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31. 오염의 욕망을 ‘물’로 치유한 국립극단 ‘겨울이야기’

입력 2016-02-04 08:59
헝가리 대표적인 연출가이자 배우인 로버트 알폴디(Robert Alfoldi) 연출 ‘겨울이야기’ 는 시칠리아와 보헤미아 두 나라를 설정하다. 5막 장면이다. 유럽 시칠리아의 궁전이다. 왕 레온테스(손상규 분)은 그의 왕비 헤르미오네 (우정원 분)가 돈독한 친구사이인 이웃 보헤미아의 왕인 폴리세네스(박완규 분)와 사랑에 빠져 불륜을 했다고 착각한다. 아내의 친절과 배려는 의심과 질투로, 질투는 불안한 내면의 욕망으로 전이되면서 죽음의 파멸을 부른다. 돈독한 친구인 보헤미아라 왕 폴리세네스를 살해하라는 명령을 내리지만 레온테스의 하인 카밀로(이종무 분)의 진솔한 고백으로 두 사람은 탈출에 성공한다. 이 질투와 오류의 광기는 왕비를 죽음으로 몰아놓고 둘 사이에서 낳은 딸 페르티나(신사랑 분)를 사생아로 생각해 영토 밖으로 버린다. 아내의 친절과 배려는 두려움과 불안으로 확장되고 코믹스러운 내면의 광기로 증폭된다. 권력의 정점에 있는 왕 레온테스의 착각과 의심은 유쾌한 광기로 인간의 진실성을 파괴 시킨다.



오염된 내면의 진실성을 회복 할 수 있는 것은 신탁의 판결 밖에 없다. 불륜의 죄를 씌워 왕비를 죽이고자 했던 왕에게 신탁은 죄 없는 폴리세네스, 충직한 신하 카밀로, 레온테스는 폭군. 아이는 왕의 핏줄로 판결한다. 오염된 죄악의 내면과 그 욕망이 부른 가족의 파멸은 신도 냉혹한 형벌을 내린다. 엉뚱하고 어리석은 왕 레온테스는 자신과 닮았다고 생각한 왕자 마밀리우스(배강유 분)만 곁에 두지만 죽게 된다. 질투의 광기는 내면의 고통으로 몰락한다. 대를 이을 수 없는 시칠리아의 왕 레온테스가 쥔 권력은 갈라지고 질서는 무너진다. 오류의 분노로 둘러싸인 내면의 파멸을 회복하는 것은 용서 화해뿐이다. 극은 이후부터 16년이라는 시·공간을 넘고 영토 밖으로 던져진 딸을 찾게 된다. 그것도 왕비와 불륜을 의심했던 그의 친구 보헤미아 왕 폴리세네스의 아들 플로리젤(김동훈 분)의 사랑하는 여인이 되어서다. 파편화된 극적 서사를 하나로 모으는 셰익스피어 다운 설정이다.



마지막 5막3장이다. 왕비의 조각상을 보러 하녀 파울리나 집으로 찾아간 레온테스는 속죄하는 심정으로 왕비의 살아있는 조각상을 바라본다. 왕비의 진실성을 깨닫게 된다. 이어, 내면은 참회로 얼룩진 고통이 된다. 망치를 들고 거대한 조각상 표면에 둘러싸인 거대한 유리를 깨트린다. 유리의 파편은 무대로 튀어 내리고, 고여 있던 물줄기가 무대를 타고 흘러내린다.

왕비가 살아 천천히 걸어 나온다. 마치 신화의 시·공간을 뚫고 파편으로 튀겨진 유리조각 위를 걷으면서 왕 레온데스로 향한다. 관객은 몸을 일으켜 세운다. 전혀 예상하지 못했던 장면이다. 관객은 연출가의 의외성 타격에 놀란다.



물은 내면의 치유이다. 거대 유리 상자에 고여 있는 물은 왕비의 절망과 고통의 시간을 함축적으로 응집한다. 사랑의 배신으로 몸에서 흘러내리는 처절한 한 여인의 절망의 피는 물로 환치된다. 왕의 어리석은 질투의 오류는 16년 동안 내면에서 자라난 분노와 절망의 고통스러움으로 혈전된 핏물이다. 레온테스의 속죄와 뉘우침으로 고통의 내면은 비로소 외부로 쏟아져 나오면서 혈전된 핏물은 용서와 화해로 갈라진 두 사람의 내면을 치유하는 씻김의 물이 된다. 물은 내면을 치유한다. 연출은 극이 종점에 도착할 즈음 장면의 의외성으로 메시지를 함축하고 극을 하나로 관통시키면서 명장면을 그려낸다. 관객의 시선과 호흡은 극의 템포를 정지시키면서 긴장시킨다. 연출은 살아 돌아온 왕비 그리고 그의 딸의 약혼식으로 해피엔딩의 방향으로 회전을 시도하면서 다시 한 번 관객 시선을 타격한다. 매서운 천둥소리에 등장인물들은 원형을 만든다. 이어 무대 천정에서는 대형 램프가 내려오고 이어 터져 나오는 물줄기가 원을 형성한 닫힌 인간들의 욕망을 씻겨 내린다. 질투와 배신, 인간욕망의 오염들이 말끔하게 씻겨 졌을 때 동시대의 삶은 화해와 소통의 원을 이룰 수 있다.



무대에서 물을 쓰는 것은 특별 할 것이 없지만 연출이 탁월한 점은 셰익스피어의 긴 서사를 2시간 15분으로 압축하고 1막부터 종점을 향해가는 5막까지 희비극적 요소로 극의 템포를 좁히고, 장면의 리듬을 형성하면서 마지막에 마치 대형 박물관에 큰 유지상자 안에 살아 인물의 조각상을 올려놓고 누구도 눈치 채지 못할 물 유리박스를 형성한 기발한 연출적 발상의 의외성으로 극을 함축하고 강렬한 메시지를 물로 강타한 것은 절묘하다. 진실성이 외면된 시대에 인간의 더러운 거짓과 욕망으로 둘러싸여진 내면의 오염들을 물을 강타하면서 더불어 살아갈 수 있는 진실성의 체감온도를 형성시켰다.



배우들의 앙상블도 극의 템포와 균형을 유괘하게 유지한다. 특히 레온테스 역을 맡은 배우 손상규는 왕의 이중적인 내면을 쾌활하게 그려내면서 극이 종점을 향할 때 까지 감정의 리듬감을 유지한다. 질투의 오염으로 내면은 진흙투성이가 된 레온테스 왕의 처절한 인생이야기를 지난 1월10일부터 24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 극장에서 공연된 헝가리의 대표적인 연극연출가 로버트 알폴디(Robert Alfoldi)의 셰익스피어 원작 ‘겨울이야기(The Winter’s Tale)를 현대적으로 해석해 동시대로 연결한 탁월한 연출력은 작품의 감각을 높이고, 명장면을 만들었다.



올해부터 (재)국립극단 김윤철 예술 감독이 시동을 걸고 있는 작품들이 시선을 끌고 있다. 국립극단은 올해 ‘도전’이라는 주제를 정하고 다양한 시즌 작품을 준비하고 있다. 특히, 올해 셰익스피어 서거한지 400주년이 되는 해로 국립극단은 봄에 중국국가화극원의<리처드3세>와 12월에는 임형택 연출의 <십이야>를 릴레이로 기획하고 있다. 시즌별로는 세계고전<갈매기>, <로베르토쥬코>, <미스쥴리>와 어린이 청소년극 <어린이청소년극릴-레이Ⅲ>,<타조 소년들>을 비롯해 한국 근현대극 <국물 있사옵니다>, <혈맥>, <산허구리>등 다양한 작품을 들고 2016년을 달린다. 특히 공연을 관람한 날 국립극장 고객지원실 김명수 매니저의 친절한 안내와 배려가 국립극장의 온도를 높였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