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대호(34)가 미국 프로야구 시애틀 매리너스와 1년 마이너리그 계약을 했다. 메이저리그 입성을 약속받지 못한 상태에서 ‘진짜 메이저리거’가 되기 위해선 스프링캠프에서 살아남아야 한다. 스프링캠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25인의 개막 로스터에 포함돼야 비로소 그의 올 시즌 행보를 점쳐볼 수 있게 된다.
이대호는 4일 매니지먼트사를 통해 “스프링캠프에서 좋은 활약을 펼쳐서 팀에서의 주전 확보를 위해 노력할 것”이라며 “충분히 그 목표를 이루어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하지만 일이 이대호의 뜻대로만 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많은 야구팬들은 이대호 계약 전 메이저리그 보장 혹은 일정 수준 이상의 출장기회가 보장되지 않으면 일본 소프트뱅크와 계약하는 게 낫다고 생각했다. 스프링캠프에 초청선수 자격으로 가서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는 것이 현실적으로 퍽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일단은 초청선수 중 가장 뛰어난 모습을 보여야 하는데 스프링캠프에서 엄청난 활약을 펼친다고 해도 메이저리거가 될 것이란 보장이 없다. 실제 스프링캠프에서 맹활약하고서도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는 사례는 비일비재하다.
이대호로서 가장 이상적인 시나리오는 스프링캠프에서 인상적인 모습을 보여주고 개막 전 25인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는 것이다. 그러면 좌투수 선발 등의 경우 1루수 선발출장 등 일정 수준 이상의 기회를 부여받아 메이저리그에서 실력을 겨뤄볼 수 있다.
하지만 스프링캠프에서 아무리 날아다녀도 개막 로스터 진입을 장담하기는 어렵다. 시애틀의 경우 이대호의 포지션이라 할 수 있는 지명타자와 1루수 자리에 확고한 주전선수가 자리를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명타자 자리에는 지난 시즌 44홈런을 친 넬슨 크루스가 있고 1루수 자리에는 시애틀이 유망주 3명을 희생하면서 밀워키 브루어스에서 데려온 좌타자 애덤 린드(33)가 버티고 있다.
린드는 지난해 밀워키에서 타율 0.277에 20홈런, 87타점, 타율 0.277를 기록했고 메이저리그 10시즌 통산 성적은 타율 0.274, 166홈런, 606타점으로 장타력을 갖췄다. 현실적으로 이 둘은 부상 변수 외에는 로스터에 빠질 가능성이 없다고 봐야 한다. 그렇다면 이대호는 1루수로서 린드에 이은 2순위 옵션이라는 것을 보여줘야만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가능성이 생긴다.
하지만 현재 시애틀의 1루수 2순위 옵션에는 헤수스 몬테로라는 팀 내 유망주가 버티고 있다. 포수에서 1루수로 전향한 몬테로는 지난해 38경기에 출전해 타율 0.223에 5홈런, 19타점을 기록했다. 우타자로 이대호와 실질적인 경쟁을 하게 될 선수다. 어느 팀이든 25인 로스터에 1루수 요원을 3명 넣지 않는다는 점을 감안하면 이대호는 몬테로를 확실하게 넘어서야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릴 수 있다. 이대호는 몬테로를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 뒤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이대호로선 별로 떠올리기 싫은 상황이지만 개막 로스터에 이름을 올리지 못하게 될 수도 있다. 그러면 문제가 복잡해진다. 기꺼이 마이너리그 생활을 감수하며 메이저리그 콜업을 기다리는, 그야말로 ‘도전정신’을 보여줘야 하는 상황을 맞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서른넷이란 나이는 1년의 도전을 버티기에는 부담이 될 가능성이 높다.
기약할 수 없는 콜업을 기다리기보다 일본 혹은 한국으로의 복귀를 타진할 수도 있다. 이대호의 정확한 계약 내용이 알려지지 않은 상황이어서 예측하기는 쉽지 않지만 계약 내용에 안전장치나 옵션이 있을 가능성이 높다는 게 일반적인 관측이다. 만약 그렇다면 개막 로스터에 포함되지 못할 경우 일본 혹은 한국 팀으로의 복귀할 가능성이 있다.
계약내용에 따라 시애틀이 계약을 상호해지 해줄 수도 있고, 아니면 시애틀 구단 측이 일본 혹은 한국 팀에 접촉해서 이대호의 복귀를 타진할 수 있다. 복귀하겠다고 하면 일본이든 한국이든 이대호를 노릴 만한 팀은 적지 않을 것으로 예상된다.
그렇지만 마이너리그 계약까지 감수한 이대호에게 이런 예상은 큰 의미가 없다. 현재로선 몸을 잘 만들어 스프링캠프에서 실력으로 몬테로를 확실하게 넘어서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목표가 되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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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승훈 기자 shjung@kmib.co.kr
마이너 계약한 이대호…최고 혹은 최악의 시나리오
입력 2016-02-04 14: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