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배우 백성희 타계, 70년 넘게 무대에 선 '영원한 국립극단 단원'

입력 2016-01-09 11:00 수정 2016-01-09 11:03

한국 연극계를 대표하는 여배우이자 국립극단 원로단원인 백성희 선생이 8일 노환으로 타계했다. 향년 91세.

본명이 이어순이(李於順伊)인 고인은 1925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어린 시절 일본에서 유학갔던 외삼촌이 가져온 다카라즈카 소녀가무단 팸플릿을 보면서 배우를 꿈꾸게 됐다. 동덕여고 시절 가극단이 함께 운영되던 빅터무용연구소 연구생으로 몰래 들어간 뒤 졸업 후 단원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943년 극단 현대극장 단원으로 입단해 ‘봉선화’로 데뷔한 이후 연극 한 길만을 걸어왔다.

현대극장을 비롯해 낙랑극회, 신협에서 활동한 고인은 1950년 국립극단 창립 단원으로 합류했다. 1972년 국립극단 사상 최초로 시행된 단장 직선제에서 최연소 여성 국립극단 단장으로 선출됐다. 당시 리더십을 인정받아 1991년 다시 한 번 국립극단 단장에 추대됐다. 그리고 1998년부터 국립극단 원로단원에 선임됐고, 2011년에는 국내 최초로 배우의 이름을 딴 극장인 ‘백성희장민호극장’의 주인공이 되었다. 고인은 “작품은 가려서 선택하지만 배역은 가리지 않는다”는 신조 아래 평생 약 400여 편의 연극에서 다양한 역할을 맡았다.

대표작으로 ‘봉선화’(1943), ‘뇌우’(1950), ‘나도 인간이 되련다’(1953), ‘씨라노 드 벨쥬락’(1958), ‘베니스의 상인’(1964), ‘만선’(1964), ‘달집’(1971), ‘무녀도’(1979),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1981), ‘메디아’(1989), ‘강 건너 저편에’(2002), ‘3월의 눈’(2011) 등이 있다. 2013년까지 ‘3월의 눈’(2013)과 ‘바냐아저씨’(2013)에 출연했지만 이후 건강이 악화돼 요양병원에 입원해 있다가 지난 8일 밤 11시18분 별세했다.

자신의 운명을 예감한 듯 고인은 지난해 후배들의 도움을 얻어 지난 12월 15일 회고록 ‘백성희의 삷과 연극-연극의 정석’을 발간했다. 김남석 부경대 교수가 지난해 4월부터 고인의 인터뷰와 구술 채록, 과거 인터뷰 분석 등을 통해 정리했다. 연기 입문 계기부터 국립극단 단원 시절, 한국 연극에 대한 제언 등 백씨의 연극인생이 640페이지에 담겨 있다. 김 교수와 고인의 대담을 비롯해 평론가 서연호, 연극배우 김금지, 연출가 임영웅 등 연극계 명사 5인의 인터뷰도 담았다.

국립극단은 지난 12월 22일 고인의 회고록 발간에 맞춰 연극인 심포지엄 ‘국립극단 65년과 백성희’를 개최하기도 했다. 회고록 출간기념회를 겸한 이 자리는 배우 손숙과 남명렬이 사회를 맡고 배우 박정자, 박상규, 김소희와 김남석 교수가 패널로 참여했다.

한편 고인의 빈소는 서울 송파구 서울아산병원 장례식장 2호실이며, 발인은 오는 12일 오전(시간 미정)이며, 장지는 분당메모리얼파크다.

장지영 기자 jyjang@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