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프리즘] 사우디-이란 충돌의 배경은 돈과 패권

입력 2016-01-08 16:47
사우디의 시아파 지도자 처형에 시위하는 이란 국민들. BBC 방송
사우디아라비아가 최근 자국 대사관 방화 사건에 항의하기 위해 이란에 대해 외교관계 단절, 무역 중단, 항공편 운항을 금지하자 이란도 7일 사우디 물품 수입금지에 이어 사우디 메카로의 ‘성지 순례’까지 금지시켰다. 양측의 이런 식의 ‘보복전’은 앞으로 상당 기간 지속될 것이란 전망이 많다. 특히 유가가 지금보다 더 내려갈 경우 더 큰 충돌로 치달을 수도 있다.

양측이 대립하는 이유를 따져보면 결국은 ‘돈’과 ‘패권 다툼’이라는 2가지 사안이 핵심이다.

우선 돈 문제부터 따져보자. 양국이 본격적으로 다투기 시작한 건 수니파 국가인 사우디가 지난 2일 시아파 지도자를 비롯한 자국민 47명을 테러 혐의로 사형시킨 직후였다. 그런데 사우디가 왜 47명 집단 처형이라는 강수를 썼을까. 사우디는 이미 수개월 전부터 시아파 종주국인 이란은 물론 국제앰네스티 인권단체와 서방국가들로부터 사형 집행 반대 요구를 받아왔었다.(국민일보 2015년 11월 28일자 5면 보도)

사우디의 사형 집행은 무엇보다 자국민에 대한 ‘기강잡기’라는 해석이 많다. 이런 해석의 배경에는 사우디의 ‘돈 사정’이 극도로 안 좋기 때문이다. 사우디는 100달러 이상이던 유가가 30달러대로 추락하자 극심한 재정 압박에 시달려왔다. 지난해에만 980억 달러(약 117조원)의 재정적자가 났다. 사정이 이렇자 사형 집행 4일 전에 연료보조금을 대폭 삭감하고, 자국내 휘발유 가격을 최고 67% 올리는 조치를 발표했다. 이에 국민들의 불만이 흘러나오기 시작하던 상황이었다. 그런데 사우디는 공공서비스 요금이나 부가가치세 인상 등의 추가 조치까지 고려하고 있어 내부 불만은 앞으로 점점 더 커질 게 뻔했다.

이에 사우디 왕실은 ‘엄정한 법 집행’으로 내부 불만을 차단하고 나선 것으로 볼 수 있다. 2011년 민주화 열기인 ‘아랍의 봄’이 휩쓸 때 사우디 왕실은 각종 복지정책 확대로 국민들의 불만을 달랬다. 하지만 국민들이 다시 들고 일어서면 더 이상 제시할 ‘당근책’이 없는 상황이다. 결국 ‘칼’로 다스리기 시작한 것이라 할 수 있다. 게다가 이번에 처형시킨 시아파 지도자 셰이크 님르 바르크 알님르는 ‘아랍의 봄’ 당시 사우디 지도층을 비판하며 시위를 주도한 인물이기도 하다. 이는 곧 ‘왕실에 도전하면 반드시 처형한다’는 본보기를 보여준 것이다.

사우디와 이란의 패권 경쟁은 익히 잘 알려져 있는 사안이다. 다행히 양측은 국방력 등이 비슷해 힘의 균형을 유지해왔다. 그런데 이란 핵협상 타결에 이어 빠르면 이달 중 취해질 대이란 경제제재 해제 조치는 이런 균형을 깰 가능성이 높다.

이란 인구는 7800만명으로 사우디(3080만명)의 2배가 넘는다. 거대한 내수시장이 갖춰진데다 석유수출과 서방사회의 투자열기, 관광확대까지 더해지면 이란은 더 이상 사우디와 양강(兩强)이 아닌 1강(强)으로 올라서게 된다. 게다가 미국과 유럽 국가들도 친(親)이란 행보를 보이며 이란과의 교역 확대에 나섰다.

사우디가 수니파 국가들을 총동원해 ‘반(反)이란 전선’을 구축하고 나선 것도 이런 위기감이 반영된 것이라 할 수 있다. 이란의 돈 사정이 넉넉해지면 각국의 시아파를 더 많이 지원할 수 있게 돼 다른 수니파 국가들도 미래의 체제 안정을 위해서라도 사우디와 한 배를 탈 수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자칫 공멸할 수도 있기 때문에 이번 사태가 ‘전쟁’으로까지는 치닫지는 않을 전망이다. 사우디 왕위계승 서열 2위이자 국방장관인 무함마드 빈살만 알사우드 왕자도 이코노미스트와 인터뷰에서 “전쟁은 전혀 예상하지 않는 일”이라고 답했다.



손병호 차장 bhson@km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