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참여재판서 만장일치 무죄 받았는데 대법원에서 유죄 확정

입력 2016-02-01 11:33
평소 폭력을 일삼은 친형을 살해한 혐의로 재판에 넘겨졌지만 1심 국민참여재판에서 무죄 판결을 받은 고교생이 대법원에서 유죄를 확정받았다. 대법원 3부(주심 박보영 대법관)는 살인 등 혐의로 기소된 A군(17)에게 단기 2년6개월, 장기 3년의 징역형을 선고한 원심을 확정했다고 1일 밝혔다.

A군은 지난해 4월 술에 취해 귀가한 두 살 위 친형으로부터 폭행을 당했다. 형제간 다툼이 격해지자 A군의 아버지가 방으로 들어와 두 사람을 떼어놓고, 형을 몸으로 눌러 제압했다. A군은 두 사람이 뒤엉켜 있는 사이 부엌에서 흉기를 들고 와 형의 가슴을 찔러 숨지게 한 혐의로 기소됐다.

국민참여재판으로 진행된 1심에서 A군은 살해 의도는 없었다고 주장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술 취한 형의 폭행을 저지해야 한다는 생각으로 저지른 일이었다는 것이다. 9명의 배심원단은 만장일치로 무죄를 평결했다. 형을 흉기로 찌르고 난 뒤 어찌할 줄 몰라 발을 구르고 자신의 얼굴을 때리는 등 당황한 모습을 보였는데, 이런 점들을 감안하면 형의 사망을 예견하거나 용인할 의사는 없었다는 판단이다. 흉기로 가슴을 찌른 것도 급소를 노린 것이 아니라 “눈에 띄는 부위를 그냥 찔렀을 뿐”이라는 주장도 받아들였다. 1심 재판부도 배심원단의 판단을 존중해 살인 혐의에 무죄를 선고했다.

그러나 2심의 판단은 달랐다. 이미 아버지에게 형이 제압당한 상황임에도 적극적으로 흉기를 가지고 와서 찌른 점, 통상의 힘보다 강한 힘이 가해졌다는 법의관의 소견 등을 종합하면 피해자가 사망할 수도 있다는 점을 미필적으로나마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했다.

항소심 재판부는 “국민참여재판에서 배심원단의 평결을 존중해야 하지만 명백히 잘못된 것이라면 채택할 수 없다고 봄이 법의 정신에 부합한다”며 이례적으로 1심의 국민참여재판 결과를 뒤집었다. 국민참여재판에서 판사가 배심원단의 평결과 다른 결론을 내리는 경우는 종종 있지만 배심원단 평결과 법관의 판결이 일치한 사건을 항소심에서 뒤집는 경우는 드물다. 대법원은 “증거를 살펴보면 살인을 유죄로 본 원심의 판단은 정당하다”며 항소심 결론을 최종적으로 확정했다.

정현수 기자 jukebox@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