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 정론지로 평가받는 독일 주간 슈피겔이 편집장의 글을 통해 최근 난민에 대한 긍정적 보도와 관련해 쏟아지고 있는 위협 및 불신과 관련해 홈페이지에 입장을 게재했다.
슈피겔은 3일(현지시간) 공식 영문 홈페이지 등을 통해 ‘언론 대 거짓말쟁이들: 힘든 시대에 좋은 저널리즘을 실천하는 일에 대하여’라는 글을 싣고 최근 난민 사태 보도와 관련해 자신들의 공식 입장을 알렸다.
최근 독일에서는 언론에 대한 신뢰 위기가 심각하게 대두된 상황이다. 설문에서 언론을 신뢰하지 않는다고 답한 독일인이 40%에 이를 정도다. 새해 전야에 벌어진 쾰른 집단 성범죄 사건을 독일 정부 및 언론이 은폐했다는 보도가 나온 게 결정적이었다.
여기에 지난달 논란이 된 베를린의 러시아 출신 13세 소녀 성폭행 주장은 언론 불신에 기름을 부었다. 대다수 독일 언론이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힌 이 주장이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와 러시아 언론 등을 통해 퍼지면서 지난달 23일 독일 베를린 총리관저 앞에 러시아 출신 독일인을 중심으로 약 700명이 모여 ‘범죄자 난민’에 대해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고, 이어 이튿날부터 독일 곳곳에 수천 명이 동참하는 시위로 번졌다. 베를린 검찰이 언론에 수차례 용의자 신원이 이미 밝혀졌으며 성폭행 사실은 드러난 일이 없다고 발표했으나 여론은 사그라질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이 글을 쓴 클라우스 브링크바우머 슈피겔 편집장은 “사실성의 기준을 판타지에 놓고 있는 몇몇 언론이 있다”며 일부 언론의 보도 행태를 경계했다. 이어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전파되는 내용에는 위험성이 있다. 사용자들이 읽고 싶은 것만 읽기 때문”이라면서 “이를 통해 스스로의 증오를 정당화하고 이성적으로 옳다고 보게 된다”며 SNS를 통해 전파되는 이야기 등에 대해 경계할 필요성을 주장했다.
브링크바우머 편집장은 언론을 불신하는 최근 흐름과 관련해 슈피겔에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며 최근 독자로부터 걸려온 항의를 소개했다. 이 독자는 “유대인 애호가”, “개자식들”과 같은 단어를 써가며 슈피겔이 “비판적이지 못한 보도”를 했다고 주장한 것으로 전해졌다.
하지만 슈피겔은 이 같은 비난에도 불구하고 정론을 지켜갈 것임을 선언했다. 이 글에서 브링크바우머 편집장은 “우리는 우리 신념 아래 연대한다. 그 신념이란 우리가 전쟁 지역으로부터 피난해온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며,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라며 난민 관련 보도에 대한 기본 입장을 밝혔다. 이어 “또한 독일 정부와 정당, 유럽 국가들의 실수에 대해 보도해야 한다는 신념도 있다”면서 “난민 위기가 복잡한 만큼 이 임무를 수행하는 일 역시 복잡하지만, 이 중 배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고 다짐했다.
아래는 슈피겔의 영문 홈페이지 ‘슈피겔 온라인 인터내셔널’에 실린 글 전문 번역이다.
요즘 독일은 대규모 난민 유입으로 인해 긴장이 고조되고 사회적 히스테리를 앓고 있다. 이 현상의 첫 번째 희생양은 언론의 신뢰성이다. 공공의 신뢰를 회복하는 일은 언론인들의 지대한 노력을 필요로 할테지만, 여기엔 독자들의 몫도 있다.
우리가 사는 시대는 시끄럽고, 야만스럽고, 혼란하다. 때문에 현재 독일 언론을 향한 분노와 증오에 대해 먼저 언급해야 할 필요가 있다.
첫째, 수많은 이들의 모습에서 볼 수 있듯 우리는 혼란한 시대를 살고 있다. 이들은 크게 소리치거나 분노하지 않기에 목소리가 소음에 묻혀 잘 들리지 않는다. 하지만 그들은 분명 존재하며, 이 점을 기억하는 건 중요한 일이다.
둘째, 많은 언론들은 정확하고 열정적인 보도를 하며, 위협에 굴복하지 않는다. 보이거나, 들리거나, 읽히는 언론들 모두 말이다. 독일에서만도 명단을 줄줄이 나열할 수 있다. 독일 공영 ZDF방송의 뉴스 프로그램 ‘호이테(heute)’를 비롯해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자이퉁 신문 등 늘어놓자면 끝도 없다.
◇ 번져가는 신뢰의 문제
독일에는 최근 몇 주간 언론이 대중으로부터 좋지 않게 비춰지고 있음을 보여주는 수많은 사건이 있었다. 독일에 거주 중인 무슬림 이주자들을 겨냥한 시위에서 언론사 카메라팀이 공격을 당했다. 또 지난달 독일 베를린에서 사라졌던 열세 살 러시아계 독일인 소녀에 대한 보도에서도 사건이 터졌다. 이를 보도한 베를리너자이퉁 신문은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한 위협이 심각해자 회사 임원들을 물리적 폭력으로 위협한 개인들에게 법적 대응을 하겠다는 방침을 세웠다. 또 최근 며칠간 러시아 언론과 외무장관은 전 세계에 그 소녀가 독일에서 강간을 당했다는, 정확하지 않은 주장을 내세웠다.
언론의 이미지에 부정적인 영향을 준 건 그뿐만이 아니었다. 바뎀뷔르크주에 위치한 지역 방송 SWR은 최근 사민당(SPD)으로부터 ‘독일을 위한 대안(AfD·역주: 독일의 극우정당)’을 TV 토론회에 초대하는 걸 취소하라는 압력을 받고 이를 받아들였다. 이 사건은 마치 독립된 공영 방송국이 정부에게 조종당하고 있다는 인상을 줬다. 또한 노르트라인베스트팔렌주의 공영 WDR 방송에서 일했던 프리랜서 언론인은 토크쇼에 나와 당시 ‘친정부적’ 발언을 하도록 지시를 받았다고 이야기했다.
슈피겔 역시 악의에 가득 찬 시선을 받았다. 지난 30년간 슈피겔을 구독해왔다는 한 독자는 우리의 최근 표지기사들을 무시했다. 해당 기사는 독일 정부가 통제력을 잃고 있다는 내용, 앙겔라 메르켈 총리가 난민 정책을 놓고 국내외에서 고립되고 있다는 내용이었다. 그는 이어 “유대인 애호가”, “개자식들”과 같은 단어를 써가며 우리가 “비판적이지 못한 보도”를 하고 있다고 했다.
새해 전야에 쾰른에서 이민자들이 벌인 수백만 여성에 대한 집단 성범죄 사건은 이 같은 흐름을 가속화시켰다. 이로 인해 독일인 중 40%가 언론을 신뢰하지 않게 됐다. 여기에는 독일 사회에 떠돌고 있는 히스테리와 분열이 사실보다 감정에 심하게 치우친 것도 한몫했다. 독일 언론은 이로 인해 심각한 신뢰성 문제에 직면했다.
◇ 언론인이 해야 할 일
언론인으로서 여기 대응해 할 수 있는 일이 있을까? 버텨야 하는 걸까? 물론 그렇다.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 특히 이런 때일수록 언론은 단지 비용절감을 위해 스스로를 사태에서 유리시키는 방법을 택해선 안 된다. 지역 기자, 협력 외신, 외부 탐사 팀처럼 스스로 조사와 보도를 할 수 있는 역량을 대체하는 방법 말이다. 시간을 들여 맥락에 대해 진정한 이해를 하고 이를 적절하게 풀어낼 수 있어야 한다. 적정한 어조를 유지해야 하며 스스로를 난리판에 빠져들게 허락해선 안 된다. 현대사회는 빠른 만족을 요구하지만, 언론인들에게는 분명한 사고와 침착함이 필요하다.
동시에, 보도와 비평에 근거한 논조 강화와 판단이 필요할 때도 있다. 이는 알맞은 순간에 이뤄져야 하며 자족하기 위한 예언이나 편견에 기초해서는 안 된다. 하지만 그렇게 차별화를 하는 게 물러섬을 뜻하지는 않는다. 언론인은 당연히 줏대가 있어야 한다.
실수를 저질렀다면 받아들이고 설명해야 한다. 우리가 현실에 대해 독자들보다 더 나은 시선을 내놓을 수 있도록 애써야 한다. 독자들과 대화하고 비판을 흡수해야 한다.
끝으로 약간의 유머를 곁들인다면 나을 것이다. 지난날 조용한 독자로 머물렀던 이들이 이제 소셜미디어를 통해 직접 관여하고 스스로 미디어 생산자가 되는 걸 받아들여야 하는 게 현실이다. 토론 자리에서 토론이 잘 이뤄지더라도, 너무 딱딱한 이들은 매력적인 경우가 드물다. 그 점은 언론인들에게도 똑같이 적용된다.
◇ 독자들이 알아야 할 점
우리가 해야 하는 일 외에도, 존경하는 독자들께서 아래의 세 가지를 매순간 고려해준다면 도움이 될 것이다.
첫째, 페이스북과 트위터를 통해 전파되는 내용에는 위험성이 있다. 사용자들이 읽고 싶은 것만 읽기 때문이다. 스스로의 증오를 정당화하고 이성적으로 옳다고 보게 된다.
둘째, 일부러 명예를 해치는 ‘주류 언론’의 존재란 허구다. 보수 색채인 프랑크푸르트알게마이네자이퉁이나 디벨트는 진보 성향의 디차이트나 슈드도이체자이퉁과는 다른 논조를 가지고 있다. 여기에 사실성의 기준을 판타지에 놓고 있는 몇몇 언론이 있다.
셋째, 슈피겔은 매체를 소유한 언론인들에 의해 운영되는 독립매체다. 그 어떤 제3자도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지 못한다. 제대로 증명되지 않은 정보가 세상에 전파되거나, 하루 만에 보도가 뒤집히거나 하는 일은 이 매체를 통해 일어나지 않는다. 우리의 보도는 수일, 혹은 수주 심지어는 몇 개월에 걸쳐 완성된다. 기사는 편집과 각 부문 편집자, 팩트 체커, 조사자, 변호사, 편집장, 카피 에디터의 섬세한 감독을 통해 걸러진다. 우리 편집자와 기자들은 보도한 내용과 그 반응에 대해 꾸준한 토론을 한다. 우리는 우리 신념 아래 연대한다. 그 신념이란 우리가 전쟁 지역으로부터 피난해온 이들을 이해하려 노력해야 하며, 명예를 더럽혀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또한 독일 정부와 정당, 유럽 국가들의 실수에 대해 보도해야 한다는 신념도 있다. 난민 위기가 복잡한 만큼 이 임무를 수행하는 일 역시 복잡하지만, 이 중 배제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독일 슈피겔, 난민 보도 위협 맞서 ‘우리는 우리 신념을 지킨다’
입력 2016-02-04 14:24 수정 2016-02-04 14: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