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성북구 성북동 성북로. 개발을 신앙처럼 믿는 현대인들로 인한 사랑과 평화의 상실을 표현했던 김광섭의 시 ‘성북동 비둘기’의 배경이 된 곳이다. 성북로가 시작되는 지하철 4호선 한성대입구역 사거리를 등지고 북악산을 향해 걷다보면 굽이굽이 이어지는 골목길마다 현대인들의 마음에 안식을 주는 갤러리와 미술관들이 줄을 잇는다.
그 중 한 병원건물 3층에 올라가자 새하얀 벽 위에 광고 작품들이 은은한 조명을 받으며 복음을 뿜어내고 있었다. 이 갤러리에서는 31일까지 ‘예수복음 광고전’이 진행되고 있다. 20일 찾은 이곳에서 계영선(62) 영라인의원 원장, 박진원(48) 갤러리교회 전도사, 정기섭(53) 제이애드 대표를 만날 수 있었다. 의사와 전도사, 광고 제작자가 한 자리에 모인 이유는 무엇일까. 세 사람은 “선교를 위한 공간기부와 재능기부의 컬래버레이션(합작)”이라고 입을 모았다.
지난 2일 이곳에서는 갤러리 오픈식과 교회 설립예배가 동시에 열렸다. 교회 이름은 ‘갤러리교회’. 건물주인 계 원장이 병원장실로 쓰던 공간을 기부하고, 문화와 목회의 접목을 추구하던 박 전도사가 예배 인도를 맡고, 첫 번째 전시회를 위해 정 대표가 복음광고를 재능 기부한 것이다. 박 전도사는 “문화를 선교의 좋은 도구로 활용하고자 했던 세 사람이 하나님이 계획하신 때에 손을 맞잡은 것”이라고 말했다.
계 원장은 같은 자리에서 20년째 병원을 운영 중이다. 병원 지하실의 33㎡(10평) 남짓한 공간을 활용해 고교시절 동창들과 매주 화요일 기도 모임을 해오던 그는 평생 신앙생활을 해오면서 평신도 사역자로서 예배당을 짓는 꿈을 꿔왔다. 계 원장의 큰할아버지는 1928년 전북 익산에 황등교회를 설립한 계원식 장로다.
“큰할아버지도 당신이 운영하던 기성의원 지하에 예배 처소를 만드셨어요. 그 공간이 점점 커진 것이 지금의 황등교회입니다. 저도 그 신앙을 계승하고 싶었습니다.”
평소 그림을 좋아했던 계 원장은 문화예술과 목회를 접목해볼만 한 사람을 수소문했고, 한 목회자로부터 박 전도사를 소개받았다. 박 전도사는 소더비와 함께 대표적인 세계 미술경매 시장으로 꼽히는 크리스티 홍콩 경매에서 5회 연속 낙찰될 만큼 주목받는 작가였다. 하지만 2010년 영국 유학 때 무너져가는 영국 교회들을 보면서 크리스천 작가로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다.
“영국에서 살아남은 교회들을 유심히 찾아봤더니 주중에는 문화공간으로 교회를 활용하고 주말에는 예배를 드리는 오픈 커뮤니티 형태였어요. 그런 교회를 보면서 교회에 대한 관점도 바뀌고 신학에 더 관심을 갖게 됐습니다.”
박 전도사는 지난해부터 감리교신학대 신대원에서 신학을 공부하고 있다. 계 원장과 의기투합한 박 전도사는 3년 전 기독교 관련 박람회를 통해 인연을 맺었던 정 집사에게 연락을 했고 정 집사는 흔쾌히 갤러리교회의 첫 번째 전시회에 작품을 선보이기로 했다.
정 집사는 강력한 시각언어인 광고로 복음을 전하기 위해 ‘복음 광고’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한 광고 전문가다. ‘예수복음 광고쟁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그는 “광고에 성경적 메시지를 담아낸 지 올해로 15년째인데, 세계적인 광고 공모전에서 입상했을 때보다 갤러리교회에서 오픈식 하던 날이 더 설레었다”고 말했다.
갤러리 운영시간은 오전 10시부터 오후 6시까지다. 평일과 주말을 가리지 않고 열린다. 같은 공간에서 주일 오후 2시30분에 예배가 진행된다. 주말에 갤러리를 방문한 사람들이 자연스럽게 ‘문화와 소통하는 예배’를 경험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예배 인도와 설교는 박 전도사가 맡고 격주로 외부에서 설교자를 초청한다. 최근에는 그룹 ‘015B’의 객원멤버였던 김태우 목사가 설교를 전했다.
교회 이름 자체가 ‘갤러리교회’인 만큼 앞으로 비전도 선교와 예술 분야에 맞춰졌다. 교회 재정의 절반은 구제 사역에 쓰고, 갤러리는 전시 공간 마련에 어려움을 겪는 기독 예술인들에게 제공키로 했다. 올 7월에는 영등포 쪽방촌 주민과 노숙인들을 위한 전시회를 열고 수익금을 기부할 계획이다.
정 집사는 “갤러리교회를 통해 성경적 가치관을 가진 예술가들에게 소중한 전시 기회가 주어지고 갤러리를 찾는 사람들에겐 눈에서 마음으로 복음이 전달되기 바란다”고 전했다. 박 전도사는 “문화와 예술을 부정적으로 보는 이들도 있지만 이를 잘 활용해 말씀이 중심이 되는 교회를 만들 수 있다면 그만큼 훌륭한 복음의 도구도 없다”고 강조했다.
성북동 58년차 주민인 계 원장에게 아늑한 원장실을 포기한 아쉬움은 없었을까.
“갤러리교회가 예수님의 사랑을 가슴에 품은 성북동 비둘기들의 터전이 된다면 더 바랄 게 없어요.”
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예술작품 감상하며 예배 드리는 성북동 갤러리교회
입력 2016-01-28 17:30 수정 2016-01-28 17: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