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학교에 힙합 하러 간다’ 미국 고등학교에 부는 ‘힙합 테라피’ 바람

입력 2016-01-21 11:28
뉴비전차트 고교 학생인 엘리야 해리스(14. 오른쪽)이 라디오 방송 아침 토크쇼에 출연하고 있다. (출처: NYT)
뉴비전차트 고교 학생들이 라디오 방송 아침 토크쇼에 출연하고 있다. (출처: NYT)




미국 뉴욕의 빈민가 브롱크스에 사는 고등학생 엘리스 멕베스(14)는 말보다 주먹이 앞서는 성격이었다. 화가 나면 감정을 말로 표현하기보다 일단 싸움부터 걸었다. 하지만 4개월 전 아끼던 사촌동생이 숨지면서, 뭔가 다른 방법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찾은 방법은 다름 아닌 ‘힙합’이었다.

자신이 다니는 브롱크스 뉴비전차터 고교 상담실에서 멕베스는 상담교사의 도움을 받아 사촌동생의 죽음에 대해 힙합 가사를 적고 녹음을 했다. 친누나가 코러스를 불러 녹음을 도왔다. “잘 가라 하고 싶어, 믿기진 않아 그래도 널 기억할게.” 마음에 쌓인 감정을 해소하는 법을 알게 된 멕베스는 더 이상 폭력에 기대지 않게 됐다.

멕베스에게 도움을 준 건 최근 미국 교육계에서 인기를 얻고 있는 ‘힙합 테라피’다.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NYT)는 19일(현지시간) 뉴욕 등 미국 도심 지역 고등학교에서 기존의 상담방식 대신 힙합 음악을 만드는 과정을 통해 학생들의 심리 문제를 해결하는 이 같은 방식이 인기를 얻고 있다고 전했다.

멕베스가 다니는 뉴비전차터 고교는 이 중 모범사례에 속한다. 힙합 테라피로 박사학위를 받은 상담교사 이안 레비는 브롱크스에 만연한 가난과 범죄로 인한 심리문제를 기존 방식으로 해소할 수 없다고 보고 이 프로그램을 운영하기 시작했다. 이 학교는 힙합 교육을 음악 수업에 도입시켜 학생들이 만든 음악에 저작권까지 넣을 수 있도록 했다. 자선단체에서 3000달러(약 360만원)의 후원을 받아 음향 장비도 갖췄다. 이들의 음악은 지역 라디오 방송에도 등장해 이를 듣고 몇 달간 출석하지 않던 학생이 다시 학교에 나오기도 했다.

이곳에 다니는 학생 550명은 대부분 라틴계나 흑인으로 힙합 문화에 익숙하다. 상담실에서 학생들은 자신의 불만이나 생각을 힙합 가사로 적고 녹음실에서 노래를 녹음한다. 자신의 고민을 무언가로 표현해내는 것에서 심리적 안정을 얻는다. 지난해 10월 학교에서 한 여학생이 자살하자 그 친구들이 이를 추모하는 힙합 영상을 학예회에서 상영하기도 했다.

힙합 테라피는 2000년대 중반 들어 힙합 문화가 젊은 세대에서 널리 퍼져나감에 따라 고안됐다. 기존 심리치료 방식이 이들의 정신건강에 별 효과가 없다는 문제의식이 출발점이었다. 교육계에서는 상담뿐 아니라 문학과 수학, 과학 등을 가르칠 때도 응용되기도 한다. 버클리 고교 등에서 처음 시작되어 캘리포니아주와 뉴욕 등지로 퍼져나갔다. 지금은 웬만한 도심 지역 학교에서는 이를 모두 시도하고 있을 정도다.

정신건강의학자들도 이 같은 방식이 심리 치료에 효과적일 수 있다는 데 동의한다. 하지만 단지 1차적으로 감정을 표현하는 데 그치지 않고 이를 어떻게 해결할 것인지도 함께 논의되어야 한다는 의견이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