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국의 수도 방콕에서 200여㎞ 떨어진 빡총. 우리나라의 군 소재지에 해당하는 이 지역은 태국의 동북부로 향하는 관문이다. 태국의 서북부는 치앙마이를 중심으로 교회와 선교사, 신학교들이 밀집해있는 반면 동북부는 그야말로 복음의 불모지다. 동북부 26개 도에 있는 교회 수를 모두 합쳐도 치앙마이 1개 도에 소재한 교회의 수에 미치지 못할 정도다. 하지만 7년째 빡총에서 사역하고 있는 김치선(48·쁘라뚜쑤이싼교회) 선교사는 “태국의 동북부 지역은 복음의 불모지가 아닌 황금어장”이라고 강조한다.
17일 신경규 고신대 국제문화선교학과 교수 일행과 함께 방문한 쁘라뚜쑤이싼교회는 김 선교사 가정을 제외하고는 모두 태국인 성도들로 구성돼 있었다. 예배, 찬양, 전도도 태국어로만 진행된다. 7년 전, 빈 예배당에서 김 선교사와 석현정(43) 사모 단둘이 기도하던 교회는 이제 주일학교 10명, 청소년 15명, 장년 45명 규모로 성장했다.
복음의 씨앗은 예상치 못한 한류 바람으로부터 뿌려졌다. 대장금을 필두로 한국 드라마가 시청률 대박 행진을 이어가고 초등학생들부터 청·장년들까지 한국가요(K-POP)를 따라 부르면서 한국어에 대한 관심이 폭발적으로 커진 것이다. 석 사모는 즉시 한국어 교실을 열었다.
“매일 중·고등학교 하교 시간마다 한국어 교육을 진행했어요. 가는 곳마다 불상 천지인 동네에서 십자가가 세워진 한국어 교실이 복음의 불쏘시개가 된 거죠.” 석 사모는 흐뭇하게 웃었다.
한국어 교실을 통해 신앙을 갖게 된 학생들은 김 선교사가 지어준 한국 이름으로 불리는 것을 더 좋아한다. ‘은혜의 강물’을 뜻하는 혜수(22·본명 수티다 인다앰·여)씨도 그 중 하나다. 슈퍼주니어를 좋아하던 혜수씨는 6년 전 한국어를 배우러 교회에 왔다가 삶의 방향이 완전히 바뀌었다. 성경으로 한국어를 배우면서 신앙을 갖고 공부에 재미도 느끼게 돼 덩달아 학업성적도 좋아졌다. 매사에 소극적이던 성격도 바뀌었다.
“변화된 제 모습을 보고 놀란 가족들이 교회와 하나님에 대해 관심을 보이기 시작하더니 지금은 평생을 불상에 절하시던 할머니와 부모님, 제 동생도 십자가 앞에서만 기도해요.”
지난해 부산장신대 신학과에 입학한 혜수씨는 “대학 졸업 후 태국 복음화의 주역이 될 것”이라고 당차게 밝혔다. 한국어 교실 동기인 예진(21·쑤타랏 탓탄촉차이·여)씨와 충만(25·쑤찌뜨라 몽콩락까완·여)씨도 방콕신학교에 진학하며 같은 꿈을 꾸고 있다.
2011년부터는 매년 2월마다 한국어 캠프도 개최한다. 지역의 중·고등학교에서 학업성적이 뛰어난 학생들만 추천받아 150여 명 규모로 1박2일 동안 열리는 캠프는 참가 경쟁이 치열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 캠프 이후 학교장들로부터 한국어 교육 요청이 쇄도하자 석 사모는 내친김에 교원 자격증까지 취득해 정식 교사로서 방과 후 한국어 수업도 맡고 있다.
한국어 교실로 시작된 청소년 대상 사역은 장학금 후원으로 이어지고 있다. 생활여건이 어려운 학생을 선발해 한국교회 성도와 1대1로 결연하면 학교 교육이 중단되는 것을 막을 수 있다. 월 1만원 적립으로 이뤄지는 장학금 후원 사역을 통해 현재 80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고 있다. 김 선교사는 “교육이 중단된 학생일수록 매춘, 마약, 성정체성 문제에 빠질 위험이 높다”며 “청소년들을 성경적 가치관으로 교육하는 것이 태국의 미래를 바꿀 수 있는 최선의 전략”이라고 강조했다.
최근에는 ‘태국의 희망(HOT·Hope of Thailand)'이란 이름으로 복지법인을 등록하는 절차도 최종 승인을 앞두고 있다. ‘성경 공부’ ‘학사 사업’ ‘한국어 교육’ ‘선진농업기술 교육’ ‘직업 교육’ 등이 주요 사역이다. “선교사는 현지를 방문한 손님이 아니라 제자사역을 펼치는 선생님입니다. 학년 당 12명씩 우수한 학생들을 선발해 지적·영적 교육을 진행하고 차세대 기독교 지도자를 키워내는 것이 목표입니다.”
김 선교사의 이 같은 말에 신 교수는 “신자는 많은데 제자는 적은 한국교회의 현실을 돌아보게 되는 현장”이라며 “한국교회도 예배당을 세우는 것보다 예수님의 제자를 세우는 것에 집중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2013년 7월에는 빡총 지역으로부터 북쪽으로 80여㎞ 떨어진 단쿤톳 지역에 단쿤톳서문교회도 개척했다. 단쿤톳 지역도 쁘라뚜쑤이싼교회를 제외하곤 반경 100㎞ 이내에 교회가 한 곳도 없는 복음의 불모지다. 석 사모는 “에베레스트 산을 올라갈 때 베이스캠프가 필요한 것처럼 빡총 지역이 태국 동북부 선교의 베이스캠프가 돼줬다”며 “단쿤톳서문교회가 두 번째 베이스캠프가 되어 복음의 통로를 개척해 나가는 역할을 할 것”이라고 말했다. 빡총(태국)=최기영 기자 ky710@kmib.co.kr
'선교 황금어장' 태국 동북부 복음화 앞장 김치선 선교사
입력 2016-01-19 17: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