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막말 판사' vs '우수 법관', 차이는 배려와 경청

입력 2016-01-20 15:47 수정 2016-01-20 16:38
“부잣집에 시집가서 누릴 것 다 누리고 살지 않았나요? 도대체 얼마를 더 원하나?”

이혼을 위해 소송을 낸 여성에게 판사가 이런 말을 하며 조정을 강요했다고 한다. 서울지방변호사회가 2015년 법관평가 결과를 발표하며 거론한 문제 사례의 일부다. 2008년 이후 판사들을 대상으로 법관평가가 시행되고 있지만 ‘막말 판사’는 근절되지 않고 있다. 소송 당사자와 변호인이 법정에서 경험한 부조리 사례는 ‘주관적 평가’로 넘기기엔 너무나 처절했다.



이런 판사 정말 만나기 싫다… 끊임없는 ‘막말 판사’

“○○씨. 재판이 피해자 마음대로 열고 닫고 해야 합니까?” 한 판사는 성범죄 사건 피해자의 실명을 법정에서 직접 거론했다. 피고인석에 앉아있던 피고인은 수차례에 걸쳐 또렷하게 피해자의 실명을 들을 수 있었다. 이 재판을 목격한 변호사는 “피해자가 지방에 있어 증언 나오기 어려운 사정을 고려해 달라고 했는데, 판사가 ‘법정을 피해자 마음대로 열고 닫을 수 있느냐’며 계속 피고인 앞에서 실명을 거론했다”고 전했다.

사실관계를 판단하고 법리에 따라 판결하는 법관이 ‘판단이 부담스럽다’며 주저하는 경우도 있었다. 한 변호사는 “사실심 법관이 판단해야 할 사항에 대해 ‘나한테 그런 부담을 주지 말라’며 판단을 완강하게 거부한 일이 있었다”고 했다. 이 판사는 사건 당사자에게 조정을 강제하는 것은 물론 “조정에 이의를 제기하면 다음 기일에 바로 선고하겠다. 무슨 의미인지 알죠?”라고 협박에 가까운 언행을 했다. 이 판사가 말한 ‘무슨 의미’는 패소를 뜻한다.

한 변호사의 사연은 더욱 애절하다. 소송대리인을 변호하기 위해 한참동안 변론한 변호사에게 재판부가 던진 대답은 “그래서? 그래서 뭐”라는 반말이었다. 그러나 판사와 변호사의 관계에 따라 반말은 존댓말로 바뀌기도 했다. 한 판사는 재판 도중 한쪽 변호사와 지난 술자리 등 사석에서 있었던 내용을 주제로 대화를 나눴다. 이 판사는 소송당사자와 변호인의 관계를 듣고 난 뒤 “아들이시라고요? 잘 참고하겠습니다”라고 덧붙였다. 상대편 소송당사자의 머릿속엔 ‘편파’와 ‘유착’이란 단어가 스쳐 지나간 건 물론이다.

범죄 혐의를 받고 법정에 선 피고인은 ‘막말 판사’의 가장 만만한 ‘먹잇감’이다. 한 판사는 피고인을 향해 “한심하다 한심해. 무슨 삼류드라마 같아서 실체적 진실을 찾을 가치가 전혀 없다”고 말했다. 피고인은 자신의 유무죄를 가려줄 판사가 이미 ‘유죄’로 예단하고 있다는 생각에 절망감을 느꼈다. 피해자의 피해 보전을 위해 5000만원을 공탁한 피고인에게 “5000만원 공탁하면 형을 깎아줄 줄 아느냐”며 훈계하는 판사도 있었다.



“패소했지만 결과에 승복합니다” 우수 법관은 다르다

“○○○판사님처럼 고압적이지 않고 섬기는 자세로 친절하고 인내심 있게 재판을 진행하시는 판사님은 처음 봤습니다. 법조인으로서 제 자신을 반성하고 돌아보게 됐습니다”(변호사 A씨)

우수 법관은 달랐다. 그러나 그 비결은 단순했다. ‘배려’와 ‘경청’, 그리고 '성실한 재판'이란 기본적 가치에 충실했다. 한 변호사는 자신의 사건을 담당한 판사에 대해 “항소가 기각됐지만, 재판과정에서 재판장이 열심히 들어준 것만으로도 원고들의 마음이 어느 정도 풀리는 것 같았다”고 전했다. 서울변회 법제이사 이광수 변호사는 “변호사들이 우수 법관 사례라고 전한 일화 중에 재판에서 패소한 사례도 적지 않다”고 했다.

소송 절차를 잘 모르는 국민들에게 가장 필요한 건 배려였다. 한 판사는 소송 절차를 사건 당사자들이 모를 경우 잠시 재판을 멈춘 뒤 이해하기 쉽게 설명해줬다. 사건을 결심하기에 앞서 변호사에게 “본 재판부가 주의 깊게 보았으면 하는 것을 알려주십시오”라며 겸손한 물음을 던지기도 했다. 이 사건을 담당한 변호사는 “모든 소송대리인과 당사자들을 따뜻하게 배려해줬다”며 “이런 판사님은 처음 봤다”고 평가했다.

20대 초반 피고인에게 따뜻한 말 한마디를 건넨 고등법원 부장판사도 있었다. 한 변호인은 “1심 선고형이 부당하다며 항소한 피고인에게 앞으로의 인생계획을 구체적으로 제출하라고 권유한 판사“라며 “20대 초반 피고인의 장래를 진심으로 걱정해 주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다”고 전했다.

한 판사는 다툼이 극심한 이혼 사건을 담당했다. 부부 중 한 쪽은 이혼을 원하고, 다른 한 쪽은 이혼을 거부해 재판은 평행선을 달렸다. 이 판사는 4시간이 넘는 조정 과정에서 양측의 입장을 충분히 들어주고 헤아려 줬다. 이들 부부를 변론한 변호사는 “당사자들이 원만히 합의한 건 물론 재판과정에서 두 사람이 각자의 상처를 회복하고 상대방을 이해할 수 있었다”고 전했다. 이 변호사는 “의견을 경청하고 많은 시간을 할애하는 모습이 무척 감명 깊었다”고 소회했다.

양민철 기자 listen@kmib.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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