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25년 만에 세계최초 정립 연구업적 인정 받았다

입력 2016-02-11 19:00

우리나라 의학자가 정립한 학문적 업적이 25년이 지나 프랑스 의학자들에 의해 재조명돼 세계 의·과학계의 각광을 받게 됐다.

1991년 6월 13일, ‘콕시엘라버네티(Coxiellaburnetii)’라는 세균이 백혈병의 일종인 림프암을 일으킨다는 사실을 발견, 학계에 처음으로 보고한 연세대 명예교수 이원영(73·사진·미생물학) 박사가 화제의 주인공이다.

이 박사는 이 사실을 같은 해 11월초 대한암학회 학술대회에서 발표하는 한편 1992년 4월, 미국 존스홉킨스 보건대학원 창립 75주년 심포지엄에서 콕시엘라버네티균을 주제로 특강을 해 주목을 받았다.

이 박사는 당시 “혈액 속의 B 임파구가 콕시엘라버네티의 침입을 받으면 크기가 커지면서 털세포암으로 변형된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면서 “이 균은 항생제를 투여할 경우 쉽게 치료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의한 백혈병의 경우 항생제를 쓰는 방법으로 쉽게 치료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해 큰 반향을 일으켰다. 이는 또한 국내 각 신문과 방송을 통해서도 크게 보도됐었다.

콕시엘라버네티는 주로 가축이나 동물을 숙주로 하며 호흡기를 통해 사람에게 전염되어 Q열을 일으키는 것으로만 알려져 왔기 때문에 이 균이 B임파구를 털세포로 변형시켜 림프암을 일으킨다는 것은 생각지도 못한 일이어서 세계적으로도 센세이션을 일으켰다.

그러나 1993년이 되면서 무슨 영문인지 이 열기는 서서히 물밑으로 가라앉기 시작했다. 이 균이 일으킨 것으로 확진되거나 의심되는 사례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었는데도 국내외 의학계가 이 박사의 주장에 대해 ‘모르쇠’로 일관했기 때문이다. 심지어 이 박사가 지방대 출신의 명문대 교수로 입지전적인 인물이었지만, 의사가 아닌 의과학자(Sc. D.)라는 점이 핸디캡으로 작용한 것이 아니냐는 추측이 나올 정도였다. 의사가 아니기 때문에 의사들로 구성된 의학계의 텃세를 이길 수 없었다는 말이다.

국제 의·과학계의 시선도 호락호락하지 않았다. 이 박사는 이 연구논문을 미국에서 발행되는 혈액학 분야 최고 권위지인 ‘불러드(Blood)’에 제출했으나 특별한 이유도 듣지 못한 채 게재를 거절당했다. 이 박사는 논문을 연세의대가 발행하는 SCI급 영문판 학술지 연세메디컬저널(YMJ) 1993년 11월호에 싣는데 만족할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25년이 지난 1월, 블러드지는 프랑스 마르세유대학의 라울(Roault) 박사팀이 제출한 같은 취지의 연구논문을 발표했다.

재미있는 것은 라울 박사가 이 논문에서 1993년 YMJ에 실린 이 교수의 연구결과를 인용하며 “콕시엘라버네티 균에 감염되면 그렇지 않은 경우에 비해 림프종에 걸릴 위험이 25배나 높다”고 주장했다는 점이다.

이 박사가 1991년에 처음 제기한 콕시엘라버네티의 림프종 유발설이 25년이 지난 지금에야 빛을 보게 된 것이다.

이 박사는 “25년이라는 오랜 세월이 지났지만 지금이라도 나의 연구결과가 틀리지 않았다는 것을 라울 박사팀이 증명해준 셈”이라고 말했다.

한편 2008년 정년으로 강단을 떠난 이 박사는 현재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운종로 소재 ㈜지엔에스바이오연구소장을 맡아 암과 아토피에 대한 연구를 계속하고 있다.

이기수 의학전문기자 ks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