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례는 이미 많습니다. 가장 흔한 건 말실수입니다. 말 한 번 잘못했다 구설수에 오르는 경우가 수두룩하죠. 말로 대중을 만나는 이들에게 입단속은 필수입니다.
MBC ‘황금어장-라디오스타’는 이런 논란에 자주 얽힙니다. 거침없는 대담이 콘셉트인 프로그램 특성 때문이겠죠. 그러나 간과해선 안 될 게 있습니다. 장난이 과하면 실례가 될 수 있다는 것 말이죠.
20일 방송이 또 문제가 됐습니다. 배우 박소담과 이엘이 게스트로 나온 편이었습니다. 최근 충무로의 주목을 받은 두 여배우가 출연해 자연히 이목이 쏠렸는데요. 영화 ‘경성학교: 사라진 소녀들’을 연출한 이해영 감독과 개그맨 조세호가 함께했습니다.
조세호를 제외한 세 사람은 예능프로그램에 익숙하지 않은 출연자였습니다. 초반 다소 긴장한 듯 보이기도 했지만 분위기는 점점 풀렸습니다. 솔직한 대화가 이어지면서 스스럼없는 농담들이 오갔죠.
시청자들의 눈살을 찌푸리게 한 발언은 이 감독의 입에서 나왔습니다. 이엘이 CF모델로 활동하던 시절, 광고 촬영차 배우 김수현과 함께 인도에 간 적이 있다는 얘기를 하던 중이었습니다.
당시 김수현은 한류스타로 주목받기 전이었습니다. 장난기 많지만 연기에 대한 욕심이 대단한 친구였다고 이엘은 회상했죠. 그때 이 감독은 대뜸 “본인이 젖 물려서 키운 느낌이겠어요”라는 말을 내뱉었습니다. 이엘은 당황한 듯 “네?”라고 되물었습니다.
젖을 물려 키운다는 말은 관용적인 표현으로 볼 수 있습니다. 엄마가 아이를 키우듯 세심히 챙겨주며 성장과정을 지켜본다는 의미죠. 하지만, 이 상황에 적절한 표현은 아닙니다. 맥락 없는 무리수로 보입니다. 성희롱으로 들렸다는 시청자 지적이 잇따르는 이유입니다.
다른 ‘농담’도 있었습니다. 김구라가 이엘에게 “실제로 보니 고혹적이고 노블(Noble)한 느낌”이라고 칭찬하자 이 감독은 “노브라(No-bra)요?”라는 리액션을 날렸습니다. 술자리에서도 통하지 않을 유머가 아닌가요. 싸해질 뻔한 분위기를 이엘이 “사실 저도 (그렇게 들렸다)”고 말해 누그러뜨렸습니다.
이런 상황이 더욱 불편하게 다가온 이유가 있습니다. 이날 이엘이 털어놓은 속이야기 때문입니다. 최근작 ‘내부자들’에서 노출 연기를 선보인 이엘은 영화 ‘황해’에서 첫 베드신을 찍었는데요. 해당 장면 편집본이 인터넷에 나돌아 적잖이 마음고생을 했답니다. 타인 시선이 신경 쓰여 찜질방도 못 갈 정도였다고요. 그런 배우에게, 성적인 농담을 던진 겁니다.
여성을 향한 무례한 시선과 태도는 여러 방송에서 반복되는 단골 문제입니다. 어쩌면 우리 사회에 여전히 팽배한 일일지 모릅니다. 재미라는 이름으로 익스큐즈될 수 없습니다. 결코 가벼이 넘길 수 없는 문제란 얘기입니다.
농담도 좋고 재미도 좋습니다. 하지만 선을 넘는 순간, 그건 더 이상 예능이 아닌 겁니다.
권남영 기자 kwonny@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