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선 레이스 초반만 해도 ‘비현실적인’ 후보라는 비아냥을 들었던 미국 공화당 도널드 트럼프 후보의 기세가 여전하다. 최근 경쟁자 테드 크루즈 상원의원의 급부상에도 불구, 경선이 약 열흘 앞으로 다가온 지금도 콘크리트 지지층을 자랑하며 선두를 유지 중이다. 기존 주류 정치이론으로 쉽게 이해 못할 현상이다.
좀체 흔들리지 않는 트럼프의 지지율에 대해 색다른 분석이 힘을 얻고 있다. 미 정치전문매체 폴리티코는 17일(현지시간) 정치컨설턴트 매튜 맥윌리엄스의 기고글에서 트럼프 지지층을 분석한 결과 ‘권위주의(Authoritarianism)’ 성향이 뚜렷했다고 전했다. 이외 ‘테러에 대한 공포’가 다음으로 큰 공통점으로 관찰됐다.
◇ 계층·나이·성별... 기존 지표 무력화시키는 분석틀 ‘권위주의’
매사추세츠대가 지난달 27일부터 5일간 미 전역 1800명 유권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이번 조사에서 트럼프는 공화당 경선 투표 자격을 지닌 권위주의 성향 유권자의 지지 43%를 확보했다. 전체 공화당 권위주의 성향 지지자로 따져도 37%에 이른다. 기존 주요 지표인 교육수준 소득 나이 성별 이념 등 분류에서는 별 특징이 없었다.
연구가 인용한 ‘권위주의’ 개념은 이 분야 전문가인 마크 J 헤더링턴 밴더빌트대 교수 저서 ‘미국 정치의 권위주의와 포퓰리즘화’에 기초하고 있다. 이 저서에서 헤더링턴 교수는 권위주의 성향 유권자들이 강한 지도자에게 복종하길 좋아한다고 봤다. 외부자에 대해 공격적이며, 위협을 느낄 때 이런 경향이 심해진다. 이념이나 정책 등 여타 주요이슈는 별 영향을 주지 못한다.
이 같은 유권자 성향은 공화당 지지자 뿐 아니라 이념이나 계층 등 다른 조건에 상관없이 나타난다. 1992년 이래 실시된 조사 결과에 따르면 권위주의자들 중 상당수는 스스로를 민주당 지지자로 정의했다.
2008년 대선에서 이들은 버락 오바마 대신 힐러리 클린턴을 택했으나, 최근 14년 동안 공화당으로 점차 이동했다. 미국 사회에서 마이너리티인 흑인에 해당하는 데다 소탈한 이미지인 오바마 대통령에 충분한 ‘권위’를 느끼지 못했기 때문으로 해석될 수 있는 대목이다. 이번 조사 결과 공화당 지지자의 49%는 권위주의적 성향 정도에서 상위 4분의 1 점수를 기록했다. 민주당 지지자의 두 배에 달하는 수치다.
◇ ‘대통령’ 트럼프, 현실이 될지도
이처럼 2000년대 이전까지 비교적 민주 공화 양당에 고루 분포하던 권위주의 성향 유권자들은 현재 공화당에서 ‘대선후보’ 트럼프의 실현 가능성을 높여주고 있다.
같은 이유로 본선에 나가도 트럼프의 경쟁력은 유지된다. 이번 연구에서 무당파 권위주의 성향 유권자 39%가 트럼프의 공약에 반응하며, 민주당 권위주의 성향 유권자 중에서도 17%가 반응할 것으로 예측됐다. 최근 갤럽 조사에 따르면 미 유권자 중 무당파는 전체 40%에 이른다.
트럼프의 가능성에 힘을 실어주는 요소는 또 있다. 권위주의 성향이 아닌 유권자의 경우 테러에 대한 공포에 더 민감하게 반응한다는 점이다. 이번 조사에 따르면 1년 안에 미국에서 또다시 테러가 일어날 것이라고 답한 유권자들 중 52%가 비(非) 권위주의 성향이었다. 트럼프로서는 장래 좋은 공략대상인 셈이다.
◇ 근심 속의 공화당... “정말 되면 어떡하지?”
사실 이 같은 분석은 기존 공화당 출신 정치인들에게서도 나왔다. 공화당 원로인 론 폴 전 하원의원은 지난해 10월 러시아 RT방송과의 인터뷰에서 “트럼프는 스스로가 권위주의자이며 이를 잘 활용하고 있다”고 평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트럼프가 “작은 정부를 지향하는 시장주의자들과 달리 시장을 통제하겠다는 계획을 노골적으로 밝히고 있다”며 “사람들의 위에 군림(boss)하려 한다”고 분석했다. 정책면에서 애초 공화당 노선과 궤를 달리하는 인물이라는 이야기다.
이전 대선에서 오바마 대통령과 맞붙은 바 있는 존 매케인 상원의원 역시 지난해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극단적 발언을 내뱉어도 지지율이 내려가지 않는다”면서 기존 정치권의 계산과 동떨어진 인물이라고 털어놨다.
실제 WP는 지난달 보도에서 공화당 지도부가 앞으로 있을 7월 후보자 지명 전당대회에서 트럼프를 낙마시키려 계획하고 있다고 전한 바 있다. 기성 후보들이 사퇴를 하지 않고 경선을 완주해 트럼프가 지명에 충분한 대의원을 확보하지 못하게 하고, 이로써 경선 결과에 상관없이 대의원 투표로 낙마시키려는 계획이다. 기존 당 노선을 벗어나는 트럼프를 공화당 지도부가 얼마나 탐탁찮게 여기는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이 같은 시선에도 트럼프는 여전히 순항중이다. 가장 최근 발표된 사우스캐롤라이나주 지지율 조사결과에서도 트럼프는 32% 지지를 얻어 18%에 머문 크루즈를 여유 있게 앞섰다.
조효석 기자 promene@kmib.co.kr
트럼프 지지자 하나로 묶는 ‘권위주의의 정치학’
입력 2016-01-18 18:04 수정 2016-01-19 01:5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