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죄의 말씀 저절로 생각난다” 광주 5·18 묘역서 무릎 꿇은 김종인

입력 2016-01-31 19:45

더불어민주당 김종인 비상대책위원장은 31일 광주와 김해 봉하마을을 잇따라 방문해 더민주의 전통적 지지기반인 호남과 친노(친노무현) 지지 그룹 보듬기에 적극 나섰다.

김 위원장은 이날 광주 국립 5·18 민주묘지를 참배하며 희생자들의 묘소 앞에서 무릎까지 꿇었지만 자신의 국가보위비상대책위원회(국보위) 참여 전력을 문제삼은 일부 5·18 관련단체 회원들의 거센 항의를 받기도 했다.

반면 고(故) 노무현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하기 위해 들른 김해 봉하마을에서는 참배객과 지지자들로부터 환대를 받았고, 권양숙 여사로부터 기분좋은 덕담도 들었다.

전날부터 이어진 김 위원장의 1박2일 광주 방문은 자신의 국보위 전력을 사과하고 야권 분열로 인해 동요하는 호남 민심을 붙들어 더민주로의 지지를 호소하기 위한 성격이 강해보였다.

그는 전날 5·18 단체 관련자들과 만찬을 함께 한데 이어 이날 오전에는 지도부가 총출동해 5·18 묘지를 참배했다. 5·18 기념재단, 5·18 민주유공자유족회, 5·18 민주화운동부상자회, 5·18 구속부상자회 관계자들도 동참했다.

그러나 더민주 지도부가 묘역에 도착하기 전부터 5·18 민주유공자회 설립추진위 등 일부 단체 관계자 30여명이 충혼탑에 자리를 잡은 채 "국보위 참여한 것 후회없다는 사람은 망월묘역을 참배할 자격이 없다"는 손피켓을 들고 항의했다.

김 위원장을 향해 "전두환 때 받은 훈장을 반납하고 와라", "역사의 죄인이 대명천지에 절대로 이럴 수 없다"라고 몰아붙이자, 김 위원장과 동행한 5·18 단체 관계자는 "왜 5·18을 정치에 이용하려고 하냐"고 반박하기도 했다.

또 김 위원장이 충혼탑 분향을 위해 경찰의 스크럼 뒤에 대기하던 중 5·18 단체 관련자 간에 고성과 삿대질이 오가는 몸싸움이 벌어지는 등 20분 가량 소란스런 상황이 이어졌다.

김 위원장의 국보위 참여 경력은 그의 거듭된 사과 행보에도 호남 민심에 어떻게 투영되고 수용될 것인지 두고두고 쟁점이 될 것임을 드러내는 장면으로 보인다.

장내가 정리되자 김 위원장은 충혼탑에 분향했지만 표정이 심각하게 굳어있었다.

김 위원장은 5·18 희생자들의 묘역을 둘러보며 윤상원 박기순 열사의 묘에 절을 한 뒤 묘비를 쓰다듬었으며, 박관현 열사의 묘 앞에서는 무릎을 꿇고 추모 글을 묵독했다.

김 위원장은 "(전두환) 정권에 참여했는데, 광주의 상황을 와서 보니 제가 사죄의 말씀을 드려야되겠다는 마음이 저절로 생겨난다"고 또다시 사과의 뜻을 밝혔다.

이후 비상대책위·선거대책위 합동회의에서 당 지도부는 야권 분열이 빚어진데 사과하면서 광주의 민심을 되돌리는데 총력전을 기울였다.

이종걸 원내대표는 "국립묘지를 참배하며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송구스런 맘 뿐이었다"고 말했고, 박영선 비대위원은 "5·18 묘역에서 김 위원장이 무릎꿇고 사죄했다. 그 장면을 지켜보면서 진심을 느낄 수 있다"고 지지를 호소했다.

문재인 전 대표의 신(新)복심으로 불리는 최재성 선대위원은 이날 회의에도 불참했다. 김 위원장은 기자들에게 "본인의 생각이 무엇인지 잘 모르겠는데 이번주 결론을 내겠다"고 김성수 대변인을 통해 전했다.

김 위원장은 자신이 정동영 전 의원에게 복당을 요청하면서 비례대표 등을 제안했다는 한 언론 보도에 대해 "한 차례 통화한 사실은 있지만 한 번 만나자는 얘기만 했을 뿐, 구체적인 얘기가 오간 것은 없다"고 말했다.

이어 김 위원장 등 당 지도부는 오후 김해 봉하마을로 이동해 노 전 대통령의 묘소를 참배한 뒤 방명록에 "더불어 잘사는 사람사는 세상"이라고 적었다. 손혜원 선대위원은 참배 도중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참배객과 지지자들은 "김종인의 힘, 당신의 능력을 믿습니다", "총선승리 200석 감사합니다"라는 손피켓을 들고 "김종인 멋지다", "이번엔 꼭 이겨야 합니다"라고 응원했다.

노 전 대통령의 부인 권양숙 여사는 김 위원장의 예방을 받은 자리에서 "당을 살리는 데 최선을 다해주기를 바란다"며 "이번 총선에서 최선을 다해서 한 번 해보자. 될 것같다. 뭔가 보이는 것같아요"라고 덕담을 건넸다.

앞서 김 위원장은 지난 29일 서울 신촌 세브란스병원을 방문해 입원 치료 중인 이희호 여사를 병문안했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