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 첫 여성총통 차이잉원… 부드럽지만 단호한 카리스마

입력 2016-01-16 20:26 수정 2016-01-16 21:23

민진당 차이잉원(蔡英文·59) 총통 후보가 대만 사상 최초의 여성 총통으로 등극하게 됐다. 민진당에 입당한 지 11년 밖에 되지 않는 여성 정치인이 ‘부드럽지만 단호한’ 리더십으로 대만에서 새로운 역사를 쓰는 주인공이 됐다.

◇첩의 자식이지만 부유했던 집안=차이잉원은 고대 중국 실향민인 객가인(客家人)과 대만 원주민의 혈통을 갖고 있다. 그의 할아버지는 대만 남부 핑둥현 펑강촌에 자리잡고 있던 객가인이고 할머니는 남부 고산지대에 분포하는 원주민인 파이완족의 후예다. 최근 대만 주간지 ‘상업주간’에 따르면 차이잉원의 아버지 차이제성은 4명의 부인 사이에서 11명의 자녀를 뒀다. 차이잉원은 11명의 자녀 중 막내로 아버지의 사랑과 관심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언론인 출신의 저술가 저우위커우는 차이잉원의 어머니 장진펑이 5번째 부인이라고 주장했지만 차이잉원 가족들은 아직 확인을 하지 않고 있다. 집안 족보 규정에 따르면 이름은 같은 발음인 ‘차이잉원(蔡瀛文)’으로 해야 하지만 아버지가 ‘瀛'자의 획수가 너무 많다며 ‘英'로 정했다고 한다.

아버지 차이제성은 18세 때 일본군 징집을 피해 중국으로 건너가 둥베이기계학교에서 비행기 정비를 배웠고, 일본 패망 후 대만으로 돌아와 화물운송업을 거쳐 타이베이에서 자동차정비공장을 시작했다. 특히 대만 주둔 미군과 외국인을 상대로 외제차 정비를 전문으로 했다. 이후 부동산, 건축업, 호텔 등으로 사업을 확장해 큰 돈을 벌었다. 2011년 12월 중앙선거위에 신고한 차이잉원의 재산 상황을 보면 본인 명의로 토지 4필지와 건물 2채를 소유하고 1800만 대만달러(약 6억5200만원)의 예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화려한 학력 그리고 정치적 은인 천수이볜=차이잉원은 한때 아버지의 고향인 대만 남부 핑둥현에서 태어나 11세때 타이베이로 넘어왔다는 얘기가 있었지만 지금은 출생지가 타이베이 중산구로 소개되고 있다. 아버지는 기업 경영을 위해 차이잉원이 법률 공부하기를 원했고, 때문에 차이잉원은 대학입학시험에서 1지망으로 국립 대만대 법학과를 선택했다. 1978년 대만대 법대를 졸업한 뒤 80년 미국 코넬대에서 법학석사, 84년 영국 런던정경대(LSE)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미국 변호사 자격에 이어 97년에는 대만 변호사 자격까지 취득했다.

박사학위를 받고 대만에 귀국하자마자 국립정치대 법학과 부교수(84~90년)를 시작으로 둥우대학 국제무역연구소와 법학과 교수(91~93년)를 거쳐 다시 국립정치대 국제무역과 교수(93~2000년)를 지냈다. 국민당 소속 리덩후이 전 총통 시절 대학교수를 하며 행정원 경제부 국제경제조직 법률 고문 등으로 활동하며 대만의 세계무역기구(WTO) 가입 등 굵직한 현안에 기여했다. 1999년 리덩후이 전 총통이 양안관계를 ‘특수한 국가와 국가' 사이라고 새롭게 정리해 발표한 ‘양국론(兩國論)’ 입안에 깊숙이 관여했다.

◇학자에서 정치인으로 승승장구=민진당 천수이볜 정권 시절이던 2000년 양안관계 사무를 맡는 대륙위원회 주임위원을 맡으며 처음 학계를 떠났다. 당시 민진당 당적도 없었다. 대륙위 주임 시절 중국과 소삼통(小三通:통항·교역·우편거래)을 성사시키며 양안관계 개선에 적극적이었다. 4년 뒤 2004년 민진당 가입과 함께 총선에 출마하면서 본격적으로 정치에 뛰어들게 된다. 민진당의 비례대표 순위 6번으로 입법위원 배지를 다는 데 성공했다. 2006년 1월에는 당내 거물로 클 수 있는 발판이 된 행정원 부원장에 올랐다. 천수이볜은 차이잉원을 여성 지도자로 키우고 싶어 하는 든든한 후원자였다. 2008년 대선에서 민진당 정권이 천수이볜의 부패 스캔들로 막을 내리자 차이잉원은 민진당 주석에 당선돼 위기에 빠진 당을 수습했다. 2010년 11월 치러진 지방선거에서 신베이시 초대시장을 노렸지만 이번 총통선거에서 맞붙은 국민당 주리룬 후보에 석패했다. 이어 2012년 1월 총통선거에서 재선 도전에 나선 마잉주 총통과 겨뤘지만 초반의 우세를 이어가지 못하고 다시 고배를 마셨다. 대선 패배의 책임을 지고 당 주석에서 물러난 차이잉원은 백의종군하다 결국에는 구원투수로서 2014년 당주석에 복귀했다. 그해 11월 총통 선거의 전초전으로 치러진 통일 지방선거에서 민진당을 압승으로 이끌면서 다시 한번 ‘선거의 여왕’이라는 명성을 이어갔다. 이를 토대로 ‘대선 재수’의 기회를 얻었고 마침내 대만 최초의 여성 총통을 차지하게 됐다.

◇부드러운 카리스마, 동성애자 옹호=드라마틱한 정치적 성공사와는 별개로 그는 평소 조용하고 언론 앞에 나서는 것을 수줍어하는 성격을 가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겉으로는 부드러워 보이지만 자신이 확신하는 것에 대해서는 타협이 없는 성격이다. 캠프 관계자들은 “선거 기간 아주 적극적이고 친근감 있는 모습으로 캠프 안에서도 인기가 좋다”고 전한다. 대만 언론들은 이런 그의 성품이 첩으로 살았던 어머니로부터 물려받은 것이라고 전했다. 반대파들은 차이이원을 ‘쿵신차이(空心蔡)’로 부른다. 항상 “애매모호한 태도를 취해 속을 알 수 없다”면서 속이 빈 채소로 중국 요리에서 많이 쓰이는 ‘쿵신차이(空心菜)'에 빗대서 하는 말이다.

차이잉원은 아직 미혼이다. 미국 유학시절 남자친구가 있었지만 이 남성이 교통사고로 숨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이후 많은 나이에도 불구하고 독신 생활을 이어가자 동성연애자라는 소문도 돌고 있다. 별다른 화장을 하지 않은 채 단발머리에 검정 머리인 차이잉원은 스밍더 전 민진당 주석으로부터 “레즈비언이 아니냐”는 질문을 받기도 했다. 차이잉원은 이런 의혹에 직접 답을 한 적은 없지만 동성애와 동성결혼에는 찬성한다는 입장을 취하고 있다. 지난해 칠석(七夕·음력 7월7일)이었던 8월 20일 “세상의 모든 사랑하는 사람들을 축하하며 기념일을 잘 보내라”는 제목의 동영상을 공식 사이트에 공개하기도 했다. 차분한 성품과 달리 자동차 드라이브가 취미다. 차이잉원은 타이베이에서 정부 회의가 열리는 핑둥까지 400㎞를 혼자서 운전하고 간 적도 있다.

타이베이=맹경환 특파원 khmae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