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1월 경기 평택에 사는 정모(39)씨는 모바일게임을 하다 박모(31)씨와 시비가 붙었다. 어린 박씨가 게임 상에서 반말을 한다는 게 이유였다. 게임 속 채팅창에서 욕설이 오갔고, 감정이 격해진 이들은 다음날 새벽 수원에서 직접 만났다. 정씨는 준비해 간 흉기로 박씨를 수차례 찔렀다. 살인미수 혐의로 징역 1년8개월이 선고됐다.
지난해 A씨는 자기 명의로 고교생 아들 B군(17)에게 스마트폰을 개통해줬다. 이후 모바일게임에 빠진 B군은 부모 몰래 110만원어치 ‘게임 아이템’을 샀다. 이 돈은 전화요금에 청구됐고, A씨 신용카드로 결제됐다. A씨는 게임회사에 부모 동의 없이 미성년자가 구매한 것이니 환불해 달라고 했다가 거절당했다. A씨와 B군 중 누가 구매한 건지 확실치 않다는 이유에서다. A씨는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를 찾아 상담까지 받았다.
74.5%. 한국콘텐츠진흥원의 ‘2015 게임이용자 실태조사’에서 게임을 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사람의 비율이다. 이중 모바일게임 경험자는 64%로 온라인게임 경험자(43%)를 눌렀다. 스마트폰 인구 4000만 시대를 맞아 한국의 모바일게임 시장은 1조5600억원을 넘어섰다. ‘모바일게임 공화국’이라 할 만하다.
그늘도 짙다. 최근 모바일게임 업계는 무료로 게임을 배포하는 대신 게임 상에서 유료 아이템을 파는 ‘인앱 결제’ 방식을 주로 채택하고 있다. 미성년자의 무분별한 결제 사고를 넘어 ‘현질’(현금 구매를 뜻하는 인터넷 속어)을 유도하는 모바일게임 시스템의 문제를 지적하는 목소리가 나온다. 온라인을 거쳐 모바일로 넘어온 ‘욕설’과 익명성에 기댄 범죄도 모바일게임 공화국을 몸살 나게 하고 있다.
직장인 박모(46)씨는 지난달 고교생 아들이 자주 하는 모바일게임을 다운받았다. 실행하자마자 패키지 구매를 유도하는 창이 주르륵 떴다. 3만원, 5만원, 11만원어치 게임 아이템을 파는 패키지였다. 게임을 하다보면 시도 때도 없이 패키지 구입 창이 떴다. 박씨는 “차라리 다운받을 때 얼마를 내고 이후 자유롭게 하는 게 낫지 이런 방식은 야금야금 돈을 쓸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말했다.
패키지와 함께 게이머를 유혹하는 건 ‘확률형 아이템’이다. 복권처럼 뭐가 나올지 알 수 없는 ‘뽑기’ 형식의 게임 아이템으로, 대다수 모바일게임 회사가 수익모델로 삼고 있다. 원하는 아이템이 나올 때까지 반복적으로 뽑기를 유도하는 방식이다.
문제는 정확한 확률을 공지하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 지난해 3월 새누리당 정우택 의원은 확률형 아이템을 판매할 때 획득 가능한 아이템의 종류와 확률 등을 공시토록 하는 법안을 발의했다. 이 법안이 계류 중인 상황에서 게임업계가 자율 규제를 선언했지만 강제성이 없어 일부 업체만 지키고 있다. 오히려 정치권이 게임업계를 죽이려 한다며 반발한다.
미성년자의 모바일게임 결제 사고는 끊이지 않고 있다. 콘텐츠분쟁조정위원회에 따르면 2014년 접수된 게임 분야 분쟁 2720건 중 981건이 미성년자 결제 건이었다.
욕설·범죄 난무…대책은 없나
서울 중랑구에 사는 대학생 한모(26·여)씨는 최근 모바일게임을 하다 심한 욕설을 들었다. 익명의 유저가 갑자기 1대 1 채팅을 요청하더니 한씨의 부모를 욕하기 시작했다. 한씨는 해당 화면을 캡처해 경찰에 신고했지만 처벌이 어렵다는 말을 들었다. 모욕죄가 성립되려면 제3자가 욕설을 인지하는 ‘공연성’과 피해자 신분이 드러나는 ‘특정성’이 함께 충족돼야 한다. 경찰 사이버범죄수사 관계자는 “모바일게임 내 명예훼손이나 욕설 신고가 급증하고 있는데 범죄 성립 요건이 되는지 모호할 때가 많다”고 말했다.
‘게임머니’ 사기도 빈발한다. 지난해 10월에는 인터넷에 모바일 게임머니를 판매한다는 거짓 글을 올려 돈을 챙긴 20대가 경찰에 구속됐다. 게임머니 거래 사이트에 모바일게임 아이템 판매글을 올린 뒤 연락해온 피해자 70여명에게 돈만 받고 게임머니를 보내주지 않은 것이다.
박창호 숭실대 정보사회학과 교수는 “PC 인터넷 중심에서 모바일 중심으로 사회환경이 바뀌었는데 제도가 따라가지 못하는 전형적인 상황”이라며 “국민의 삶에 들어온 모바일 관련 문제에 정부 차원의 관심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박세환 기자
툭 하면 ‘현피’… 좀 할 만하면 ‘현질’… 모바일게임 공화국의 그늘
입력 2016-02-03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