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건표 교수 연극이야기] 29. 역사의 폭력성, 씻을 수 없는 상처 ‘하나코’

입력 2016-01-07 09:12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 “씻겨낼 수 없는 영혼의 상처”



1992년 1월8일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수요 집회가 시작되면서 할머니들의 시린 역사의 상처가 밖으로 걸어 나왔다. 지난 6일로 수요 집회(제1212차)가 24주년이 됐다. 단일 집회로는 최장수를 기록했다. 고(故) 김상희 할머니는 당시에 떨리는 손과 음성으로 마이크를 잡고 참혹한 ‘2차 세계대전’의 일본군의 폭력성에 견딜 수 없었던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의 울부짖음은 한국사회를 강타했다. 용기 있는 증언과 외침은 대만, 네덜란드, 필리핀, 캄보디아 등 일부 일본군 위안부의 참혹한 피해 생활을 한 타국에서도 진실을 꺼내 들 수 있는 외침의 용기를 주는 계기를 마련했다.



잔인한 역사의 폭력성에 할머니들이 외친 것은 “일본의 진실 된 사과”였다. 열다섯 꽃다운 나이에 일본군에 끌려가 폭력과 억압의 쇠사슬에서 공포로 치욕스러움으로 시달리고 견뎌야 했던 고 김상희 할머니는 해방 후 귀국한 뒤에도 ‘더러운 년 이라고 손가락 질’을 받고 주변의 얼음 같은 시선의 냉혹함을 견디고 참아야 했다. 김 할머니는 지난 2006년 작고했다. 김 할머니를 비롯한 다른 피해 할머니들과 한국 정신대 문제 대책 협의회(정대협) 등이 일본의 전쟁범죄 인정과 법적 배상 등을 요구해온 지 이제 만 24년이 됐다. 정대협에 등록된 피해자 238명 중 192명은 이미 세상을 떠나셨다.



한·일 양국이 일본군 위안부 피해 문제를 합의 했다고 발표한 가운데 당사자인 할머니들의 비극의 역사는 더 깊어지는 분위기다. 양국 합의에 대해 우려의 목소리도 터져 나온다. 일본대사관 앞 한 길에 놓인 ‘소녀상’은 여전히 침묵하고 있다. 세계사회도 이번 협상 타결을 엇갈린 시선으로 바라본다. 합의는 대화를 전제로 한다. 한일 양국의 타협은 비극의 주인공은 빠진 채 전개되는 드라마로 비쳐진다. 드라마의 서사는 느슨해지고 갈등과 감정의 폭은 약하다. 감정을 몰입시키는 온도가 약하게 느껴지는 이유다. 드라마의 주인공이 빠진 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들 삶의 비극적 드라마에 시청률을 올리겠다는 것은 설득의 감정이 빈곤해 보인다.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보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 ‘하나코’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이야기를 들고 한국연극의 대표적인 여자 연출가 한태숙씨가

연극 ‘하나코’(극단 물리·작 김민정)를 들었다. 피해자인 극중 인물 ‘한분이’역(예수정 분)과 ‘렌’역(전국향 분)으로 투영되는 비극의 역사의 소재에 엔진을 달고 무대를 향해 천천히 속도를 올린다. 연기는 매섭고 연출의 온도는 간결하고 날카롭다. 여자 연출가로서 위안부 피해 할머니의 삶을 진솔하게 쫒아간다. 한태숙 연출은 더 매섭게 냉정한 시선으로 감싸며, 진솔하게 풀어간다. 배우들의 응축된 감정으로 돌아가는 엔진소리는 폭력의 잔인성을 더 냉혹하고 관객의 가슴을 파고들고 감정의 살점을 도려낸다.



‘하나코’는 남성과 사회적 시선이 아닌, 여성의 시선으로 바라본다. 특히, 감정의 10%로만 뱉어내고 90%는 배우의 내면으로 감정을 조여 맨다. 그 틈에서 풀어지는 질긴 비극의 역사에서 혈전된 실타래를 차분하고 진솔한 시선으로 풀어낸다. 연극 ‘하나코’ 서사는 1997년 국내 언론을 통해 알려진 캄보디아 위안부 피해 할머니인 ‘훈 할머니’를 모티브로 하고 있다.



국내에 캄보디아로 끌려간 일본군 위안부 피해 할머니가 있다는 사실은 1997년에 알려졌다. 당시, 캄보디아에서 약재상을 하는 황기연씨가 훈 할머니의 손녀로부터 2차 세계대전 말에 일본에 의해 위안부로 캄보디아에 끌려왔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고, 언론에 알려지게 됐다. 당시 언론은 캄보디아 현지에서 취재를 했고, 훈 할머니는 50년의 세월을 캄보디아에서 지내면서 한국고향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다. 몇 가지의 기억만 선명했다. 고국의 가족을 찾고 싶어 했던 훈 할머니는 유전자 감식까지 하면서 가족으로 추정되는 사람과 유전자 감식까지 했지만 예상 했던 것과는 달리, 추정되는 고국의 기억상황과 일치하는 점이 발견이 안 되어 진짜, 가짜 논란이 됐다. 그러나 훈 할머니 기억에서 더듬어지는 일본군 장교의 이름이 실존이름이라는 사실과 여러 사실적 정황들이 밝혀지면서 1997년 경남 합천에 사는 이순이씨가 훈 할머니의 막내 여동생으로 확인되면서 극적인 자족들과 만남이 이루어졌다.



작가는 이러한 훈 할머니의 역사적 사실성을 모티브로 끌어안고는 극중 인물로 ‘렌’ 할머니와 ‘한분이’ 할머니의 비극의 역사를 연극 ‘하나코’의 주요 극적 서사로 설계한다. 한분이 할머니도 꽃다운 나이에 동생과 함께 캄보디아에서 위안부 생활을 한 피해 할머니로 설정된다. 극은 캄보디아에 거주하는 ‘렌’ 할머니가 조선인 일본군 위안부 출신 이라는 정보에 따라 극중 인물 여성학 교수인 서인경은 캄보디아에 살고 있는 ‘렌’ 할머니의 증언을 채록하기 위해 프롬펜으로 떠나면서 캄보디아 일본군 위안부에서 함께 생활을 한 한분이(예수정 분) 할머니가 렌(전국향 분)과 자매일수 있다는 극적 설정으로 이야기는 전개된다.



작가는 훈 할머니의 사실적 모티브를 연극적 무대로 이야기를 풀어내고, 한태숙 연출의 무대로 투영되는 시선의 렌즈는 내면으로 확정되며 뒤를 쫒아간다. 배우 전국향(렌 역)은 능숙한 캄보디아 언어로 감정을 풀고 조이면서 노련하게 극을 이끌고, 렌 할머니의 손녀 메이린 역(강다윤 분)은 마치 캄보디아 인처럼 능숙한 말로 역사의 현장으로 능청스럽게 막아선다. 극이 끝 날 때 까지 캄보디아 배우가 출연 했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능숙했다.

김귀선 배우를 통해 한국인 배우라는 사실을 알았을 때 허탈했다. 외모, 말투, 손짓, 체형 등 완벽하게 한국에 유학 온 캄보디아 출신 같다. 하나코에 참여하는 배우들이 작품을 위해 캄보디아 언어를 배우고 그것을 배우의 감정과 언어로 입히기 위해 피나는 노력을 한 배우들의 열기가 그대로 무대에 흐른다.



배우 예수정(한분이 역)은 내면의 상처를 풀어 헤치지 않고, 정갈한 감정을 한 번에 쏟아 붓지 않는다. 감정의 흐름이 흐트러지지 않은 채 조여 매고 절제의 응집력으로 터트려지는 인물의 감정은 ‘화약’으로 가슴깊이 꾹꾹 눌려져 역사의 긴 폭력성의 상처를 터트린다. 배우 내면의 밑바닥까지 몰아쳐서 그 내면에서 자라 올려지는 감정을 똘똘 말아 조용히 무대로 올려놓는 한태숙 연출이다. 배우들을 내면의 극한의 상태로 몰아 정제된 감정만으로 올려놓는 연극 ‘하나코’에서 흐르는 비극의 역사의 강한 전류는 관객의 오감을 잡는다.



분리 될 수 없는 ‘렌’과 ‘한분이’ 할머니의 역사



하나코의 무대는 간결하고 울림은 크다. 아르코예술극장 소극장 객석 무대공간을 L자로 좁히고 소극장 특유의 벽의 뒷면 홈의 공간을 극적 공간으로 활용한다. 좌 측편으로는 공간을 분할해 일본군위안소를 ‘오또상’(박종태 분)과 한분이 할머니는 현재에도 덜어낼 수 없는 참혹한 내면의 역사, 과거의 기억으로 중첩된다. 캄보디아 일본군 위안부 삶에 오또상의 이미지를 중첩 시키면서 과거의 역사로부터 분리 될 수 없는 두 할머니의 그림자를 하나로 형성 시킨다. 객석 사이는 배우의 등·퇴장의 공간으로 설정하고 감정은 더욱 밀도 있게 전진 하면서 감정과 시선의 폭을 좁힌다. 절제된 배우들의 감정은 최소한의 진공된 감정으로 발화된다. 단단해지고 좁아진 공간에서 그려지는 배우들의 감정의 선은 진공포장으로 눌린 채 절제된 상태로 유지된다. 배우의 소리는 최저의 상태에서 감정은 최대의 깊이로 모아진다.



무대의 분할 된 3개의 공간 설정(무대 중앙, 좌측 막 이식 공간과 계단식 구조 철제, 무대벽면)은 (프론펜 공항, 캄보디아 현지, 캄보디아 위안소, 대합실과 대기실, 도쿄 외각 인쇄소) 등 다양한 장면으로 활용된다. 극은 렌 할머니를 만나기 위해 프롬펜으로 달려가면서 두 사람의 극적인 만남을 취재와 증언을 채록하는 과정이다. 기억의 창문을 통해 비극의 역사는 강하게 당겨진다. 어리시절 참혹한 역사의 현장인 캄보디아에서 살아가는 렌 할머니가 꽃분이 할머니 동생일수 있다는 설정을 통해 두 사람의 비극의 역사는 교차된다. 극의 종반부에서는 두 할머니가 유전자 검사를 통해서 혈육이 아닌 것으로 밝혀지지만 캄보디아 일본군 위안소를 관리하던 오또상을 중심으로 기억을 회상하는 두 할머니의 꽃다운 시절의 뭉개진 내면의 상처는 혈육보다 진한 짓밟힌 잔혹한 폭력의 역사로 기억 되어야 할 공공의 혈육이다.



한분이의 할머니 기억으로 열어지는 위안부의 삶은 참혹한 현장이며 죽어야 끝이 나는 잔혹한 전쟁의 비극이다. 위안부를 탈출하기위해 한분이 할머니 동생 금아(민경은 분)의 탈출의 희망은 일본군 군의관으로 향한다. “여기서 나갈 수 있다면... 그 사람이 이 지옥에서 날 건져주기만 한다면 난 뭐든지 할 거야. 그 사람 신발을 핥으라면 핥고(중략) 밤새도록 잠을 안 재워도 좋아... 여기서 날...꺼내주기만 한다면” 회상으로 올려지는 동생 금아는 일본군 군의관의 유일한 탈출의 통로다. 어린 한분이의 대답은 “죽어야 끝나지..속았어.. 다.. 망쳐 버렸어” 죽어야만 밖으로 나갈 수 있는 삶이다.



작가는 극 초반에 한분이 할머니의 어린 시절 과저 캄보디아 위안소 현장을 소환하면서 훈 할머니의 사실적 모티브와 한분이의 할머니의 기억의 역사적 연대를 묶고 비극의 역사를 두 시선으로 교차시켜낸다. 그 현장을 지키는 것은 사실적 증언을 바탕으로 역사적 진실성을 바라보고 기록하려하는 극중 인물 서인경 역(우미화 분)과 사회적 시선으로 투영되는 취재기자 홍창현 역(신안진 분)이다. 서인경은 두 인물의 역사적 비극을 다소 진지하게 바라보고 있는 반면, 취재기자는 렌 할머니의 이야기를 마치 조작된 삶으로 바라본다.



배우들은 노련한 캄보디아 언어로 극의 사실적 분위기에 온도를 높이고 등장인물 메이린은 (강다윤 분)은 관객을 캄보디아 현지로 불러 세운다. 캄보디아에서 약재상을 운영하면서 렌의 할머니의 캄보디아 일본군 위안부 생활을 알린 극중 인물 박재삼(김귀선 분)은 특유의 연기로 활력 있게 균형을 잡는다. 극의 종점은 라꾸엔(파라다이스)이라고 불리는 캄보디아에 위안소에 렌, 한분이 할머니가 찾아가면서 비극의 현장과 두 사람의 과거의 기억은 생생한 채로 참혹하게 튀겨 간다. 잔혹한 악마의 내면의 그림자다. 전쟁이 끝나도 죽음으로 돌아오고, 육신은 찢겨지고 갈라진 채로 흔들거린다. 이 장면을 통해 렌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라는 사실이 명확하다는 설정을 한다.



캄보디아 위안소 안에서 터져 오르는 두 할머니의 기억은 돌아가고 싶은 고국으로 영원히 가슴속에 살아있는 동생으로, 달려가서 찾아야 되는 동생의 기억으로 멈춰있다. 가슴으로 청산 할 수 없는 죄책감이다. 할머니 가슴으로 여전히 살아있는 동생의 죽음은 비극의 역사가 받아들일 수 있는 “진실 된 사과”로 가슴으로 온전히 씻어 내려 갈 때 가능하다. 하나코는 어린 ‘꽃분이’를 찾아 위안소를 들락거리던 극중 인물 ‘타카하시’라는 일본군이 한분이 할머니에게 지어준 일본이름이다. 다카하시는 극중에서 타이완으로 떠나면서 어린 꽃분이의 옷을 찢고 등을 칼로 눌러서 문신을 새기는 잔혹한 현장을 그린다. 다카하시 역에 배우 권겸민은 잔인한 일본군의 폭력성을 포악하게 그려낸다.



배우 예수정은 일본군 타카하시가 어린 꽃분의 등을 칼로 생살을 짓누르고 등에 새겨 넣은 참혹한 역사를 증언하는 장면에서 문신을 꺼내 놓으며 한 올 한 올 풀어가는 긴 독백은 일본군 위안부 할머니들의 비극의 상처를 모두 쓸어 안아버린다. 배우들의 농도 있는 연기가 시선을 놓지 못하게 만든다. 연일 매진이다. 극단 <물리>의 한태숙 연출 ‘하나코’는 1월10일(일)요일 까지다.







대경대 연극영화과 교수(연극/공연예술평론가)