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사철이다 보니 많은 사람을 만나고 면접을 본다. 그러다 보면 이력서 상의 종교란을 유심히 살피게 된다. 대체로 그 사람이 믿고 있는 종교와 그 사람의 인격은 일치할 때가 많다.
그런데 요즘 이력서들을 보면 왜 그렇게 무교인 사람들이 많은지 모르겠다. 몇 년 전만 해도 불교, 유교, 기독교 등 종교가 있다고 말하는 사람이 많았는데 요즘은 거의 없다고 한다. 이유를 생각해보니 젊은이들이 종교를 가질 기회조차 없이 바쁘게 살아온 것 같다. 영어, 수학 등 시험공부에 온 삶을 걸어 왔던 것은 아닐까. 자신의 인생을 길게 보고 설계할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종교 서적이나 철학 서적들은 읽지 않고 짧은 글과 만화, TV, 스마트폰 등에 시간을 뺏겨 그런 사치스런 생각을 못해 봤다는 젊은이들을 보니 측은해진다. "젊은이여 꿈을 가져라"라는 교훈은 2~30년 전 학교 곳곳에 붙어 있던 표어에 불과해졌다. 꿈을 잃은 젊은 세대가 이젠 종교도 희망도 잃은 세대로 변모해 가는 것 아닌가 걱정이 된다.
불교를 믿는다고 대답한 청년에게 왜 불교를 믿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자 어머니가 계속 절에 다니셨고 자신은 그저 1년에 한 번쯤 절에 가는 것이 전부라고 한다. 불교를 믿는다고 하는 젊은이들이 "불경은 잘 모릅니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과연 이들을 불교 신자라고 할 수 있을까?
유교라고 대답한 사람들은 대개 집안 대대로 제사를 지내고 있어 모두 유교라고 믿고 있다는 답변을 한다. 하지만 "교리는 잘 모르겠습니다"라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심지어 기독교를 믿는다고 대답한 사람 중에는 "제 아내가 교회에 열심히 나가고 있어 저는 그저 따라가고 있습니다"라고 답하는 사람도 있다.
진지하게 하나님을 믿고 교회 청년부에 나간다는 청년, 성당을 다니며 사회봉사를 열심히 한다는 청년도 성경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고 답하는 경우가 많다. 종교를 생활의 잣대로 삼고 종교에 따라 산다고 하는 신념을 가진 사람은 결국 보지 못했다.
이탈리아 관광을 갔을 때의 일이다. 가이드가 성당에 대해 열심히 설명을 한다. 그래서 "선생님은 종교가 무엇입니까?" 하고 물었다. 그러자 "저는 철저한 가톨릭 신자인데 일 년에 세 번 정도 성당에 가서 미사에 참석합니다."라고 답한다. 너무 적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주님은 자비로우셔서 내가 생활이 바빠 성당에 가지 못하는 것을 이해해주시고 용서해 주실 겁니다."라고 말했다.
유럽의 가톨릭 신자 수는 매우 많으나, 성당에는 신자를 찾기 힘들다는 것이 이해가 됐다. 유럽에는 수천 명이 들어갈 수 있는 대규모 성당이 많지만 미사에 참여하는 교인들의 수는 수십 명에 불과할 때가 많다. 가이드에게서 알맞은 답변을 들었다.
기독교인들도 교회에 따라 교인의 색깔이 다른 경우가 많다. 어떤 사람은 오직 순종형이다. 예배에는 절대 빠지지 않고 수요일과 토요일 새벽 예배도 반드시 나간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간혹 지나치게 이기적인 사람이 나타나기도 한다.
70년대 한국에는 기독교인이 매우 적었다. 비록 '예수쟁이'라는 표현을 듣긴 했으나, "예수쟁이는 거짓말을 하지 않고 정직하다"는 사회적 평판과 믿음이 있었다. 그래서 자신은 교회에 나가지 않을지라도 자식들이 교회에 가는 것은 막지 않았다.
'정직하다'는 색깔. 이것이 한국 초대 교회의 색깔이었다. 그러나 이 색깔도 점차 변해왔다. 어느 샌가 '말을 잘 하는 사람'으로 인식되더니 나중에는 '술 안 먹는 사람'으로 변했다. 요즘은 더 심하다. 아예 기독교인의 색깔이 무엇인지 알려고 하질 않는다. 무관심 혹은 가끔 터져 나오는 목회자의 나쁜 행실 소식에 묻혀버리고 있다. 청년들에게 기독교를 알리는 단체들도 힘을 잃어가고 있다.
기독교인의 색깔을 다시 보여주어야 한다. 옛날의 '정직한 사람', '신뢰받는 사람'의 색깔을 되찾아야 한다. 일을 믿고 맡길 수 있는 사람이라는 기독 청년의 색깔을 가지고, 당당하게 "저는 예수 믿는 사람입니다. 귀하의 회사에서 큰 일꾼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할 수 있는 청년들이 이 땅에 가득하기를 소원해본다.
한국유나이티드문화재단 이사장·갈렙바이블아카데미 이사장
[강덕영 장로 칼럼] 기독교인의 색깔
입력 2016-01-20 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