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은 현대인이 달고 사는 위장질환의 가장 큰 원인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그런데 세계 인구의 절반가량에게서 발견되는 이 균이 약 5300년 전 미라에게서도 발견됐다. 선사시대에도 인류의 식생이 지금과 비슷하다는 근거가 될 수 있는 것은 물론 유럽인의 계통에 대한 중요한 단서가 될 수 있어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7일(현지시간) 미국 공영라디오방송 NPR에 따르면 이탈리아의 ‘미라 및 아이스맨 연구소(EURAC)’ 연구팀은 지난 1991년 이탈리아와 오스트리아 국경의 알프스 빙하지역에서 온몸이 꽁꽁 언 채 발견된 ‘아이스맨(미라)’의 위에서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을 비롯한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보도했다.
5300여 년 전인 석기시대에 사망한 것으로 추정되는 이 미라는 발견된 지명을 따서 ‘외치(Oetzi)’라고 불렸다. 과학자들은 150cm가량의 키에 40대 후반 남성으로 추정되는 외치가 왼쪽 어깨 부근에 화살을 맞고 과다출혈로 죽은 것으로 보고 있다. 지금도 그의 피부가 남아있을 정도로 시신의 보존상태가 좋아 많은 기대를 모았다.
그러나 정작 연구팀은 그의 위(胃)를 찾지 못해 애를 먹어야 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부패하고 쪼글쪼글해져 분간하기 어려웠기 때문이다. 5년 쯤 전에야 연구팀은 마침내 음식물 잔해와 세균으로 가득 찬 위장을 특정해냈다. 위 조직은 거의 남아있지 않았지만 위 속에 남아있는 내용물의 유전자 분석을 통해 연구팀은 그가 죽기 직전 사슴고기와 알프스에 서식하는 염소고기를 먹었다는 결론을 냈다.
연구팀은 헬리코박터균이 외치의 면역 체계에 반응했다는 증거가 있으며, 수천 년 전부터 인간이 헬리코박터균에 감염됐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밝혔다. 헬리코박터균은 지역에 따라 변이가 되기 때문에 인류의 이주 역사를 연구하는 데도 중요한 단서가 된다.
초기 헬리코박터균은 아프리카계와 아시아계에서 각각 시작돼 이들이 유럽으로 이주하면서 결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동안 학계에서는 아프리카인들의 유럽 이주가 본격화되면서 이 균이 유럽으로 넘어왔다고 추정했지만 외치에게서 발견된 헬리코박터균은 주로 중앙아시아와 남아시아 지역에서 발견되는 계통이라고 연구팀은 밝혔다. 이는 적어도 외치가 살았던 5300년 전에는 아프리카인들의 유럽 이주가 이뤄지지 않았을 수도 있다는 근거가 될 수 있다고 연구팀은 덧붙였다. 연구결과는 세계적인 과학지 사이언스 최신호에 발표됐다.
이종선 기자 remember@kmib.co.kr
“현대인의 위장 질환 원흉 ‘헬리코박터 파일로리균’ 5000년 전에도 있었다”
입력 2016-01-08 19:2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