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의 하청 건설사 대표 A씨는 수년간 친·인척과 지인 자녀·배우자 등 수십 명 명의를 빌려 실업급여를 타냈다. 명의자들을 고용했다가 해고한 것처럼 서류를 꾸미기만 하면 정부에서 돈이 나왔다. 2014년 11월까지 3년간 부정수급 사실이 적발된 명의 대여자는 33명이다. 이들 앞으로 1억6383만원이 지급됐다. 이 중 1억원이 넘는 3분의 2를 ‘기획자’인 A씨가 챙겼다. 나머지는 명의를 빌려준 사람과 이들을 알음알음 모집해준 현장소장에게 돌아갔다. 현장소장은 A씨 지시를 받고 브로커(중개인) 노릇을 했다고 한다.
대전에선 산부인과 원장 B씨가 2013년 12월부터 2014년 11월 사이 간호사 4명을 해고한 것처럼 위장했다. 간호사들은 서류상으로만 해고됐을 뿐 병원에서 계속 일했다. 이 역시 실업급여를 노린 수법이었다. B씨는 실업급여로 나온 1367만원을 간호사들과 나눠가졌다. 그는 간호사 월급으로 나가는 돈 일부를 그들 앞으로 나온 실업급여로 충당한 셈이었다. 간호사들은 월급도 받고 실업급여도 챙겼다.
조직적 부정수급 구속수사
경찰은 앞선 사례들과 같은 식의 실업급여 부정수급을 조직적 사기로 보고 원칙적으로 구속 수사하기로 했다. 경찰청은 28일 고용노동부와 함께 다음 달 1일부터 연중 합동 특별단속을 시작한다며 이 같이 밝혔다.
실업급여는 고용보험에 가입한 근로자가 실직한 뒤 다른 직장을 구하는 동안 정부가 지급하는 돈이다. 안정적인 재취업 활동을 지원하는 차원이다. 경찰청 관계자는 “수급 자격을 조작하거나 허위 청구하는 수법으로 실업급여를 부정 수급하는 사례가 끊이지 않고 있다. 이런 행위가 근절될 때까지 강력히 단속할 것”이라고 했다.
실업급여 누수 차단은 국무총리실이 지난 12일 발표한 ‘부패방지 4대 백신 프로젝트’의 과제 중 하나다. 지난해 지급된 실업급여는 4조5473억원이다. 이 중 부정수급으로 적발된 돈은 전체의 0.3%인 148억원이다. 당국은 적발되지 않는 부정수급 사례가 많을 것으로 본다.
알선형부터 날조형까지
중점 단속 대상은 브로커나 사업주가 개입하거나 서류 위·변조 또는 유령 회사 등을 이용한 대규모 부정수급이다. 특히 불법 중개인과 사업주 등이 부정수급 과정에 개입했는지 추적한다. 기존엔 개인의 부정수급에 초점을 맞췄었다. 경찰은 조직적·계획적으로 부정수급을 하거나 도운 사업주와 브로커에게 사기죄를 적용한다는 방침이다. 상습적일 경우엔 구속영장을 신청한다. 부정수급자는 일단 자신이 받은 돈의 2배를 토해내야 한다.
조직적 부정수급 유형은 다양하다. 브로커가 주도적으로 부정수급자와 기업 사이에 다리를 놓아 실업급여를 타낼 수 있게 돕는 ‘알선형’, 기업 대표 등이 직접 다수 근로자와 공모하는 ‘짬짜미형’, 사업주가 협력·입점업체와의 관계에서 우월한 지위를 악용하는 ‘갑을관계형’이 있다. 서류상으로만 존재하는 회사 등 특정사업장을 대규모 부정수급에 이용하는 ‘법인동원형’, 고용·실업 관련 서류를 조작하거나 수급자 명의를 도용하는 ‘날조형’도 있다.
전국에 전담수사팀 가동
경찰은 이달 말까지 경찰서별로 지방고용노동청·지청과 협업 체제를 구축하고 다음 달 합동 단속에 들어간다. 그동안 실업급여 부정수급 조사는 고용부 단독으로 해오다시피 했다. 경찰은 단발성 고발 사건을 수사하는 수준이었다.
경찰청은 전국 16개 지방경찰청별로 지능범죄수사대 1개팀을 전담수사팀으로 지정했다. 일선 경찰서에선 지능범죄수사팀이 지역별 기획수사를 담당한다. 지방청과 경찰서는 지방고용노동청·지청과 수사협의회를 설치하고 ‘핫라인’(직통 연락체계)을 구축한다. 당국은 사건 규모에 따라 최고 1억원의 신고보상금을 지급한다.
강창욱 기자 kcw@kmib.co.kr
실업급여 조직적 부정수급 구속수사
입력 2016-01-28 18: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