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년 만의 귀국 이강욱 작가 ‘신세계’를 발견하다 아라리오갤러리 3월6일까지 '역설적 공간' 신작 개인전

입력 2016-01-10 17:13 수정 2016-01-10 17:30
이강욱, The Gesture-15031, Mixed Media on Canvas, 90 x 90cm, 2015/ 아라리오갤러리 제공
작품 앞에서 포즈를 취한 이강욱 작가
이강욱, The Gesture-15024, Mixed Media on Canvas, 80 x 130cm, 2015
이강욱, 무제-15018(Untitled-15018), Mixed Media on Canvas, 160 x 250cm, 2015, detail
이강욱, The Gesture-15020, Mixed Media on Canvas, 162 x 227cm, 2015, detail
‘신세계’란 이런 것인가. 붓질이 더욱 단단해지고 내면이 훨씬 깊어졌다. 무엇이 그를 이렇게 한 단계 뛰어오르게 한 것일까. 추상회화 작업을 꾸준히 해온 이강욱 작가가 7년 만에 돌아왔다. 서울 종로 북촌로에 있는 아라리오 갤러리에서 개인전 ‘역설적 공간: 신세계’를 펼쳐 보인다. 지하 1층과 지상 1·2층 전시공간에 원과 점, 선과 면 등 다양한 형태로 이어진 작품 16점을 걸었다.

‘하늘의 운명을 안다’는 마흔 살에 접어들고 15년째 작가 생활을 계속하는 그는 젊은 시절 국내 미술시장의 스타작가였다. 여섯 살 때 그림을 그리기 시작해 홍익대와 대학원에서 회화과를 졸업하고 2001년 대한민국회화대전 대상, 2002년 동아미술제 동아미술상, 중앙미술대전 대상, 2003년 송은미술대상 지원상 등 국내 권위 있는 공모전을 휩쓸었다. ‘보이지 않는 우주’ 그림도 잘 팔렸다.

그러던 중 2009년 홀연히 영국 유학길에 올랐다. ‘라이징 스타’로 부상한 그로서는 과감한 도전이었다. 엇비슷한 작품을 매일같이 찍어내는 것 같다는 작가적 반성에서 모든 것을 내려놓고 독하게 마음먹고 유학을 결행했다. 런던 첼시 칼리지에서 석사학위를 마치고 2015년에는 이스트 런던 유니버시티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현재 런던과 한국을 오가며 왕성하게 활동 중이다.

유학 도중 중간 중간에 전시회를 열기도 했다. 이우환 박서보 등 단색화 계열의 국내 거장들을 초대한 유서 깊은 동경화랑 초대전에서 호평 받았고 싱가포르에서 가진 개인전에서는 출품작이 매진되는 등 인기를 얻었다. 천재는 천재를 알아보고 선수는 선수를 알아보는 법. 세계 100대 컬렉터이자 아라리오뮤지엄을 설립한 김창일 회장이 그에게 러브콜을 보냈다.

지난해 영국에서 돌아온 이강욱은 서울과 천안, 중국 상하이에 갤러리를 둔 아라리오 갤러리의 전속작가가 됐다. “될성부른 떡잎은 5초 만에 알아 본다”는 김창일 회장의 안목에 따른 선택이다. 금의환향(錦衣還鄕)인 셈이다. 예쁜 꽃그림의 구상과 사진 같은 극사실주의 작품이 판을 치던 시절, 젊은 작가로는 드물게 추상에 매달린 노력이 헛되지 않았음을 입증하고 있다.

7.5m 크기의 대형 ‘지오메트릭 폼(Geometric Form)’ 시리즈가 눈길을 끈다. 멀리서 보면 크고 작은 원이지만 가까이 다가서면 여러 형태가 연결돼 생동감 있는 새로운 공간을 만들어 내고 있다. 또 다른 작품 ‘제스처(gesture)’ 시리즈는 흑과 백, 푸르고 붉은 다채로운 색채를 배경으로 물감을 문지르거나 입으로 불어 생긴 번짐과 뚝하고 떨어뜨린 듯한 자국이 캔버스에 퍼져 있다.

작가는 런던에서 공부하면서 “회화는 무엇이고 나는 왜 그림을 그리고 있느냐는 기초적인 질문을 스스로 많이 던졌다”고 한다. 이전에는 작업을 왜 하는지, 내용이 무엇인지 등의 서브젝트가 중요했다면 지금은 상대적 개념들은 차이가 있는 게 아니라 일관적인 이미지가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는 것이다. 깨달음은 고대 힌두 철학의 텍스트인 우파니샤드에 몰입하면서 비롯됐다.

그는 “보편성과 개별성, 미시적 공간과 거시적 공간 등 수없이 많은 우주의 대립적 요소들이 역설적으로 서로 닮아있을 뿐 아니라 궁극적으로 하나로 연결될 가능성을 지님을 발견했다”고 했다. 회화에 대한 의문과 관심은 행위로 드러났다. 화이트를 기반으로 한 여러 색상들은 색으로서 존재하기보다 하나의 개별적인 톤으로 자리했다.

물감을 스펀지로 밀고 닦고 뿌리고 이미지를 그리는 등 수없이 많은 반복적 행위를 했다. 아리리오 갤러리는 “미시 세계와 거시 세계라는 상반된 공간 개념을 하나의 평면 위에 공존시키는 가상공간을 통해 독자적 작품세계를 구축했다”며 “반복적 제스처와 기하학적 형상들로 구성된 그의 작품은 한국 단색화를 계승하는 새로운 추상회화의 가능성을 제시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미술비평가 정연심 홍익대 교수는 “극도의 노동을 요하는 세밀화처럼 보이지만 신추상의 세계”라며 “하지만 국내외의 추상 화가들이 대부분 ‘주제의 배제’라는 명목으로 스토리를 제거하였던 역사적 맥락과는 상반된 부분”이라고 평했다. 작가의 신추상은 우연한 감정의 울림을 표현한 게 아니라 마치 글을 써내려가듯 독백조의 이야기가 리듬을 따라 자리 잡은 ‘회화적 공간’이라는 것이다.

신작 ‘제스처’는 하나의 점과 색면의 융합으로 ‘스밈과 우러남’을 돋보이게 했다. 스펀지로 살짝 찍어낸 옅은 색면과 수많은 점들이 박힌 화면은 옹기종기 모여앉아 두런두런 얘기 나누는 한국인의 정서와 닿아 있다. 이는 한국만의 고유한 특성을 지닌 단색화의 맥을 잇는 작업이기도 하다. 그가 앞으로 펼쳐 보일 또 다른 ‘신세계’는 어떠할지 궁금해진다. 전시는 3월 6일까지(02-541-5701).

이광형 문화전문기자 ghlee@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