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심한 실업난을 겪고 있는 이탈리아에서 정규직 일자리에 대한 국민들의 열망을 풀어낸 코미디 영화 ‘쿼 바도(Quo Vado·어디로 가야 하지)?’가 블록버스터급 흥행 돌풍을 일으키고 있다.
이탈리아에서 지난 1일(현지시간) 개봉한 이 영화는 ‘아바타’가 세웠던 이탈리아 박스오피스 역대 최고 흥행기록을 갈아 치울 기세다. 이미 개봉 약 3주 만에 5900만 유로(776억원) 수익을 냈다. 세계적 열풍을 일으키고 있는 ‘스타워즈: 깨어난 포스’의 수익 2300만 유로(304억원)도 제쳤다. 마테오 렌치 총리도 이 영화를 아이들과 함께 관람하고 “시작부터 끝까지 폭소했다”고 현지 언론에 인터뷰 했을 만큼 이미 ‘국민 영화’가 됐다.
영화에서 주인공 께코(Checco)는 남부 이탈리아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난 30대 후반 공무원이다. 안정된 직업을 뜻하는 ‘포스토 피소(Posto fisso)’를 가지고 평범하게 살던 께코의 삶은 정부가 공무원직 개혁안을 실시하면서 꼬이기 시작한다. 말도 안 되게 힘든 일들이 강요되는 통에 동료들이 줄지어 사직서를 내지만, 봉급과 사회보험, 정규직 자리를 포기할 수 없는 께코는 마지막까지 버티다 결국 혼자 남는다.
께코를 어떻게든 내보내려는 인사담당자는 그를 북극연구소로 보내 북극곰 자위시키는 일을 맡긴다. 한편 북극에서 자유로운 노르웨이 여성 발레리아를 만나 사랑에 빠진 께코는 사랑을 따라 불안정한 삶을 살 것인지, 비참하지만 안정적인 정규직 인생을 살 것인지 고민에 빠진다.
쿼 바도의 흥행은 이탈리아 사회의 최근 변화를 반영한다. 일정한 소득이 있는 안정적인 일자리, 포스토 피소는 이탈리아에서 옛말이 된지 오래다. 11.3%에 달하는 높은 실업률은 특히 청년층에게 큰 타격이다. 이들은 파트타임 일자리만을 전전하며 스스로를 자조하는 게 일상이 됐다. 영화의 제목이 뜻하는 ‘어디로 가야 하지’라는 물음은 유명 고전소설 ‘쿼 바디스(Quo Vadis·그대 어디로 가는가)’를 이 같은 현 세태에 적용시킨 유머다.
이 같은 문제의 원인으로는 정규직 고용 시 감당해야 하는 비용이 너무 큰 점이 지적되고 있다. 역시 이탈리아 비정규직을 주제로 한 독립영화를 제작한 한 감독은 영국 일간 가디언과의 인터뷰에서 “한 달에 1000유로를 주는 정규직으로 채용할 시 고용주가 각종 사회보험 탓에 세금까지 포함해 부담해야 하는 비용이 2500유로에 달한다”면서 “이 때문에 한 달에 600유로짜리 비정규직에 고용한다”고 전했다.
렌치 총리는 최근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일자리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이전의 사회보장 보험에 따른 추가 고용비용을 덜어낸 정규직 일자리와 정규직 고용 시 고용주에게 세금감면 혜택을 주는 게 개혁의 주요 골자다. 그러나 이 같은 시도에도 일자리 문제는 해결 기미가 없다. 이탈리아에서 지난 2년 동안 만들어진 새 일자리는 12만7000개에 불과하다. 전체 유로존에서 만들어진 216만개 일자리의 100분의 1에도 미치지 못하는 수치다.
국내와 비슷한 문제를 겪고 있지만, 이탈리아 국민들은 이를 어떻게든 낙천적으로 받아들이려 하는 모습이다. 현지 작가인 베페 세베르니니는 15일 미국 일간 뉴욕타임스에 기고한 글에서 “이 영화의 성공은 이탈리아인들이 과거 누렸던 직업 안정성을 얼마나 그리워하고 있는지를 보여준다”면서 “이왕이면 우는 것보단 웃는 게 좋지 않으냐”고 적었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단독>‘정규직 없는 세상’ 불만이 흥행 대박으로... 이탈리아는 지금 ‘쿼 바도’ 열풍
입력 2016-01-20 11:33 수정 2016-01-20 11: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