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 정찰총국장에서 통일전선부장으로 승진한 것으로 알려진 김영철이 오랫동안 군(軍)에서 남한 관련 분야를 담당해온 ‘대남전략가’란 증언이 나왔다고 북한전문매체인 데일리NK가 보도했다.
특히 대남 공작 업무를 총괄 지휘하는 정찰국장으로 10여년 간 일하면서 한국 군 사정을 꿰뚫고 있고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목표를 달성하는 ‘독한 전략가’란 평가도 나왔다.
1980년대 북한에서 인민무력부 대외사업국 부부장을 지내면서 그를 가까이서 지켜봤다는 최주활 탈북자동지회장(前 북한군 상좌)은 “김영철은 한국군의 정보를 줄줄이 꿰고 있는 데다 전략을 추진하는 데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인물”이라면서 “대남전략 부문에 있어 매우 치밀한 전략가”라고 말했다고 이 매체는 전했다.
최 회장은 “1980년대 말 북한에서 격주 토요일마다 중앙당 강연과 인민무력부 강연이 열렸는데, 당시 김영철은 정찰국 7부장 지위였음에도 연단에 올라 남한의 정치·군사 정세에 대해 강연할 권한을 가졌다”면서 “1시간 반 동안 진행된 강연 내내 원고를 단 한 번도 보지 않고도 남한 군 간부들의 이름과 임명 날짜, 부대 위치, 전력 배치, 한미 간 안보 회의 내용 등을 줄줄이 읊을 정도로 해박한 지식을 뽐냈다”고 기억했다.
최 회장에 따르면, 김영철은 출신 성분이 백두산 줄기도 아닌 데다 중국에 친인척까지 많이 있어 여러모로 승진에 제약이 많았다. 정찰국 내에서 해외 공작 교육을 철저히 받았음에도 불구하고 출신 성분으로 인해 해외 파견 기회를 얻지 못한 그는, 오로지 실력만으로 고위 간부가 돼야 한다는 생각에 매우 독하게 공부했다고 최 회장은 전했다.
이런 김영철을 눈여겨본 이는 장성택의 형 장성우였다. 1980년대 정찰총국장이었던 장성우는 자신의 비서 급이었던 김영철이 남한 정세에 매우 해박하다는 걸 안 뒤로 적극 밀어주기 시작했다고 한다. 김영철이 1989년 2월 남북 고위당국자회담 예비접촉 당시 북측 대표로 협상을 주도하면서 김일성과 김정일의 눈에 띄게 됐다고 최 회장은 전했다. 이후 김영철은 1990년 남북 고위급회담 북측 대표단으로 참석하기 시작했다.
최 회장은 “김일성이 김영철의 회담 장면을 직접 시청하면서 ‘누군지 참 똑똑하다’고 말해 간부들이 김영철의 승진 작업에 들어간 걸로 안다”면서 “이후 10여년 간 정찰국장으로 활약했다. 작은 실수로도 좌천이 되는 북한군 내에서 1여년간 자리를 잃지 않는 건 유례없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장성우가 1988년 좌천되면서 그를 배경으로 삼았던 김영철의 입지도 위태로워지는 게 아닐까 했지만, 김영철은 자기 처신을 굉장히 잘해 이제까지 신임을 잃지 않고 있다”면서 “김일성부터 김정일, 김정은에 이르기까지 대남 전략 부문에 있어 김영철을 대체할만한 인물이 나오지 않는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
“北김영철, 원고 안보고 南 軍간부·부대배치 줄줄 외운다”
입력 2016-01-22 13:3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