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상온의 영화이야기] (56) 대를 이은 배우들

입력 2016-02-01 15:01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 스코트 이스트우드가 나오는 최신 서부극 ‘디아블로(Diablo)'.

클린트 이스트우드의 아들 스코트(30)가 나오는 최신 서부극을 봤다. ‘디아블로(Diablo)'. 스페인어로 ‘악마’라는 뜻이다. 누가 봐도 부자(父子)구나 라고 절로 감탄할 만큼 붕어빵처럼 아버지를 닮은 스코트 이스트우드의 서부극을 보면서 자연스럽게 클린트의 젊은 날과 그가 나왔던 서부극 생각이 났다.

일단 겉으로는 ‘악당’들에게 습격당해 아내를 납치당한 뒤 추적극을 펼치는 남북전쟁 참전용사 이야기인 이 영화는 그것만으로는 남북전쟁 때 북군 무뢰한들에게 아내와 자식을 잃고 복수극을 벌이는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감독작 ‘조시 웨일즈(The Outlaw Josey Wales, 1976)’를 고스란히 연상시킨다.

그러나 닥치는 대로 사람을 죽이는 주인공의 악마적인 분열된 자아(alter ego)가 출현하는가 하면 납치된 아내가 실은 납치자의 부인임을 암시하는 대사가 나오는 등 주인공의 정체가 선악조차 불분명할 만큼 대단히 모호하고 신비스럽다는 점에서는 주인공이 사람인지 귀신인지 불확실한, 역시 클린트 이스트우드 주연 감독의 초자연적 서부극 ‘평원의 무법자(High Plain's Drifter, 1973)’를 떠올리게 한다.

스코트 이스트우드는 서부극의 아이콘이었던 아버지 클린트의 후광을 노린 영화업자들로 인해 50편도 넘는 서부극 시나리오를 받았으나 그중 이 영화를 골랐다고 하는데 그 이유가 “독특한 플롯”때문이었다고. 과연 그래선지 플롯이 매우 특이하다. 이미 지적했듯 도대체 주인공이 선인인지 악인인지, 심지어 피해자인지 가해자인지도 알 수 없다.

결말부분까지도 모호하다. 일부 평자들은 “대체 뭘 말하려는 건지 모르겠다. 도저히 플롯을 이해할 수 없다”고 불평을 터뜨리는가 하면 어떤 관객은 “누가 결말을 설명 좀 해줘요”하고 원성을 지른다. 로렌스 로익이라는 감독의 두 번째 장편이라는 이 영화는 과연 플롯이나 구성 측면에서 전후좌우가 분명한 클린트 이스트우드 서부극과는 전혀 다르다.

그러나 클린트의 젊은 시절을 보는 것 같은 스코트 이스트우드의 모습을 보는 즐거움은 대단하다. 만약 앞으로 클린트의 전기영화나 그의 젊은 시절을 다룬 영화가 나온다면 스코트는 젊은 클린트로 적역임에 틀림없다. 그만큼 생김새가 똑같다. 다만 풍기는 분위기는 다소 다르다.

클린트가 이미 ‘전설’이 됐대서 하는 얘기가 아니라 그가 젊었을 때부터 이미 존 웨인 못지않은 카리스마와 아우라를 내뿜는 게 느껴졌다면 스코트는 그렇지 못하다. 하긴 아버지의 생김새를 그대로 물려받았다 해서 풍모나 성격처럼 다른 것들까지도 대물림하는 것은 아닐 테니까. 그래도 스코트의 앞날이 궁금해진다. 앞으로 좀 더 성숙해지고 노련해지면 아버지의 뒤를 이어 ‘동림옹(東林翁) 2세’로 추앙받을 수 있을까.

스코트는 이제 배우 경력을 시작한 만큼 앞으로 행보를 지켜봐야 하겠지만 할리우드에는 청출어람, 또는 ‘호부 호자(虎父 虎子)'라는 말에 걸맞게 아들이 아버지를 뛰어넘거나 아버지 못지않은 부자(父子)배우들이 많다.

대표적인 예가 커크와 마이클 더글러스(72) 부자다. 아버지 커크도 수많은 걸작을 남긴 훌륭한 배우이자 ‘스파르타커스(1960)’ 같은 명작의 제작자로도 이름 높았는데 아들 마이클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87년 ‘Wall Street')을 받은 명우 겸 ‘뻐꾸기 둥지 위로 날아간 새(One Flrw Over the Cuckoo's Nest, 1975)' 같은 아카데미 작품상 수상작을 제작한 명제작자로 이름을 날렸다. 마이클의 아들 캐머론도 배우이니 어쩌면 앞으로 3대가 이름을 날릴지도 모르겠다.

마이클 더글러스에 뒤지지 않는 ‘청출어람과(科)’ 배우가 제프 브리지스(66)다. 주로 조연 전문으로 우리나라에서는 그다지 유명하지 않지만 모두 150여편의 영화에 출연해 할리우드에서는 경륜 있는 베테랑 배우로 명성을 쌓은 로이드 브리지스의 아들인 그는 여러 편의 영화에서 다양한 역할로 갈채를 받았고, 2009년에는 ‘크레이지 하트(Crazy Heart)'에서 영락한 컨트리 가수를 연기해 아카데미 남우주연상을 받았다.

또 2010년에는 존 웨인의 걸작 서부극 ‘진정한 용기(True Grit)'를 리메이크한 동명의 영화에서 늙은 보안관 루스터 카그번역을 맡아 웨인에 비견된다는 극찬을 받기도 했다.

‘청출어람과’에는 살짝 못 미치지만 ‘붕어빵과’로 키퍼 서덜랜드(50)가 있다. 연기의 폭이 넒어 성격파 명우라는 평을 듣는 도널드 서덜랜드의 아들인 그는 신장 193㎝인 키다리 아버지와 달리 175㎝의 ‘단신’이지만 얼굴 생김새는 한눈에 도널드의 아들임을 알아볼 수 있을 만큼 똑같다. 키퍼는 톱클래스라고 하기는 좀 부족한데 그나마 TV시리즈 ‘24’의 주인공 잭 바워역으로 스타 대접을 받고 있다.

반면 아버지의 대를 이어 배우로 나서기는 했으나 반짝한 것으로 그친, 혹은 그조차도 못한, 존재감이 아주 미미한 아들 배우들도 물론 있다. 헨리 폰다의 아들 피터(76), 존 웨인의 아들 패트릭(77), 로버트 미첨의 아들 크리스(73), 마틴 쉰의 아들 찰리(51), 스티브 맥퀸의 아들 채드(56), 앤소니 퀸의 아들 프란체스코(2011년 사망) 등이다.

피터 폰다는 아버지(187㎝)보다 약간 키가 더 크지만(189㎝) 할리우드를 대표하는 명배우 중 한사람이었던 아버지를 능가하는 것은 그것 뿐 배우로는 아버지를 전혀 따라가지 못했다. 다만 그는 68년 출연한 전설적 영화 ‘이지 라이더(Easy Rider)'로 인해 60년대에 이른바 ‘반문화(counterculture)의 기수’로 꼽히기도 했고 나중에는 ‘울리의 황금(Ulee's Gold, 1997)'으로 연기력을 인정받아 아카데미 남우주연상 후보에 오르기도 했다. 그러나 그게 다였다.

그런가 하면 패트릭 웨인은 예리하면서도 호감 가는 외모에 아버지를 닮은 풍모 등으로 인해 인기가 없는 게 오히려 이상했지만 아버지의 영화에 여러 편 조연으로 출연한 것 외에 이렇다 할 성적을 내지 못한 채 사라졌다.

할리우드 필름 느와르의 간판스타 로버트 미첨의 아들인 크리스는 70년대 스페인 영화 ‘서머타임 킬러(1972)’에서 올리비아 허시와 공연해 한국을 비롯한 아시아에서 반짝 인기를 끌었으나 본고장 할리우드에서는 전혀 빛을 보지 못한 채 존 웨인 주연의 서부극 등에 작은 역할로 얼굴을 비치는 것으로 끝났다.

찰리 쉰은 월남전 영화 ‘플래툰(1986)’ 등으로 시선을 모으던 루키 시절, 과거 ‘제2의 제임스 딘’으로 불리던 아버지 마틴 쉰을 능가할 수 있는 유망주로 기대를 모았으나 술과 여자에 빠져 인생을 망친 케이스. 지금은 간신히 TV에 간간이 얼굴을 내미는 정도다.

이와 함께 60~70년대를 주름잡은 ‘킹 오브 쿨’ 스티브 맥퀸의 아들 채드는 반짝 인기조차도 누리지 못한, 그런 배우가 있나 할 정도로 존재감이 아주 없는 배우다. 심하게 말해 스티브 맥퀸의 아들이라는 게 부끄러울 지경. 프란체스코 퀸은 ‘플래툰’에서 터프한 병사역으로 주목을 받았지만 2011년 48세로 사망했다.

이밖에도 2대가 모두 정상에 올라선 존 보이트-앤젤리나 졸리 같은 부녀, 주디 갈랜드-라이자 미넬리 같은 모녀 배우들이 많지만 이들과는 달리 무명으로 그친 후대 배우들을 보노라면 ‘금수저’도 별 의미가 없는 게 아닌가 싶다.

김상온(프리랜서 영화라이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