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탄광서 조선인 절반 이상 도망” 강제 징용 방증 문서 발견

입력 2016-02-02 14:24

일제강점기 조선인 노동자의 상황을 한눈에 볼 수 있고, 조선인이 강제징용됐다는 사실을 방증하는 일본 측 문서가 발견됐다.

일본은 지난해 7월 유네스코가 근대 산업시설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면서 '조선인 강제노역'(forced to work) 사실을 명시했음에도 뒤늦게 '강제노동을 인정한 것이 아니다'라고 말 바꾸기를 해 빈축을 사고 있다.

이런 가운데 1944년 일제강점기 일본 탄광에서 일하던 반도인(조선인)들의 숫자와 도망자, 도망가다 붙잡혀 온 자 등의 일본 측 통계 자료가 처음으로 입수된 것이다.

한일문화연구소장인 김문길 부산외국어대 명예교수는 1944년 1월 말 일본 후쿠오카(福岡)현 경찰청 특별고등과가 조사해 발표한 '반도인의 상황'을 일본인 연구자로부터 입수해 2일 연합뉴스에 공개했다.

김 교수는 지난해 말 문화재환수국제연대(CAIRA·대표 이상근) 초청으로 후쿠오카에 강연차 갔다가 한 일본인 연구자로부터 이 문서를 건네받았다.

문서는 '반도인의 상황' 중 표지 1쪽과 '노무 동원 계획에 의한 이입 노동자 사업장별 조사표' 2쪽 등으로 이뤄졌다.

표지에는 "후쿠오카현 관하(管下)에 있는 반도인은 1943년 말 현재 17만 2천199명. 이들은 지쿠호(筑豊·후쿠오카의 옛 지명) 탄광 또는 기타큐슈(北九州) 공업지대를 중심로 거주하고 있고, 현하(縣下) 노동력의 근간(根幹)적 존재이지만 광공업(鑛工業) 생산에서 결점 요소가 있다. 이들은 시국을 인식 못 하고 추세에 따라 행동하니 노동 관리상, 치안 유지상 장차 여러 가지 문제를 야기할 것"이라고 적혀 있다.

또 "원만한 지도, 또는 취체(取締·단속이란 뜻의 일본식 한자어)를 위해서는 (도망을 못 가도록) 현정(縣政)의 제도를 바꾸어야 한다"고 덧붙였다.

'노무 동원 계획에 의한 이입 노동자 사업장별 조사표'에는 탄광, 공장, 토건, 금속산업에 종사하는 조선인들의 통계가 자세히 나와 있다.

조사표에 나와 있는 조선인은 총 11만 3천61명. 이 가운데 도망자는 5만 8천471명으로 전체의 절반이 넘는다. 도망갔다가 잡혀온 사람은 1천824명, 한국으로 도망쳤다가 다시 강제징용된 사람은 1만 3천22명으로 각각 나타났다.

조선인 사망자는 711명이며, 이 가운데 탄광 노무자는 686명으로 기록돼 있다.

특히 미쓰비시(三菱)·이즈카(飯塚) 등 6개의 광업소에는 1만 7천105명의 조선인이 끌려왔고, 이 가운데 7천256명이 도망했다.



김 교수는 "55개 탄광으로 끌려간 10만 5천872명 가운데 5만 3천277명이 도망쳤다는 것은 당시 조선인들이 강제징용됐음을 말해주는 것이자 탄광의 노무 환경이 얼마나 열악했는지를 웅변하는 기록"이라고 풀이했다.

"하야로(早良) 탄광에서는 1천698명의 조선인이 일했는데 도망자가 1천96명이나 됩니다. 남은 인원 88명도 도망갔다가 잡혀 온 사람이므로 전부 도망갔다고 볼 수 있지요. 이 사료를 보면 일제강점기 조선 노무자(강제징용자)들이 돈을 받고 스스로 일본에 건너와 일했다는 일본의 주장은 거짓임을 증명하고도 남음이 있습니다."

일본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은 "1944년 9월부터 1945년 8월 종전 때까지 사이에 '국민징용령'에 근거를 두고 한반도 출신자의 징용이 이뤄졌다"며 이런 동원이 "이른바 '강제노동'을 의미하는 것이 전혀 아니라는 것은 (일본) 정부의 기존 견해"라고 밝혔다. 일제의 침략과 식민지배가 합법이었다는 기존 주장과 왜곡된 역사 인식을 그대로 드러낸 것이다.

그러나 김 교수가 입수한 문서는 스가 장관이 언급한 1944년 9월 이전에도 조선인 강제징용은 있었다는 점에서 그의 주장은 맹점을 드러내고 있다.

김 교수는 "일본 정부와 일본의 교과서는 강제징용자를 '산업 기수'로 부르는데, 스스로 원해서 간 사람들이 어떻게 그렇게 많이 도망을 칠 수 있겠느냐"면서 "각 탄광의 조선인들은 강제 노동을 견디다 못해 70% 이상 도망쳤고, 도망치다 잡힌 조선인들 가운데 린치를 당해 사망한 경우가 허다했다"고 덧붙였다.

국무총리 소속 일제강점하강제동원피해진상규명위원회 위원장을 지낸 전기호 경희대 교수는 "천왕의 '국민 총동원령'에 의해 강제로 끌려갔고 자발적으로 갔다는 것은 맞지 않는다"면서 "특히 도망자가 굉장히 많이 나왔다는 것은 강제징용의 충분한 증거라고 볼 수 있다"고 의미를 부여했다.

오랫동안 일제강점기 재일 한국인 노동자 연구에 몰두해온 전 교수는 지난 2003년 '일제시대 재일 한국인 노동자 계급의 상태와 투쟁'이라는 책에서 일본 측 자료와 도망자가 많이 나왔다는 육성 증언 등을 들어 강제징용이 이뤄졌다고 설파했다.

이상근 대표는 "김 교수가 입수한 문서는 특정한 지역, 즉 후쿠오카 탄광 지역의 도망자 통계를 확인할 수 있는 희귀한 사료"라면서 "지금까지 생존자들이 탄광 지역의 열악한 환경에서 "소·돼지처럼 일했다"는 육성 증언은 있었지만 이번처럼 통계 자료가 나온 것은 보지 못했다"고 말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