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말라야와 두 달차로 개봉한 ‘검사외전’까지 터졌다. 지난 3일 개봉한 영화는 11일 만에 관객 750만명을 들였다. 최근 서울 삼청로 한 카페서 진행된 인터뷰에서 황정민은 “그저 감사할 따름”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히말라야 찍고 정신적으로나 육체적으로 좀 힘들었을 때 검사외전 시나리오를 받았어요. 아무 생각 없이 편안하게 읽을 수 있는 대본이니까 한번 읽어보라고 하더라고요. 근데 정말 재미있게 훅 읽히는 거예요. 그래서 하게 됐어요.”
검사외전은 살인 누명을 쓰고 수감된 유능한 검사(황정민)가 감옥에서 만난 전과 9범의 사기꾼(강동원)과 손잡고 누명을 벗는 이야기를 그린 범죄오락물이다. 극중 황정민은 최고의 실력을 갖췄으나 다혈질 성격 때문에 곤경에 빠지는 검사 역을 맡았다.
그는 작품에 무게감을 부여했다. 그 위에서 상대역 강동원이 마음껏 뛰놀았다. 다행히 이 둘이 적절한 조화를 이루면서 영화는 균형을 찾았다. 완전히 힘을 빼고 자신을 내려놓은 강동원 연기에 황정민도 만족했다.
“영화 보면서 완전 낄낄대고 웃었죠. 동원이 귀엽지 않아요? 여자 관객들이 까르륵까르륵 난리던데? 내가 했으면 ‘아, 뭐야’ 그랬겠지(웃음). (강동원이) 정말 200~300% 자기 몫을 한 것 같아요. 고맙죠. 배우는 자기 역할의 최고를 해냈을 때 빛을 발하잖아요. 팀원으로서 얼마나 기분이 좋아요.”
물론 이 작품이 쉽기만 했던 건 아니다. 몇몇 영화적인 설정을 받아들이기까지 시간이 걸렸다. “오직 제 문제였던 것 같아요. 교도소 안에 있는 사람이 나간다는 설정인데…. 좀 더 집요하게 따지고 들어가면 설득력이 없을 수 있잖아요. 진짜 종이 한 장 차이거든요.”
황정민은 “영화는 영화적으로 바라봐야 한다는 걸 알고 있으면서도 난 그렇게 작업을 안 해왔기 때문에 (혼란스러웠다)”며 “그런 것들을 빨리 인정하고 오케이 했어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고 털어놨다. 다행히 해결점을 찾았다. 그는 “딱 인정을 하고 나니 굉장히 마음이 편해지더라”고 회상했다.
코믹한 요소가 많은 작품이었지만 황정민의 애드리브는 많지 않았다. 다만 디테일한 아이디어는 직접 냈다. 현장에서 이일형 감독과 대화를 나누며 캐릭터 설정을 잡아갔다.
황정민이 아이디어를 정리하는 과정은 좀 특이하다. 대본 볼 때 내용을 일일이 손으로 다시 쓴다. 그때그때 생각나는 아이디어를 함께 적어놓는 식이다.
“항상 대본은 제 손으로 다시 써요. 그럼 잘 외워지기도 하고, 손 글씨로 써서 붙여놓으면 뿌듯해요(웃음). 그리고 쓰다보면 아이디어가 떠오르거든요. 그럼 또 적어놓고. 바뀐 대본이 올 때마다 반복해요. 몇 번씩 그런 작업들이 필요한 거예요.”
만인이 인정하는 연기력은 역시나 그냥 얻은 게 아니었다. 황정민은 “연기에도 분명 테크닉이 필요하다”며 “작품 속 인물은 내가 연기를 할 때 비로소 살아 숨쉬기 때문에 철저하게 많은 분석을 한다”고 설명했다.
그런 그에게도 요즘 두려운 게 있다. ‘관객들이 혹시 지겨워하진 않을까.’ 작품 빈도가 잦아지면서 자연스레 그런 생각이 늘었다. “작품 할 때마다 늘 두렵다”는 그는 매번 새로운 느낌을 찾는 게 본인에게 주어진 숙제라고 했다.
“(내가 나온) 영화가 줄기차게 나오는데 당연히 보시는 분들은 ‘아우 지겹다. 또 하네’ 당연히 그러실 수 있죠. 하지만 저는 작품마다 어떻게든 새로운 느낌으로 인물에 다가가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인물들마다 다 매력이 다르단 말이에요. 그 매력을 찾아내기까지 되게 힘든 게 있어요. 의문스럽고 부담스럽죠. 근데 저는 배우잖아요. 계속 해야 될 의무감이 분명히 있는 거죠. 그렇기 때문에 그건 제가 가지고 있는 숙제라는 생각을 해요.”
그는 “당연히 황정민이 연기를 하니까 전작의 인물과 비슷하게 보일 수 있다”며 “하지만 인물마다 다른 점이 분명히 있을 거라 생각한다”고 말했다. 그래서 새 작품에 들어간 땐 ‘또 비슷해보이진 않을까’ 고민하기보다 새로운 지점을 찾는 데 집중한다고 했다.
“오히려 더 열심히 해야 하지 않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건 뭐 몇 년 만에 작품을 내놓는다거나, 그렇게 시간으로 해결될 문제가 아니거든요. 내 스스로가 빨리 깨야하는 거죠.”
황정민의 부지런한 행보는 계속된다. 최근 영화 ‘아수라’ 촬영을 마친 그는 오는 5월쯤 차기작 ‘곡성’을 내놓는다. 류승완 감독 신작 ‘군함도’ 촬영도 예정돼있다.
요즘에는 뮤지컬 ‘오케피’ 공연에 한창이다. 올해 안에 셰익스피어 연극을 무대에 올릴 계획도 갖고 있다. 육체적인 힘듦 따위는 무대에서 얻는 희열로 잊는다. “아침에 일어나서 ‘어우, 몸이 왜 이러지’ 그러다가도 또 극장가면 싹 나아요. 어쩔 수 없나 봐요(웃음).”
믿고 보는 배우 타이틀에 대한 부담감은 느끼지 않느냐 물었다. “응원으로 다가올 뿐 부담은 전혀 없다”는 답이 돌아왔다. 이 배우의 이유 있는 자신감, 이렇게 멋질 수가.
“어떤 영화든 허투로 작업한 적이 단 한 번도 없었어요. 작품 하는 동안은 미친 듯이 임했죠. 관객들이 그걸 인정해주시는 거라 믿어요. 분명히 작품 운도 있었고, 모든 것이 잘 맞아 떨어진 거죠. 근데 한편으로는 제 스스로에게 박수쳐줄 수 있는 부분이라고 생각해요. 감사하죠. 부담은 절대.”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