험난한 양안 관계와 경제 살리기, 차이잉원을 기다리는 과제들

입력 2016-01-17 16:47

차이잉원의 완벽한 승리다. 국민당은 손을 써볼 수가 없었다.

‘차이완(Chiwan)'이라는 신조어까지 만들어 내며 중국과 밀월 관계를 만들었던 국민당 정권이 8년 만에 막을 내렸다. 1911년 청나라를 무너뜨리고 중화민국을 세운 신해혁명 이후 105년 만에 첫 여성 총통이 등장하는 순간이다. 하지만 오는 5월 총통으로 취임하는 민진당 차이잉원 당선자의 앞에는 험난한 양안 관계와 경제 살리기 과제가 기다리고 있다.

◇역대 최대 득표차, 대선·총선 완전 참패에 국민당 그로기 상태=689만표를 득표한 차이잉원은 국민당 주리룬 후보와 308만표 이상의 차이로 압승을 거뒀다. 대만의 역대 총통선거에서 가장 큰 표차다. 대만 대선의 1, 2위 득표자 간의 표차는 2000년 31만표, 2004년 2만5000표, 2008년 221만표, 2012년 79만표였다. 2008년 대선에서 마잉주 총통이 거뒀던 221만표 차의 대승도 뛰어넘는 수치다.

17일 대만 언론에 따르면 차이잉원은 화롄, 타이둥, 롄장 등 대만 남부와 동부 일부 도시와 진먼섬을 제외하고는 대만 전역에서 주리룬을 압도했다. 주리룬이 현직 시장직을 유지하고 있는 신베이시에서조차도 차이잉원이 승리했다.

입법원(국회) 선거에서는 민진당은 최초로 과반 의석을 차지했다. 민진당은 113석 가운데 68석을 휩쓸어 과반(57석) 의석을 훌쩍 넘겼다. 40석이었던 민진당은 의석수를 28석이나 늘렸다. 반면 64석을 보유하고 있었던 국민당은 처음 다수당 지위를 내려놓고 최소 목표치였던 38석에도 미치지 못하는 35석으로 떨어졌다. 38석은 전체 입법원 의석 113석 가운데 민진당이 법안을 단독 처리할 수 있는 3분의 2 의석을 차지하지 못하게 하는 마지노선이다. 주리룬은 지난 16일 선거 패배 인정 후 국민당 주석직에 대해 사의를 표명했다. 전문가들은 국민당이 새로운 인물을 내놓고 뼈를 깎는 개혁을 하지 않는다면 당분간 국민당이 민진당에 대항하기는 힘들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런 가운데 2014년 ‘해바라기 운동’에서 태동한 정당 ‘시대역량'이 5석을 차지하면서 대만 정치권에 신선한 자극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양안 관계 험로 예고, 차이잉원 태도에 따라 파국 치달을 수도=대만정치대 주리시 강사는 “이번 선거는 결국 친중국 대 친대만, 통일 대 독립의 대결”이라고 정리했다. 그는 “차이잉원이 지금은 ‘현상 유지’라고 모호하게 말하고 있지만 속으로는 독립을 생각하고 있다”면서 “그것이 바로 민진당의 목표이자 이념”이라고 말했다. 선거 기간 부동층 흡수를 위해 본 마음은 최대한 숨겨왔지만 집권 후 본색을 드러낼 수 있다는 분석이다.

중국이 축하 인사를 제쳐두고 외교부와 대(對)대만정책을 담당하는 국무원 대만판공실의 성명을 통해 ‘하나의 중국’ ‘대만 독립 반대’를 강조한 것도 불안감을 반영한 것이라고도 볼 수 있다. 미국은 중국의 압박을 막기 위해 측면 지원에 나서고 있다. 윌리엄 번스 전 국무 차관은 대선 다음날인 17일 바로 대만을 방문했고, 토니 블링큰 미 국무부 부장관은 조만간 베이징을 방문해 중국 대만판공실 관리들과 만날 예정이다. 미국의 메시지는 분명하다. 차이잉원 당선자와 중국이 새로운 관계 정립을 통해 협력할 수 있는 방안을 만들어달라는 것이다.

당장 양안 관계가 급변할 가능성은 현재로서는 높지 않다. 중국은 최소한 5월 20일 총통 취임식 전까지는 과도한 압박은 피하고 ‘지켜보기’ 전략을 구사할 것이라는 게 대체적인 시각이다. 베이징연합대 리정광 교수는 “중국은 차이잉원을 강하게 압박하지는 않을 것”이라면서 “다만 차이잉원이 중국과의 대화를 서두르고 중국이 받아들일 만한 양안 관계 공식을 들고 나와야 한다는 전제가 있다”고 말했다.

◇경제 살리기 과제, 중국 아닌 미국 등으로 시장 확대 나설 듯=이번 선거의 가장 큰 특징은 국민당 정권 8년의 경제 실패에 대한 국민의 응징으로 볼 수 있다. 지난 8년간 마잉주 정부는 친중정책을 통해 경제의 활로를 찾고 싶었지만 중국에 대한 경제 종속만 심화됐다. 더욱이 10년째 실질 임금이 거의 오르지 않는 등 민생 경제만 피폐해졌다.

대만과 중국 사이에는 2012년 9월 12일 양안경제협력기본협정(ECFA)이 발효됐지만 후속 협정인 양안서비스협정은 아직 비준을 받지 못했다. 그러는 사이 한국은 중국과 자유무역협정을 체결해 대만에 충격을 줬다. 민진당이 집권하면서 ECFA 협정에 대한 국민당과의 입장 차이로 인해 앞으로 협상 진행 속도와 방향이 달라질 가능성이 높다.

민진당 정권이 활로를 찾고 있는 곳은 바로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가입과 미국·일본 등과의 경제 협력 관계 구축이다. 무역 부문에서 미국과 가장 큰 문제는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 문제다. 현재 대만은 육질 개선용 사료 첨가제가 함유된 미국산 돼지고기 수입을 금지하고 있다. 대만 언론들은 민진당 정권이 들어서면 수입 금지 조치가 해제될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중국과의 관계가 최악의 상황이 되면 대만에 대한 중국의 경제 제재나 관광객 중단 등의 조치들이 취해질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대만에서는 일본과 미국이 대안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기시다 후미오 일본 외무상은 대만 선거가 끝나자마자 담화를 통해 “차이잉원 주석의 당선을 축하한다”며 “대만은 기본적 가치관을 공유하는 소중한 친구”라고 밝혔다.

타이베이=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