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참사 특별조사위원회(특조위)가 좀처럼 앞으로 가지 못하고 있다. 극명한 정치적 입장차가 여당 추천 위원의 잇단 이탈로 나타나는 상황이다. 취임 8개월 만인 12일 사의를 표명한 이헌 부위원장은 지난해 8월 사퇴한 조대환 전 부위원장의 후임이자 여당 추천 위원 5명 중 유일하게 남은 사람이었다. 그런 이 부위원장이 사퇴하면 여당 측 위원 전원이 빠지게 돼 ‘반쪽 특조위’라는 지적을 피할 수 없게 된다. 이 부위원장은 조 전 부위원장과 마찬가지로 “특조위가 편향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자진해산’을 주장하고 나섰다.
떠나려는 사람
이 부위원장은 이날 서울 중구 특조위 대회의실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세월호 특조위의 ‘기울어진 운동장’이 더욱 강화·견고해져 ‘절벽으로 변해버린 운동장’이 됐다. 이제는 더 이상 버틸 여력도 버텨야 할 명분도 없게 됐다”며 사퇴 의사를 밝혔다.
그는 “부위원장의 권한 등을 제대로 행사하지 못했다”며 “이석태 위원장의 위법한 최종결재권 행사, 직원들에 대한 직접 지시 등으로 본래의 권한을 침해당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 “지난해 예산집행에 관한 보고를 받고자 했으나 현재까지 받지 못했다”고 했다.
이 부위원장은 특조위가 접수한 진상규명 조사신청 처리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 지난해 12월 청문회가 인민재판식으로 진행됐다며 “세월호 참사의 올바른 진상규명(이라는 취지)에 역행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그는 남아있는 이석태 위원장과 위원들에 대해 “진상규명을 위해 현재 할 수 있는 일에 최선을 다해달라”며 “현재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 착잡하다”고 덧붙였다. 희생자 유가족에 대해서는 “그분들 뜻을 따르지 못해 미안한 마음이 있지만 실망한 부분도 있다”며 “희생자 유가족이 생각한 ‘여한 없는 진상규명’과 내가 생각한 진상규명은 거리가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이 부위원장은 “세월호특별법은 여야가 정치적으로 타협해 만든, 근본적으로 잘못된 법”이라며 “특조위원 전원이 사퇴하고 자진해산하는 것이 낫다”고 주장했다.
남는 이들
남아있는 위원들은 난감함을 드러냈다. 대한변호사협회 추천 위원인 박종운 안전사회소위원장은 국민일보와의 통화에서 “특조위 조사대상자에 대통령을 포함하는 데 동의한 사실이 정부와 여당으로 흘러들어갔고, 이 부위원장이 함께 일하는 파견직 공무원들과 갈등이 있었다”고 전했다. 그는 “특조위 내에서 할 일은 하겠다고 하신 분이 갑작스레 사퇴하신다고 해 당혹스럽다”고 말했다.
박 위원은 예산안을 보지 못했다는 이 부위원장의 주장에 대해 “이 부위원장이 ‘2015년 결산 집행내역’이 나오기 전인 지난해 11월부터 열람을 요청했던 것으로 안다. 결산안을 종합하고 정리하는 과정에서 시간이 걸렸고 이 과정에서 파견공무원들과 갈등이 있었던 것으로 안다”고 설명했다.
지난해 12월 청문회가 정치공세로 변질됐다는 지적에 대해서는 “당시 법원에서 나온 판결이 정부의 대응에 대한 판결이었기 때문에 다수 특조위원이 정부의 대응을 청문회의 주요 주제로 삼은 것”이라며 “침몰 원인과 정부의 미흡한 대응 모두 조사대상인데 이 중 하나인 정부의 대응을 다뤘다고 정치공세라고 문제 삼는 것은 억울하다”고 말했다.
특조위가 성과를 내지 못했다는 주장에 대해 그는 “지난해 8월에 예산을 받고 12월 청문회 준비를 하느라 조사활동이 늦어진 것은 사실이지만 조사 활동은 진행되고 있다”고 반박했다. 그러면서 “수사와 조사를 모두 공개할 수는 없기 때문에 외부에 알려지지는 않았지만 열심히 조사하고 있고, 이 부위원장도 그 사실을 알고 계실 것”이라고 했다.
희생자가족대표회의 추천 인사인 장완익 위원은 “세월호특별법이 근본적으로 잘못됐다”는 이 부위원장의 비판에 대해 “이 부위원장이 주장하는 상설특검은 2014년 특별법 제정 과정에서부터 논의된 부분”이라며 “이미 합의가 된 부분이며, 상설특검으로 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은 정부·여당의 주장과 같다”고 지적했다. 이어 “특별검사 신청이 두 번으로 제한되고, 자체적인 수사권이 없다는 등의 아쉬움이 남는 법이긴 하지만 이 부위원장에게 동의하기는 어렵다”고 덧붙였다.
삐걱대는 특조위
특조위는 이미 반쪽이나 다름없었다. 여당이 추천한 특조위원들이 연이어 자격을 상실하거나 회의에 불참한 탓이다. 여야 합의로 출범했다는 사실이 무색해지는 대목이다.
여당 추천 인사 중 석동현·황전원 위원은 오는 4월 총선 출마를 위해 새누리당에 입당하면서 각각 지난해 11월과 12월 위원 자격을 상실했다. 다른 여당 측 인사인 차기환 위원은 지난해 11월 특조위가 세월호 참사 당일 박근혜 대통령의 행적에 대해 조사해 달라는 신청을 논의하기로 하자 다른 여당 추천 위원들과 함께 사퇴 의사를 밝힌 뒤 회의에 출석하지 않고 있다. 고영주 위원도 마찬가지다. 두 위원은 ‘장기결근’으로 처리돼 있다.
이 부위원장은 이날 기자 간담회에서 “면직 처리된 두 사람의 후임인사도 안 되고 있다”며 “여당 측의 추가 인선은 쉽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전망했다.
박종운 상임위원은 여당 추천 위원이 빠진 상황에 대해 “오는 15일 특조위 전원위원회에서 이 부위원장의 이야기를 듣고 다른 위원들과 함께 앞으로의 방향에 대해 논의할 것”이라고 말했다.
홍석호 기자 will@kmib.co.kr
한목소리로 외쳤던 '세월호 진상규명'은 어디로… 반쪽 난 특조위
입력 2016-02-12 18:4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