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옥 독방조차 그에겐 사색의 공간이었다. 지난 15일 세상을 떠난 신영복 성공회대학교 석좌교수는 자신의 죽음을 어떻게 사색했을까? 가까이에서 임종을 지켜본 사람들에 따르면, 신 교수는 죽음을 받아들이면서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을 정리했다.
지난 16일 신 교수의 빈소가 차려진 성공회대에서 만난 출판사 돌베개의 한철희 대표는 “교수님은 집에서 죽음을 맞고자 하셨다”며 “본인이 원하는 대로 죽음을 맞으셨다”고 말했다.
신 교수는 지난 2014년 말 암 진단을 받았다. 처음엔 갑상선 문제 정도로 알고 있었으나 정밀 진단 결과, 피부암으로 확인됐다. 폐의 피부에 종양이 생긴 것으로 동양인에게는 희귀한 암이다. 암 진단 이후 신 교수는 신약 실험 그룹에 참여하는 등 치료에 적극 나섰고, 상태가 호전되기도 했다. 그러나 작년 10월쯤부터 상황이 절망적으로 변했다. 살 날이 얼마 남지 않았다고 판단한 것인지 신 교수는 그 뒤로 병원을 나와 집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올 들어서는 모든 치료를 끊고 조용히 죽음을 맞이했다.
“돌아가시는 날까지도 의식이 있으셨다. 고통스러워하지 않으시고 편안히 가셨다.” 신 교수의 제자로 임종을 지켜봤다는 공연연출가 탁현민씨는 이렇게 전했다. 신 교수는 자신의 장례식에 대해서도 제자들과 상의해 결정했다. 임종 며칠 전 찾아온 제자들이 학교장이 어떻겠느냐고 말씀드리자 “그렇게 하는 게 좋겠다”고 대답했다.
장례식은 18일 오전 11시 성공회대 학교장으로 치러진다. 방송인 김제동씨가 장례식 사회를 보며, 가수 정태춘씨가 추모곡을 부른다. 시신은 화장하고 유해는 성공회대 교정에 있는 나무에 뿌려진다.
성공회대는 장례식 이후 ‘신영복 기념관’(가칭)을 조성할 예정이다. 장례식 대변인을 맡은 김창남 성공회대 교수는 “신 교수님은 우리 학교의 발전에 많은 역할을 하신 분”이라며 “장례식 이후 기념사업을 어떻게 할지 본격적으로 고민해야 되겠지만 우선 기념관을 짓자는 의견은 모아진 상태”라고 말했다.
성공회대 성미가엘 성당에 차려진 신 교수 빈소에는 많은 시민들이 찾아와 조문했다. 16일 하루에만 2500여명이 다녀갔으며, 박원순 서울시장, 안철수 국민의당 의원, 안희정 충남지사,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 이재정 경기도 교육감, 유홍준 전 문화재청장, 유시민 전 보건복지부 장관, 이창동 전 문화부 장관, 노회찬 전 의원, 백기완 통일문제연구소장 등 각계 인사들이 조문했다.
빈소 옆 건물에서는 ‘고 우이 신영복 석좌교수 추모전시회’가 자그맣게 열리고 있다. 고인의 글씨와 책들을 생전의 영상과 함께 만날 수 있다. 17일 저녁 7시30분에는 교내 피츠버그홀에서 ‘신영복 추모의 밤’ 행사도 열렸다.
신 교수는 20년 20일을 감옥에서 보내고, 27년 5개월을 자유인으로 더 산 뒤 세상을 떠났다. 향년 75세였다. 육군사관학교 경제학 교수를 하던 1968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무기징역형을 받았으며, 1988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고 1998년 사면복권됐다. 1989년부터 성공회대에서 정치경제학, 사회과학입문, 중국고전강독 등을 강의했고, 2006년 정년퇴임 후에도 2014년까지 석좌교수 자격으로 강의를 해왔다.
신 교수는 빼어난 문장가이자 동양고전학자, 서예가로도 유명했다. 감옥에서 쓴 편지를 모아 엮은 ‘감옥으로부터의 사색’은 1988년 출간된 후 시대의 고전으로 자리 잡았으며, ‘처음처럼’ ‘나무야 나무야’ ‘더불어 숲’ ‘강의’ ‘담론’ 등 내는 책마다 독자들의 사랑을 받으며 베스트셀러가 됐다. 한글 서예로도 일가를 이뤘으며, ‘어깨동무체’로 명명된 그의 글씨는 ‘처음처럼’(소주) 등 여러 브랜드에 사용되기도 했다. 돌베개는 다음 달 ‘처음처럼’ 개정판을 발간한다.
김남중 기자 njkim@kmib.co.kr
죽음을 받아들이며 조용하고 편안하게 삶을 정리한 신영복교수
입력 2016-01-17 14:3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