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전 파키스탄 서북부 와지리스탄의 한 마을. 파힘 쿠레시의 집에서는 오후 가족과 이웃이 한데 모여 수다를 떨고 있었다. 열네 살 소년이던 쿠레시는 어른들의 대화가 지루해 연신 하품을 해댔다. 금요 기도회를 마치고 온 이들이 어머니의 초대로 집에 모여 있었다. 쿠레시는 자리만 끝나면 밖에 나가 친구들과 놀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쿠레시의 귀에 비행기가 이륙하는 듯한 소리가 들린 건 그때였다.
약 2초 뒤 미사일이 집을 덮쳤다. 쿠레시는 몸이 불길에 휩싸였던 걸 기억한다. 일단 밖으로 뛰쳐나가 목숨을 부지했지만, 그날 이후 쿠레시의 인생은 송두리째 바뀌었다. 꼭 7년 전인 2009년 1월23일,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이 취임 3일 뒤 내린 첫 드론 공격 명령의 결과였다.
영국 일간 가디언은 미군의 드론 오폭 피해자 청년 쿠레시의 사연을 전했다. 당시 드론 폭격은 애초 의도대로 이슬람 무장단체 탈레반 근거지를 폭격하는 데 실패했다. 쿠레시가 병원에서 나오는 데는 40일 가까이가 걸렸다. 폭격 당시 파편이 복부에 박혔고, 상체 피부가 찢겼다. 몸의 왼쪽 부분은 거의 모두 화상 수술을 거쳐야 했다. 레이저 수술 끝에 오른쪽 눈을 살렸지만, 왼쪽 눈은 그렇지 못했다.
당시 폭격으로 쿠레시의 삼촌 둘이 죽었다. 아랍에미리트(UAE)에서 근무하던 스물한 살 사촌형도 숨졌다. 사촌 형제자매 열네 명은 그 폭격으로 모두 아버지를 잃었다. 학교에서 화학을 전공하는 게 꿈이던 쿠레시는 순식간에 친척들을 부양해야 하는 가문의 가장 중 하나가 됐다. 공부보다 일단 돈벌이가 먼저였다. 그때 망가진 안채는 다시는 고쳐놓을 수 없었다.
가디언은 오바마 대통령이 최근 이행된 이란 핵협상과 쿠바와의 국교 정상화 등을 통해 ‘평화의 수호자’로 불리고 싶어하지만 정작 자신이 저지른 민간인 드론 오폭 피해자들은 외면하고 있다고 평가했다. 쿠레시에게도 오바마 대통령은 평화의 수호자는커녕 “독재자”와 다를 바 없는 존재다.
쿠레시는 가디언과의 화상 인터뷰에서 “그 사람(오바마)이 와지리스탄에 저지른 건 독재자나 할 짓”이라면서 “세상에 독재자 명단 같은 게 있다면, 오바마 대통령은 드론 폭격 때문에라도 거기 들어가야 한다”고 주장했다. 오바마 대통령은 지난해 아프가니스탄과 파키스탄 국경지대에서 드론 폭격으로 서방 인질 2명이 사망했을 당시를 제외하면 사과한 적이 없다.
비영리 뉴스제공 기관인 탐사보도국(Bureau of Investigative Journalism)에 따르면 오바마 대통령 집권 이래 파키스탄 지역에서 진행된 드론 폭격은 총 371건에 이른다. 이로 인해 죽은 민간인은 최소 256명에서 최대 633명이다.
쿠레시는 “와지리스탄에서는 테러단체와 상관도 없이 수많은 여자, 어린이들이 죽었지만 이에 대해 아무런 사과도 없었다”면서 “사과는커녕 죽었다는 데 대해 인정조차도 하지 않았다”고 말했다. 이어 “폭격으로 분명 무장세력도 죽었겠지만, 사망자 대부분은 미국과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과 아무 상관도 없이 살던 이들이었다”고 말했다. 쿠레시는 최근 몇 년간 변호사와 함께 미국 정부와 국제사회에 법적 보상을 요구했지만 아무 성과도 거두지 못했다.
후일 흘러나온 파키스탄 정부 측 기밀문서에 의하면 쿠레시가 당한 폭격으로 당시 죽은 민간인은 9명이었다. 다니엘 클레드만 전 뉴스위크 기자가 집필한 ‘살상 혹은 생포(Kill or Capture)’에 따르면 당시 폭격 목표였던 탈레반 병사는 그 지역에 아무도 없었다.
지난 20일 미국 애슈튼 카터 미국 국방장관은 올해 동안 극단주의 무장단체 이슬람국가(IS)를 없애기 위해 북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 근거지를 폭격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가장 최근에는 예멘에서 20일 드론 폭격이 이뤄졌으며, 여기에 영국과 파키스탄 등 미국의 동맹국들도 드론 폭격을 실시 중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오바마가 쏟아부은 ‘얼굴 없는 폭격’ ..드론에 떠는 분쟁지역 주민들
입력 2016-01-24 00: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