처녀 탤리아 샤이어가 알콩달콩한 연인으로 나온 ‘록키(1976)’는? 법집행관들의 총기 난사로 온몸이 벌집이 된 채 손을 마주잡으려 애쓰면서 죽어가는 비티와 더나웨이의 마지막 모습과 얻어맞아 일그러진 얼굴을 한 스탤론이 복싱경기가 끝난 후 비뚤어진 입으로 ‘애드리언’을 소리쳐 부를 때의 모습은 잊기 어렵다.
이밖에도 ‘해리가 샐리를 만났을 때(1989)’의 빌리 크리스털과 메그 라이언, 그리고 메그 라이언과 톰 행크스(‘시애틀의 잠 못 이루는 밤, 1993’), ‘귀여운 여인(1990)’의 리처드 기어와 줄리아 로버츠, 줄리아 로버츠와 휴 그랜트(‘노팅힐’, 1999)도 마음속 한 구석을 차지하는 커플들이다.
그런가 하면 애송이 커플과 노인네 커플도 기억에 남는다. 영화를 찍을 때 각각 15, 17살이었던 올리비아 허시와 레너드 화이팅(‘로미오와 줄리엣’, 1968)이 전자라면 클린트 이스트우드와 메릴 스트립(‘매디슨 카운티의 다리’, 1995)이 후자다.
그런데 기사에 따르면 라이언 오닐과 알리 맥그로는 ‘러브 스토리’ 촬영 당시 각각 결혼한 상태였음에도 영화 속에서 열렬히 사랑한 상대에게 “강한 애정을 느꼈다”고 한다. 물론 두 사람의 관계는 그 후 불륜이나 재혼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영화 속 커플들 가운데는 결혼에 골인해서 실제 부부가 된 유명한 커플들도 적지 않다.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게 험프리 보가트-로렌 바콜이다. 할리우드 남자배우의 전설 보가트를 커플과 연관지을 때 떠오르는 상대는 단연 ‘카사블랑카(1942)’의 잉그리드 버그먼이지만 평생 반려자라는 의미에서는 두 말 할 것 없이 로렌 바콜이다. 보가트가 바콜을 만난 것은 1944년. 헤밍웨이 원작 ‘부자와 빈자(To Have and Have Not)'를 같이 찍을 때였다.
당시 보가트는 44세의 유부남, 바콜은 19세의 아가씨였다. 그러나 두 사람은 즉각 사랑에 빠져 이듬해 결혼했다. 바콜은 자신보다 한참이나 나이가 많은데도 보가트에게 얼마나 빠져있었는지 그가 1957년에 세상을 떠나자 그를 잊지 못해 그와 외모가 닮은 배우 제이슨 로바즈와 재혼하기도 했다.
보가트-바콜 못지않게 유명한 부부 커플이 리처드 버튼-엘리자베스 테일러다. 1963년 사극 ‘클레오파트라’ 촬영 때 만난 두 사람은 모두 기혼자였음에도 금세 결혼에 성공했다. 이후 이혼했다가 재결합하는 등 우여곡절을 겪으면서 ‘누가 버지니아 울프를 두려워하랴(Who's Afraid of Virginia Woolf, 1966)', ‘말괄량이 길들이기(Taming of the Shrew, 1967)'를 비롯해 모두 11편의 영화에서 공연했다.
최근으로 오면 ‘미스터 앤드 미세스 스미스(2005)’ 같은 영화를 내놓은 브래드 피트-앤젤리나 졸리 커플이 유명하다. 그야말로 할리우드 최고의 선남선녀(善男善女)로서 인기 절정에 있는 두 사람의 결혼은 모든 이들의 로맨틱한 환상을 충족시켜주고도 남았다. 얼마나 한 쌍이 잘 어울렸으면 두 사람의 이름을 결합한 ‘브랜젤리나 부부’라는 신조어가 만들어지기까지 했다.
앞으로도 새로운 영화 속 커플들이 속속 등장하겠지만 ‘성 소수자’ 같은 수상쩍은 용어를 앞세워 동성(同性)이 커플 행세를 하는 꼴은 보지 않았으면 좋겠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
[김상온의 영화이야기] (57) 영화 속 커플들
입력 2016-02-15 10:5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