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바람이 불던 지난해 11월 어느 날 올해 서른다섯 살인 우위톈씨가 전동오토바이를 몰고 1시간이나 달려 베이징 중심가에 위치한 베이징대 제1의원에 도착한 것은 새벽 2시였습니다. 하지만 이미 병원 접수창구 앞에는 사람들이 자리를 맡았다는 표시로 둔 의자와 물병이 줄지어 서 있습니다. 아내가 임신 중이라 산부인과 전문의 진료 예약을 위해 왔는데 오전 7시 접수창구가 열리자마자 다 ‘매진’입니다. 진료 예약이 될 거라고 생각하고 오전 8시에 아내를 병원에서 만나기로 했다는 우씨에게 암표상이 접근합니다. 그는 “원래 14위안(약 2500원)이던 진료예약권을 300위안(약 5만5000원)이나 달라고 한다”면서 “너무 비싸 거절했다”고 안타까워합니다.
중국의 병원에서 진료를 받기 위해서는 기차표처럼 미리 ‘예약 티켓’을 사야합니다. 가격은 일반의냐 전문의냐에 따라 다르고 전문의의 경우에도 지명도에 따라 찬차만별입니다. 이 틈을 노리고 병원에서는 암표상들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최근 중의학 전문으로 유명한 베이징 광안먼의원에서 암표상들의 횡포에 분통을 떠뜨리는 한 여성의 동영상이 중국 인터넷을 달궜습니다. 지난달 19일 촬영된 영상에서 이 여성은 “300위안 하는 진료예약권을 4500위안(약 83만원)에 사라고 한다”면서 “접수 직원과 암표상들이 내통을 한 게 틀림없다”고 소리를 지릅니다. 북경청년보와 연락이 닿아 “그냥 보통 대학생”이라고 소개한 이 여성은 원래 동북지방에 거주하지만 엄마 병 치료를 위해 베이징에 왔다고 합니다. 병원 근처 지하 방을 하루 130위안을 주고 얻은 뒤 움직이지 못하는 엄마를 등에 업고 병원을 찾았지만 번번이 진료를 받지 못했습니다. 소란을 피웠던 당일 암표상이 찾아와 거절했더니 “앞으로 가장 먼저 와서 줄을 서도 진료를 받지 못할 줄 알아라”라고 협박까지 받았다고 합니다.
지난달 26일 북경청년보 기자는 광안먼의원 암표상과 직접 접촉해 봤습니다. 두 명이 접근해 와 각각 1500위안(약 27만원)과 6000위안(약 110만원)을 불렀다고 합니다. 가격 차이는 날짜와 시간에 따라 다릅니다. 원래 가격은 500위안(약 9만원)입니다. 암표상들은 “환자의 이름과 신분증 번호만 주면 줄 설 필요 없이 원하는 시간에 와서 진찰을 받으면 된다”고 친절하게 알려줍니다.
당국은 크게 논란이 일자 행동에 나섭니다. 베이징시 위생계획생육위원회는 지난 달 29일 긴급 회의를 소집해 병원 암표상들에게 ‘무관용’ 원칙을 천명하고 개선책 마련에 나섭니다. 그리고 지난 6일 비응급 진료 전면 예약제 도입, 진료 예약 실명제 실시, 암표상 단속 강화 등 ‘8대 대책’을 발표합니다. 공안 당국은 사건 발생 후 대대적인 단속에 나서 50명 이상의 암표상들을 체포했습니다.
사실 중국에서 병원 암표상들이 문제가 된 것은 이번만이 아닙니다. 관영 CCTV는 2013년 베이징 주요 병원들의 암표상 문제를 집중 보도하며 관련 당국의 합동 단속을 이끌어냈습니다. 하지만 그때뿐입니다. 광안먼의원의 한 보안담당자는 지난해 암표 거래현장을 적발해 넘긴 경우만 200여차례였지만 암표상들은 길어야 5~7일 구류만 살면 다시 돌아와 활발하게 활동했다고 증언합니다. 베이징뿐만 아니라 상하이나 항저우 등 1선 도시들의 대형 병원에는 여지없이 암표상들이 ‘창궐’하고 있습니다.
전문가들은 암표상을 근본적으로 없애기 위해서는 질 높은 의료 서비스의 공급과 수요 불균형을 해결해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베이징시 위생계획생육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한해 동안 베이징의 A급 병원들이 진료한 환자들이 1억1000만명이나 됩니다. 이 중 70% 이상은 베이징 이외의 지역에서 오는 환자들입니다. 베이징셰허(協和)의원의 황위광 교수는 “암표상의 활동 공간을 마련하고 있는 이러한 수요·공급의 불균형을 해소해야 한다”고 진단합니다.
베이징=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
[맹경환 특파원의 차이나스토리] 중국 병원에 왜 암표상들이 활개칠까
입력 2016-02-12 15: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