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대부터 60대까지 세대를 아우르며 가슴 뛰게 했던 tvN 드라마 ‘응답하라 1988'(응팔)이 16일 막을 내렸다. 가난해도 애틋한 가족, 충만한 우정, 좁은 골목길을 오가며 일상을 나눴던 이웃들의 끈끈한 정, 아련한 첫사랑…. 응팔은 삶의 언저리로 밀려난 소중한 가치들을 다시금 밝혀냈다. 그리고 경쟁사회에 매몰된 많은 이들을 각성케 했다.
‘국민 드라마’라 불릴 정도로 인기를 누렸지만 스타 캐스팅이 없었다. 오로지 극본과 연출력으로 승부해 무명 배우들을 대거 발굴해냈다. 케이블 TV 드라마 시청률 신기록까지 세웠다. 복고 열풍을 일으키며 사회적으로도 상당한 영향을 미쳤다. 후반부 ‘덕선의 남편 찾기’에서 길을 잃은 것은 크게 아쉬운 대목이다. 그럼에도 쉽게 사그라지지 않을 응팔의 여운을 짚어봤다.
◇골목길을 꽉 채운 정(情)=시청자들이 응답한 것은 1980년대가 아니었다. 제작진도 시청자들도 80년대의 시대적 아픔과 가난이 빚어낸 슬픔을 모르는 게 아니다. 그럼에도 응팔이 그리는 그 시절은 그리워할만한 모습이었다. 무엇보다 마을 공동체의 연대 의식은 강한 향수를 불러 일으켰다.
응팔에서는 등장인물들이 남녀노소 가리지 않고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수다를 떨고, 고민을 이야기 하고, 함께 한숨짓거나 웃는 모습이 자주 등장했다. 소소한 일상이 중요한 이야깃거리였다. 하지만 이들이 이웃과 함께하는 모습은 지금 우리 사회와 비교하면 일상보다 판타지에 가깝다.
서울 쌍문동 봉황당 골목길의 이웃들은 서로를 아끼고, 존중하고, 도우며, 삶을 함께 나눴다. 이웃의 삶에 성큼 들어가면서도 무례하지 않을 정도로 선을 지켰다. 그 모든 게 골목길을 오가며 이뤄졌다. 수천 세대가 함께 사는 아파트 단지에서 눈인사조차 나누지 않고, 고독사한 20대가 몇 달 만에 발견되고, 지하철에서 사소한 자리다툼으로 거친 말을 주고받는 요즘의 세태와는 전혀 다르다.
◇쌍문동 봉황당 골목 사람들=성동일, 이일화, 김성균, 라미란, 최무성, 김선영, 류재명, 정봉(안재홍), 보라(류혜영), 덕선(혜리), 택(박보검), 정환(류준열), 선우(고경표), 동룡(이동휘), 노을(최성원)…. 봉황당 골목길에 활기를 불어 넣은 이들은 대부분 무명이었다. 류준열처럼 TV 출연이 처음인 배우도 있었다. 그럼에도 모든 배우들이 주연급 연기를 펼치며 매력적인 캐릭터를 보여줬다. 무명 배우들의 발견이었다.
혜리는 13개가 넘는 광고로 60억원 정도 매출을 올린 것으로 알려졌다. 모델료도 배 가까이 올랐다. 박보검(10개), 안재홍(9개), 라미란(6개), 이동휘(4개), 류준열(3개) 등도 광고계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스타가 한 명도 나오지 않았지만 마지막회 시청률은 19.6%를 찍었다. 케이블 TV 사상 최고 시청률로 기록됐다. 평균 시청률은 18.8%였다. 제작비는 60억~70억 정도 들었지만 각종 광고와 VOD 매출이 221억원 정도로 계산된다고 tvN은 밝혔다. 150억원 이상의 수익이 나온 것이다.
◇우리가 원한 건 ‘그래서 행복하게 살았다’는 결말=응팔이 종영한 16일부터 공식 홈페이지 시청자 게시판과 SNS 등에서는 결말에 대한 성토가 격하게 이어졌다. 덕선의 남편으로 유력했던 정환이의 미미해진 존재감, 택이를 남편으로 그리며 개연성을 잃은 극 전개에 대한 지적이 대부분이다. 정봉과 동룡의 미래가 제대로 나오지 않은 점도 반발을 샀다.
80년대 태어나지도 않았거나 어렴풋한 기억만 남아있는 젊은 시청자들의 배신감은 더 컸다. 이들은 응팔을 보며 80년대를 추억하지 않았다. 쌍문동 골목길을 흐르는 정, 각자의 성적이나 부모의 경제력과 무관하게 우정을 나눌 수 있는 친구들, 공부를 못해도 삶에서 행복을 찾을 줄 알았던 주인공들에게 깊이 있게 감정이입을 했다. 누구 하나 하찮게 다뤄져서는 안 된다는 마음이 컸다.
‘어남류’(어차피 남편은 류준열)를 밀었던 팬들은 정환이 6년 넘게 덕선을 좋아하며 앓았던 시간들이 농담처럼 건넨 고백으로 끝났다는 데 분노하기까지 했다. 고백 이후 정환의 감정선을 충분히 그려주지 않고 새로운 사랑도 찾아주지 않았다며 제작진을 향한 비판을 쏟아냈다. ‘어남택’(어차피 남편은 택)을 지지했던 팬들 사이에서도 개연성이 떨어진다는 지적이 나왔다.
시청자들은 등장인물 하나하나에 깊은 애정을 갖고 이들의 소소한 일상에 공감해왔다. 응팔이 다소 촌스러운 소재로 깊은 공감을 얻어낸 만큼 자극적인 반전이나 열린 결말보다 다소 촌스러울지언정 완벽한 해피엔딩을 원했던 것이다.
문수정 기자 thursday@kmib.co.kr
골목길의 가치 일깨운 '응답하라 1988'…길 잃은 로맨스로 결말 성토 이어져
입력 2016-01-17 16: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