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외에서 다양한 전시를 가진 김동석(53) 작가는 국립현대미술관, SK텔레콤 본사, 경기도박물관, 프랑스 대통령궁 등에 작품이 소장될 정도로 예술성을 평가받고 있다. 20년 넘게 씨앗과 나뭇잎 등 오브제를 화면에 붙이는 작업으로 생로병사의 세계를 펼쳐 보인 그는 새해 새로운 작업을 시도했다. 그동안 여행길에서 우연히 만나게 된 길을 작품 소재로 삼았다.
심기일전하는 마음으로 연초에 인도에 재능기부를 다녀왔다. 지난달 11일부터 15일까지 인도 북동 지역 메갈라야주 자인티아 민스카 마을 주민 700여명을 대상으로 그림지도와 미술치료를 병행했다. 작가는 난생처음 그림을 그려보는 아이들의 눈빛에서 사랑과 희망의 길을 발견했다고 한다. 그런 메시지를 담아 16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길 갤러리 라메르에서 개인전을 연다.
‘길…어디에도 있었다’(The path…It was everywhere)라는 타이틀로 30여점을 내걸었다. 카메라 혹은 마음속에 담아두었던 다양한 길을 배경으로 붓질하고 씨앗에 오방색을 칠해 화면에 붙였다. 이리저리 엇갈린 길들은 여러 갈래의 인생길을 상징한다. 이와 더불어 먹색의 줄기와 잎의 드로잉을 통해 강인한 생명력과 삶의 소중함을 표현하고자 했다.
그림은 고요하면서도 명상적이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바닷가 개펄이나 아득히 자리하고 있는 섬 등 회색 모노톤의 풍경들은 작가가 채집해 왔던 고독의 흔적들이다. 나뭇잎이 바람에 스치는 소리, 빗방울이 떨어지는 소리, 밤새 하얗게 눈 내리는 소리가 들리는 듯하다. 그런 가운데 나 있는 길이 아련한 추억으로 이끈다.
“침묵하면서 나날은 해(年)를 뚫고 나아가고 하루하루는 침묵의 박자 속에서 움직인다. 하루의 내용은 소란스럽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루는 침묵 속에서 몸을 일으킨다.”(막스 피카르트 ‘침묵의 세계’ 중에서)
박응주 미술평론가는 ‘김동석 회화의 ‘침묵’의 의미‘라는 글에서 “난무하던 잎맥들의 잔걱정들도, 소우주나 생명의 근원으로 해석해 오던 씨알이 갖는 육중한 의미도, 군데군데 홈을 내어 의미의 레이어를 만들고자 하던 다정다감했던 구축(construct) 의지도 말끔히 걷어냈다”고 평했다.
마치 시간이 완전히 침묵 속에, 영원 속에 흡수되어 버리듯이 언제라도 사라지기를 기다리고 있는 풍광들이라는 것이다. 지금 눈에 보이는 것들은 눈으로 볼 수 있는 침묵들인 셈이다. 외로움에 진저리치며 바람에 그 마지막 운명을 맡기고 있는 듯, 혹은 그렇기에 한 알의 씨앗이 땅에 떨어져 썩어야만 태어나는 새 생명의 발아의 순간이라고 정의했다.
이번 전시는 작가 자신에게로 떠나는 여행이다. 3일 전시 개막 행사에서 만난 그는 “어디에도 길은 있었다. 땅에도, 바다에도, 들판에도, 눈 덮인 산야에도, 하늘에도 길은 있었다”며 “내가 보지 못하고 가려하지 않았으니 길이 보일리가 없었다”고 했다. 훗날, 길은 어디에도 있었노라고 말할 수 있도록 이제는 그 길을 찾아 한평생 헤매어보자는 각오로 작업했다는 것이다(02-730-5454).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
“씨앗의 생명력으로 희망의 길을 떠나다” 김동석 작가 개인전 ‘길 어디에도 있었다’ 갤러리라메르
입력 2016-02-05 05:58 수정 2016-02-05 06:0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