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교과서 맞아?”...국제용어 등장하고 南·美 비방 문제풀이 사라지고

입력 2016-01-17 12:55

북한이 2013년 발표한 초·중등학교 교육과정과 이듬해인 2014년부터 쓰기 시작한 새 교과서에서는 이전과는 다른 정책 변화가 확연히 드러난다.

북한은 2012년 9월 11년이던 기존의 의무교육제를 12년으로 변경하는 법령을 발표했고 이후 새 교육과정과 교과서를 전면 개편했다. 이 법령은 김정은 체제 출범 이후의 첫 공식 법령이었다.

17일 한국교육개발원 김정원 통일교육연구실 실장 등이 '북한 초·중등 교육과정 및 교과서 정책 변화 방향' 논문에서 분석한 내용을 보면 개편 교육과정과 교과서의 가장 큰 특징은 초·중등교육 전체에서 지도자 관련 과목과 수업 시간수가 늘어난 점이다.

기존 교육과정에는 지도자 관련 정치사상 교과목으로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어린시절'(소학교)과 '위대한 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활동'(초급중학교), '위대한수령 김일성대원수님 혁명력사'(고급중학교) 과목이 있었고 김정일과 김정숙(김일성의 부인)에 대해서도 같은 형태의 교과목이 있었다.

여기에 김정은에 대해서도 똑같은 형태로 각급 학교별로 교과목이 추가됐다. 이들 과목은 소학교부터 고급중학교까지 학년마다 일주일에 한 시간씩 수업을 하게 돼 있다. 지도자 관련 과목만 한 학년당 1주일에 4시간을 배우는 셈이다.

또 다른 특징은 국제교류를 의식해 이념보다는 실리를 추구하는 경향이 발견된다는 것이다.

북한은 미국에 대해 여전히 강한 적개심을 드러내고 있지만 새 교육과정에서는 영어 교육을 강화한 점이 뚜렷이 드러난다.

영어는 2007년부터 소학교 교육과정에 포함돼 있었으나 지금까지는 '외국어'라는 교과목으로 교육이 이뤄졌다.

새 교육과정에서는 이를 '영어'로 특화하고 수업시간도 늘렸다. 영어 교육 시점은 이전 교육과정의 소학년 3학년에서 소학교 4학년으로 1년 늦춰졌다. 대신 소학교 3∼4학년에서 주당 1시간씩 가르치던 것을 4∼5학년에 주당 2시간씩 하는 것으로 늘렸다.

초급중학교에서도 역시 1학년은 주당 4시간, 2∼3학년에서는 3시간씩 배우던 것을 전 학년에서 주당 4시간으로 수업시간수가 증가했다. 고급중학교에서는 영어의 주당 수업시수가 '국어문학'보다 많았다.

국제적 색채가 가미된 것도 특이점이다. '조선력사' 교과서에서 기존에 북한의 사상적 토대에서는 쓰지 않던 B.C.(기원전)이나 A.D.(서기) 같은 국제적 용어들이 처음 등장한 것이다.

이는 영어 강조와 함께 북한의 교육과정과 교과서 개편이 국제적 기준을 따라가며 이념보다 실리를 추구하는 방향으로 이뤄졌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분석됐다.

'법'을 중시하는 사회 분위기도 발견된다. 기존에는 초·중등과정에서 '사회주의 도덕'이란 과목이 있었지만 새 교육과정에서는 고급중학교 과목 이름이 '사회주의도덕과 법'으로 바뀌었다.

의무교육과정에 '법'과 관련한 교과목이 포함됐다는 것은 북한 사회가 '법'을 강조하는 사회로 변화하고 있고 기존의 사회 질서가 흔들리면서 지도자의 교시가 갖는 힘이 예전과는 같지 않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으로 논문은 분석했다.

'군사초보활동' 과목의 신설 역시 눈에 띈다. 이 과목은 고급중학교 2학년과 3학년에서 각각 한 주씩 집중적으로 이수하도록 돼 있다.

논문은 교육과정 개편 때 의무교육을 11년에서 12년으로 늘리면서 상대적으로 나타나게 될 군사력 부족 문제와 연계된 것으로 분석했다.

교과서의 이념적인 색채는 많이 줄어들었다.

가령 기존 수학교과서에는 '남조선의 학교에 다닐 어린이가 14명 있습니다. 학교에 다니는 어린이는 5명입니다. 학교에 다니지 못하는 어린이는 몇 명입니까', '인민군대 아저씨들이 미제 승냥이놈의 비행기를 8대 떨구었습니다. 또 몇대 떨구었습니다. 모두 14대 떨구었습니다. 두 번째에 몇 대 떨구었습니까'라는 식의 문제들이 등장했다.

풀이 과정을 통해 미국에 대한 적개심, 한국사회에 대한 왜곡된 의식을 키울 수 있는 문제들이었지만 새로운 수학 교과서에는 이런 종류의 문제가 발견되지 않았다.

소학교 '사회주의 도덕' 교과서에서도 지도자 숭배를 제외한 정치적 색채를 띤 내용은 거의 사라졌다. 이 교과서에서 정치사상적 요소가 가미된 내용은 삽화 한 개뿐이었다.

물론 지도자 숭배 내용 관련 내용은 여전히 다양하게 등장하며 지도자 홍보 수식어의 비중도 늘어났다.

2007년 수학교과서에는 '김정일화(花)화분이 12개 있었는데 새로 4개를 더 가져오면 모두 몇 개냐'는 식의 문제가 등장했다면 2013년 수학교과서에는 '경애하는 김정은 원수님의 사랑 속에 훌륭히 꾸려진 공원에서 어린이들이 로라스케트(롤러스케이트)를 탄다. 7명이 집으로 갔는데 아직 52명이 있다면 처음에 몇 명이 타고 있었을까'라는 식으로 문제와 상관없는 지도자 관련 내용이 길게 나타난다.

이밖에 과거 역사교과서에서는 역사교육의 목표를 '조선사람으로서의 자랑과 긍지'를 지닐 수 있도록 하는데 뒀다.

2013년 교과서에서는 '우리민족의 력사(역사)를 잘 알고 창조적 능력을 키우는데 두고 있다'고 명시해 역사교육 초점이 역사적 지식을 아는 쪽으로 변화하는 것으로 분석됐다.

연구진은 "북한 교육과정과 교과서 정책은 지도자 우상화 정책 강화 경향을 제외하면 남한과의 유사성이 점차 확대되는 방향으로 변하고 있다"면서 "향후 교육분야 통일 대비 논의는 이에 대한 이해를 토대로 진행돼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김영석 기자 yskim@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