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이 ‘데이트 폭력’에 깊숙이 개입한다. 폭행·스토킹(병적 집착) 등의 징후가 보이면 가해자에게 직접 경고하고, 2차 피해 가능성이 높을 땐 구속 수사한다. 이성이 마음에 든다고 함부로 집적댔다가는 경찰의 집중 관리 대상에 오를 수 있다. 경찰은 한국판 ‘클레어법’(애인 전과 조회법) 제정도 추진키로 했다.
데이트 폭력 전담반 가동
경찰청은 전국 경찰서에 ‘연인 간 폭력 근절 전담반(TF)’을 구성하고 3일부터 다음 달 2일까지 한 달간 집중적으로 피해 신고를 접수한다고 2일 밝혔다. 지금부터 새롭게 발생하는 사건은 물론 그동안 신고되지 않은 범죄까지 색출할 계획이다.
TF는 부부가 아닌 남녀 간에 발생하는 폭행·상해·살인·성폭행·감금·약취유인·협박·명예훼손 등 모든 형사 사건을 처리한다. 해당 남녀가 꼭 연인이어야 하는 게 아니다. 한쪽이 일방적으로 집착하는 경우도 TF의 수사 대상이다.
경찰은 이런 남녀 간에 폭력이 발생했거나 징후가 있으면 폭력성과 상습성 여부 등을 확인한다. 폭력과 스토킹 행위가 확인되면 적극 사법 조치한다는 방침이다.
피해가 우려되는 상황에서는 경찰관이 가해자에게 연락해 피해자에게 접근하거나 연락하지 말도록 경고한다. 추가 폭행 등 2차 가해 가능성이 높으면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한다.
경찰, 가해자 계속 지켜본다
경찰은 그동안 부부가 아닌 남녀 사이 폭력을 당사자 간 문제로 치부해 방치한 측면이 있다. 피해가 발생하고서야 사법 처리하는 식이었다. 강신명 경찰청장은 1일 기자간담회에서 연인 간 폭력과 관련해 경찰이 피해 예방과 피해자 보호에 소홀했음을 인정했다. 앞으로는 사건 접수 단계에서부터 관련 부서들이 유기적으로 대응해 2차 피해 방지에 주력한다는 방침이다.
TF는 형사과장을 팀장으로 형사팀·여청팀에 1명씩 전담수사요원을 지정한다. 여성 피해자가 대다수인 만큼 상담 전문 여경을 두고, 피해자 상담과 경제·심리·법률 지원을 맡는 피해자 보호 담당자도 배치한다. TF와 피해자·신고자 간 연락망을 구축해 보복범죄 여부 등을 지속적으로 감시한다. 신변보호가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112신고가 가능한 손목시계를 제공하거나 피해자 집에 CCTV를 설치할 예정이다.
매년 100명씩 살해당했다
연인 간 폭력은 살인·성폭행·상해·폭행 등 강력 범죄로 발전할 가능성이 높다. 경찰에 접수되는 데이트 폭력 사건은 거의 매년 7000건대를 유지하고 있다. 지난해는 최근 5년 사이 가장 많은 7692건을 기록했다. 전년도인 2014년(6675건)과 비교하면 1000건 이상 늘었다.
유형별로는 폭행이 같은 기간 2702건에서 3670건으로 급증했다. 2011년 이래 연인 간 폭행 사건이 3000건을 넘기긴 처음이다. 강간·강제추행은 2011년 390건에서 2012년 409건, 2013년 533건으로 해마다 급증하다 2014년 483건으로 떨어졌지만 지난해 다시 509건으로 수직상승했다. 살인은 해마다 100건 수준을 유지하고 있다.
데이트 폭력은 남자가 가해자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반대 경우도 더러 있다. 지난해 4월에는 내연관계에 있던 남성과 강제로 성관계를 맺으려 한 40대 여성이 성폭행 미수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다. 2013년에는 20대 여성이 만취한 일행 남성에게 강제로 입을 맞추다 깨물려 혀를 절단당하기도 했다.
‘남친 전과 조회법’ 추진
경찰은 연인의 범죄경력을 조회할 수 있도록 하는 한국판 ‘클레어법’ 등 제도적 방안을 마련하기로 했다. 클레어법은 2009년 클레어 우드라는 영국 여성이 전 남자친구에게 살해된 사건을 계기로 만들어진 법이다. 우드가 페이스북을 통해 처음 알게 된 전 남자친구는 과거 자신의 연인에게 폭력을 휘두른 전과가 있었다.
경찰청 관계자는 “연인 간 폭력 범죄 근절을 위해서는 무엇보다 피해자의 적극적 신고가 필요하다”며 “신고 즉시 신변보호 필요 여부를 최우선적으로 검토하고 신고자 익명을 보장하겠다”고 강조했다. 신고는 전화(112)와 각 경찰관서 홈페이지, 스마트폰 ‘목격자를 찾습니다’ 앱 등 모든 창구를 통해 접수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넌 남친 아니라 범죄자다’ 한국 클레어법 시행
입력 2016-02-02 12:03 수정 2016-02-02 13:4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