홀로코스트 살아남은 ‘안네의 언니’, “트럼프는 히틀러”

입력 2016-01-29 13:57 수정 2016-01-29 16:01
홀로코스트의 참상을 기록한 ‘안네의 일기’를 쓴 안네 프랑크(1929~1945). (출처: 위키피디아)
안네의 새언니 에바가 당시 기억을 담아 쓴 ‘홀로코스트, 그 이후’ (출처: 아마존)
2차 세계대전 당시를 유대인 소녀의 눈으로 기록한 ‘안네의 일기’의 글쓴이 안네 프랑크의 가족이 미국 공화당 대선 예비후보 지지율 1위를 달리고 있는 도널드 트럼프를 향해 유대인을 학살한 나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를 닮았다고 쏘아붙였다.

미국 주간 뉴스위크는 아우슈비츠 유대인 강제수용소 해방 기념일인 27일(현지시간)을 맞아 나치가 유대인을 학살했던 홀로코스트 생존자이자 안네의 새언니였던 에바 슬로스(86)를 인터뷰했다. 에바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어린 시절 안네와 함께 1942년 나치로부터 도망쳐야 했던 순간까지 함께 어울렸던 인물이다. 2차 대전 뒤 안네의 아버지 오토는 에바의 어머니 프릿치와 결혼해 가정을 이뤘다. 에바는 이후 ‘아우슈비츠, 그 이후(Depois de Auschwitz)' 등 관련 회고록을 쓰기도 했다.



아래는 뉴스위크가 편집한 인터뷰 기사 전문 번역이다.



우리 가족이 벨기에로 이주할 때 난 열한 살이었다(히틀러가 1938년 오스트리아를 점령한 뒤). 그때 우린 마치 달나라 사람처럼 취급을 받았다. 우리를 좋아하는 사람은 없는 것 같았고, 그 누구와도 동떨어진 느낌이었다. 완전 다른 문화를 지닌 요즘의 시리아 난민들이라면 더 힘들 것이다. 우리는 그래도 유럽인이라 문화가 비슷했으니까. 당시 난 스스로가 보통 사람처럼 여겨지지 않는다는 데 충격을 받았다. 지금 수많은 나라가 국경을 닫는 걸 보면 그때처럼 매우 화가 난다. 그때 세계 나라들이 유대인 난민들을 더 받아들였더라면 홀로코스트로 죽는 이들이 더 적었을 것이다.

영국은 시리아로부터 난민을 별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 점은 문제다. 최근 데이비드 캐머런 정부가 유럽에 도착한 난민 아동 3000명을 받아들이겠다고 한 걸 듣고 킨더트랜스포트(1938~1940년 사이 영국이 나치 독일로부터 유대인 어린이 수천 명을 들여온 구호활동을 이르는 말)가 떠올랐다. 킨더트랜스포트는 어떤 점에서는 훌륭했지만 한편으로는 문제도 있었다. 대부분의 아이들은 다시는 부모를 볼 수 없었다. 부모로부터 아이들을 떼어놓는 건 끔찍한 짓이다.

독일은 지금까지 여태껏 경험한 적 없는 100만 명 가까운 난민들을 받아들였다. 독일 정부는 난민들의 요구를 잘 조직해 모든 지방에 인구에 따라 일정 수의 난민이 가도록 분산시키고 연방 정부에서 지원금을 내려보냈다. 얼마전 바이마르주에 있는 난민 캠프에 갔었다. 그곳에서는 사랑스런 공동체의 분위기가 감돌았다. 아이들은 난민들에게 언어를 가르치고 주민들은 음식을 가져다줬다.

난민은 유럽만의 문제가 아니다. 전 세계의 문제다. 미국이나 캐나다처럼 큰 나라들이 더 많은 이들을 받아들인다면 문제 해결에 한발짝 다가설 수 있다. 만약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의 다음 대통령이 된다면 그야말로 재앙이다. 난 그가 인종주의를 부추기며 또 다른 히틀러처럼 행동하고 있다고 본다. 대선 준비 과정에서 트럼프는 “무슬림의 미국 입국을 완전히 차단하자”고 주장했다. 또 미국과 멕시코 사이에 장벽을 세워 불법이민자들을 들어오지 못하게 하자고 했다.

지난해 다큐멘터리 영화 ‘은신처는 없다(No Asylum)’ 시사회에 발언할 일이 있어 미국에 갔다. 영화는 안네의 삶 중 알려지지 않은 부분을 비롯해 아버지 오토가 어떻게 1940년대에 미국행 비자를 얻기 위해 고생했는지에 대한 내용을 담았다. 아버지는 가족을 홀로코스트로부터 구해내기 위해 안간힘을 다했다. 지인 중 당시 미국 루즈벨트 정부에서 일했던 이에게 연락해 제발 무슨 일이라도 해달라고 빌었지만, 결국 거절당했다. 미국은 1940년대 난민을 더 받아들이고 싶어 하지 않았다.

지금 상황은 히틀러 때보다 더 나빠졌다. 그때는 미국과 러시아, 영국 등 동맹국들이 나치에 대항하기 위해 함께 싸웠다. 만일 우리가 힘을 합치지 않는다면, 세계는 지금 마주한 문제를 절대 풀 수 없다. 솅겐 조약을 파기하는 게 옳은 답이라 보지 않는다. 1961년 베를린 장벽이 세워졌을 때 세계가 얼마나 충격에 빠졌는지 기억한다. 그런데도 이제와 모두들 다시 사람들을 차단하기 위해 벽을 세우려 한다. 터무니없는 일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